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분의 두 평 집

어차피 삶의 방식도 집도 다 선택일 뿐이다

by 하지희

내가 생각했던 1인분 집 크기의 마지노선은 세 평이었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 살았던 기숙사 방이 세 평이었으니까. 그 작은 방 안에 화장실 겸 욕실, 작은 냉장고, 전자레인지, 하이라이터, 싱글 침대, 책상, 옷장 겸 책장이 들어있었고 그 안에서 씻고 요리하고 공부하고 자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다 하며 살았다. 시내의 큰 집에서 살던 같은 어학원 동료가 내 방을 ‘화장실 크기’라고 놀려도 혼자 살기에 충분히 아늑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남편 S를 만난 후론 이제 2인분 집 크기의 마지노선을 고려해야 할 차례였다. 사람 한 명이 더 늘어났으니 당연히 여섯 평이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야 했지만, 커플 대부분처럼 우린 여섯 평보다는 훨씬 더 넓은 집에 살게 되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직장에 다니고 집에 부를 수 있는 친구도 늘었다. 피곤한 하루를 위로할 커다란 텔레비전과 여럿이 모일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 이 모든 것을 갖출 집은 여섯 평으론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여섯 평 보다 훨씬 큰 집은 월세와 관리비가 많이 나온다. 이 돈을 내기 위해 직장에 계속 다닌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크고 편안한 집이 필요하다. 크고 편안한 집은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기도 하지만 집안일도 많고 돈도 많이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안정적이지도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지만, 적성에 맞는 가정부 일을 하는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매일 조금씩 버는 돈은 이런 곳에 쓰인다. 위스키와 담배, 약, 그리고 집. 이 네 가지와 남자 친구만 있으면 매일은 평안하지만 해가 바뀌고 물가가 오르면서 선택의 기로에 빠진다. 이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보통은 위스키나 담배를 줄이거나 일을 더 찾아보려고 할 테지만, 우리의 특별한 미소는 무려 집을 포기한다. 캐리어를 끌고 이곳저곳 자고 씻을 곳을 찾는 그를 보는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난 그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비슷한 선택을 했으니까.


한 번쯤 적당히 살아보고 싶었다. 일도 적당히, 집안일도 적당히, 휴식도 적당히, 집도 적당히. 그러나 취직하는 순간 내 하루에 적당히는 없었다. 요리사라는 직업이 그렇다는 건 잘 알고 뛰어들었지만, 평생 이러고 살 수는 없었다. 사장에게 근무 시간을 ‘적당히’ 줄이고 월급도 ‘적당히’ 받을 수 없겠냐고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고, 막다른 골목에서 참신한 선택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집을 없애자.


정확히 말하면 집을 바꾸는 것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집으로 보이지 않는 집으로 이사한다는 것이 조금 달랐다. 일단 크기는 두 평. 내가 생각했던 2인분 집의 크기를 한참 벗어나 1인분 집의 크기보다도 더 작은 집. 제대로 된 욕실도 주방도 없는 집.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집은 무려 ‘자가’이기 때문에 월세를 내지 않고, 관리비도 내지 않으며, 고로 일단 직장을 관두고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멋진 집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삶의 방식도 집도 다 선택일 뿐이다. 크고 아늑한 집의 편안함보다는 미소처럼 나만의 선택지가 만든 하루들이 더 소중했을 뿐이다.



우리의 선택지, 그러니까 작고 멋진 바퀴 달린 집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두 평 집에 2인분의 삶을 그리는 일은 디테일의 디테일을 따지는 일이었다. 소파 겸 침대가 될 자리는 우리의 키에 딱 맞춰 설계해야 했고, 서랍 하나 넣으려고 해도 다른 서랍을 열 때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계산해야 했다. 테이블도 여러 개 들고 다닐 수 없으니 소파 모드가 되었을 때, 침대 모드로 펼쳤을 때, 야외에서 식사할 때 모두 쓸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작은 집을 만들기 위해선 작은 집에서 살아갈 우리의 삶을 상상해야 한다. 자주 쓰는 물건을 가장 편한 서랍에 넣어 테이블도 침대도 뒤엎어야 양말 하나를 꺼내는 불상사를 막아야 하니까. 어렵기도 했지만 신선했던 경험이었다. 평소 집에 관련된 생활 습관을 이렇게 조목조목 생각해볼 일이 또 있을까. 집을 만드는 두 달 내내 나와 S의 대화는 끊일 새가 없었다. “컵은 자주 쓰니까 잘 보이는 곳에 다는 게 좋겠지? 그럼 깨지지 않는 컵을 구해야겠다.”, “면도할 때 말고는 거울 볼 일이 거의 없지 않아? 난 화장도 안 하는데. 그럼 거울은 접이식으로 사서 구석에 넣자.”, “당신은 저녁에 영화 보면서 군것질하는 것 좋아하니까 머리맡 근처에 간식 서랍을 두면 좋겠다.”



집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야기했다. 2인분의 집이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두 달이 지나자 우리 앞엔 우리만을 위한 집이 서 있었다. 생활 습관, 몸의 크기, 취미와 업무 패턴을 모두 고려해 그려진 우리 집. 맞춤 정장이나 맞춤 구두도 가져본 적 없는데 맞춤집이라니!


우린 이 맞춤집에서 3년을 살았다. 여기저기 다시 고치고 바꿔야 했던 부분들도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3년간 우리도 변했으니까. 변하는 우리에 맞춰 집도 다시 바뀌어야 했다. 크기가 작으니 그 변화들이 눈에 더 잘 띄었을 뿐이다. 변해가는 집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 깨달았던 지난 3년이었다. 이 집에서 우린 먹고 자고 여행하고 일하며 살았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앞으로도 우리의 사이즈와 모양을 잘 알기만 한다면 어떤 집에서도 2인분의 삶을 잘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겼다.

keyword
이전 05화프랑스 리옹의 전망 좋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