프랑스 리옹의 전망 좋은 방

이렇게 좋은 아파트라니,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다

by 하지희



9년 전, 고양이와 나, 둘이서 살 집 혹은 방을 구해야 했다. 프랑스에선 월셋집을 구할 때, 보증금은 한 달 치 월세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대신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보증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증인을 구하기 힘든 나 같은 유학생은 보통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한인 사이트에서 방을 구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 난 사정이 급했다. 당장 1주일 안으로 이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3개월 넘게 여유 있게 찾아다녀도 구하기 어려운 게 집 찾기인데, 1주일이라니. 급히 방문해본 조건에 맞는 집들이 너무 별로여서 더 마음이 급해졌다(복도에서부터 습기 찬 냄새가 나는 집은 들어가기도 전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학교에서 나눠준 숙소 팸플릿을 쥐고 손강 벤치에 걸터앉았다. 내 뒤로 강가를 따라 주욱 늘어선 으리으리한 아파트들이 단단하게 쌓인 성벽처럼 보였다. ‘저긴 곰팡이는커녕 개미 하나 나오지 않겠지? 이렇게 쭈글쭈글한 팸플릿 쥐고 벤치에서 신세 한탄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 살겠지?’ 기분 전환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생각을 하며 다시 팸플릿을 뒤적였다.


크기는 작지만 월세가 예산에 맞는 집을 몇 체크한 후 제일 위에 있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할머니가 받으셨는데, 당장 집을 보러 와도 좋다고 하시기에 정확한 집의 위치를 물었다. 지도를 체크해 보는데 이럴 수가. 내가 방금 올려다본 그 아파트 중의 하나였다. 뭐지? 월세에 0이 하나 빠졌나? 혹시 지하 주차장에 방이 있나?


(항상 긍정적인 나는) 분명 문제가 있는 곳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일단 약속을 했으니 아파트 입구로 찾아갔다. 세상에, 1층엔 치과도 입점해 있는 정말 고급 아파트다(프랑스는 이런 아파트 안에 가정집처럼 사무실이나 병원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인터폰마저도 반들반들한 것이 참 고급스러웠다. 입주민 이름표도 금박으로 박혀있다니.


나를 발견하고 웃으면서 다가오시는 선한 인상의 할머니를 보고서도, (한없이 긍정적인 나는) 이게 만약 사기면 어떻게 도망치지 라는 생각이나 하며 인사를 건넸다. “들어와요.” 세상에, 로비에서 메아리가 울린다. 커다란 엘리베이터도 있다니(프랑스는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거나 사람 두 명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가 일반적이다). 할머니가 제일 꼭대기 층인 8층을 누르셨다. ‘보통 꼭대기 층은 로열층 아닌가? 막 2층 구조로 계단도 있고 뭐 그런 큰 호수들이 모여있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아아, 할머니. 가정부 공고랑 착각하신 게 아닌가요?(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 긍정적인 나).’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할머니께서 미안한 눈치로 말씀하셨다. “방은 여기서 내려서 계단으로 한층 걸어 올라가야 해요.”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 할머니와는 달리 난 그제야 활짝 웃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반가운 이야기였으니까. 번쩍이는 로비보다도, 신발 자국 하나 없는 향기 나는 엘리베이터 보다도, 약간 어두 컴컴한 좁은 계단이, 그 끝에 나온 창고 문처럼 생긴 작은 철문이 나를 더 희망에 부풀게 했다(이제부터 현실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할머니는 마치 10년 동안 방치한 냉장고 문을 열어 보이듯 자신 없는 얼굴로 열쇠를 돌리셨다. “방이 아주 작아서 저기 복도 끝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해요. 딱히 주방이랄 것도 없지만 세면대가 있으니 거기서 간단한 건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내 손녀딸이 쓰던 가구가 그대로 있으니 몸만 들어오면 돼요.”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작아져 갈수록 난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는 신호 이리라. 무엇보다 언급하신 단점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욕실 포함 9㎡ 기숙사에서도 잘만 살았다).


문을 열자 아담한 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2㎡쯤 될까. 전체적인 아파트의 분위기와는 달리 벽도 바닥도 살짝 낡은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꼭대기 층엔 아주 오래전 가사도우미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1인용 작은 침대 하나, 고풍스러운 낡은 책상과 옷장 하나, 구석엔 샤워 부스 하나와 세면대 하나, 주방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은 전자레인지와 소형 냉장고, 핫플레이트가 놓인 빌트인 선반 하나가 전부였다. 천장은 낡아서 페인트가 살짝 벗겨지고 있었고, 바닥 타일은 군데군데 깨져있었고, 창문도 2 중창이 아닌 옛날식 나무 창틀이었다.


여기까지는 월세가 이해가 되었다. 위치와 건물이 아무리 좋아도 방 자체의 조건을 따지면 오히려 비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딱 하나, 들어오는 순간부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똑바로 응시하기도 힘든 문제점(?)이 말이다. “할머니, 정말 이 전망에도 아직 세입자를 못 구하셨어요?”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나무 창 너머로 손 강의 어마어마한 전망이 걸려있었다. 9층의 탁 트인 강변 뷰라니...


이틀 뒤 고양이를 데리고 이사를 왔다. 창문을 열면 꽤 큰 난간이 나왔는데, 그곳에서 고양이는 종일 시간을 보냈다. 난 일부러 책상을 창문 앞에 두고 바깥을 보며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친구들에게 매 저녁 감성 어린 메시지를 보내 괴롭혔던 건 다 풍경 탓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풍경은 내 감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난방도 잘 안 되고, 앞집 할머니는 심하게 예민하셔서 열쇠 돌리는 소리도 조심해야 하고, 인터폰이 없어서 친구가 놀러 오면 직접 로비까지 내려가서 문을 열어줘야 했던 집이지만, 난 아직도 이 집에서의 1년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림 속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좁은 방에 날리는 고양이 털을 매일 같이 치우면서도 고양이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건 다 그 집 덕분이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어두컴컴한 밤길을 잰걸음으로 걷다가 ‘니 하오!’ 하면서 낄낄대는 사람들을 마주쳐도 기운차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집 덕분이다.


학생 시절, 청춘, 한창 좋을 때라고 불리는 때의 집을 생각하면 그 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손 강의 전망 좋은 집. 그 집은 파리로 이사하며 아는 한국인 동생에게 소개해주었다. 그 친구도 전망을 보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약했는데, 앞집 할머니랑 싸우지 않고 잘 지내다 갔을까. 나처럼 번쩍거리는 로비 바닥을 걷는 게 부담스러웠을까. 외롭고 서글픈 유학 생활을 커튼과 함께 창밖으로 걷어버렸을까. 전망 좋은 방에서 보냈을 또 다른 ‘한창 좋을 때’를 가끔 떠올려본다.



ⓒ 하지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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