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과 화장실이 편한 집

이제 내 집에서 서러울 일은 더는 없다.

by 하지희

‘변기를 보지 않고 목욕할 수 있어서 좋다.’


친구가 새로 이사한 집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다른 건 없냐는 질문엔 ‘칫솔을 변기 근처에 두지 않아서 좋다’와 ‘화장실과 거실 사이에 문이 두 개가 있어 좋다’로 답했다. 넓은 부엌도 큰 거실의 통창도 좋지만, 화장실과 욕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집으로 이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더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아파트, 그 집은 화장실과 욕실이 분리되어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거실과 주방을 지나면 문을 닫을 수 있는 복도가 나오고 그곳에 화장실과 욕실이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복도 문을 떼면 좀 더 집을 넓게 쓸 수 있다’라고 추천했지만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볼일을 볼 때 복도 문을 닫고 화장실 문까지 닫으면 거실에 있는 곳까지 아무 소리도 전달되지 않는 집이어서 그 집을 골랐던 거니까.


무슨 화장실 때문에 집을 고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나만 예민한가? 난 나의 화장실 생활을 아무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 가족에게도 들려주고 싶지도 흔적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매일 드나드는 화장실에서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덜 내려고 노력해야 하고, 가족의 평화로운 목욕 생활을 위해 흔적을 없애려고 애를 쓰다 보면 내가 왜 내 집에서까지 이래야 하나 서러울 때도 있다(비싼 월세 내고 왜 서러워야 하나).



그리고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소리가 흘러나오고 흔적이 남게 되는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도 있다. 난 그곳을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불편했던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생리 현상을 공유하는 걸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내 집’에서 만큼은 이 공유 시스템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만의 에티켓 적정선을 지키고 싶은데 그게 도무지 불가능할 때 어떻게 편안하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프랑스에 오니 집 대부분이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된 구조였다. 진짜(진짜 진짜 진짜) 최고로 좋았다. 이렇게 좋은 구조가 가능한데, 왜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은 다 그렇게 매너 없이 만들어 둔 거냐고 건축가들에게 따지고 싶을 만큼. 아무리 프랑스여도 3평 원룸에 분리된 화장실을 넣을 수 없었던 기숙사를 지나, 처음으로 원하던 구조의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이제 손님이 와도 편안하게 화장실 갈 수 있다니! 칫솔을 아무렇게나 두어도 이제 찝찝하지 않을 수 있다니!


소리나 위생 문제를 떠나서 솔직히 변기는 참 감상하기 힘든 물체라는 걸 인정하자. 예술 작품으로 가져다 둔 변기도 일어나자마자 보고 싶은 작품은 아니지 않나. 아무리 값비싼 메이커 변기도 변기일 뿐이다. 금으로 만들었다 해도 용도를 알아채는 순간 값비싼 누리끼리한 변기가 되어버린다(이 문단에 변기라는 단어가 다섯 번 들어갔을 뿐인데도 참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변기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욕실이 무척 예뻐졌다. 욕조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예쁜 액자도 걸고, 샤워 커튼도 좋은 제품으로 골라 달았다. 향초도 얹어두고 폭신한 발매트도 깔았다(프랑스의 욕실은 건식이다). 발매트라니! 변기가 있었을 땐 욕실 안엔 절대 두지 않는 소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뽀송뽀송한 소품도 기분 좋게 놓아둘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겨우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된 것뿐인데,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는 확신이 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 집을 짓는 날이 다가왔다.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도면을 만드는데 화장실 위치를 정하는 부분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화장실을 집 바깥에 설치하는 건 어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한겨울에 코트 입고 화장실 갈 일 있냐고 극구 반대하는 남편. “아니, 그래도,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화장실 두는 게 꿈이었단 말이야...” 난 한겨울에 눈을 밟으며 손전등 들고나가야 하더라도 평화롭게 쓸 수 있는 화장실이 갖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지으려는 집은 건축면적이 무려 7평인 아담한 집이 되었고, 작은 집에서 평화로운 화장실은 갖기 힘들다는 생각에 낸 아이디어였다.


결국 남편과 타협해서 만든 집 도면 속 화장실은 두 개가 되었다. 평범하게 쓸 수 있는 집 안의 화장실, 그리고 ‘평화롭게’ 쓸 수 있는 마당 한구석의 생태 화장실. 겨우 7평 집 지으면서 화장실이 두 개나 있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남편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우리 집은 이제 손님들이 오고 싶어 하는 집이 될 거다. 나와 같은 분류의 손님에게 ‘바깥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어요’라고 하는 순간 얼굴이 펴지는 이들을 잔뜩 초대할 거다. 우리도 손님도, 이 집에 머무는 모든 이들이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는 화장실을 가진 집을 지을 거다. 그런 디테일을 가진 편안한 집에서 살 거다. 이제 내 집에서 서러울 일은 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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