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오븐이 있는 집

이제 장작 오븐 없는 미래의 집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by 하지희

설거지를 마치고 찬장 손잡이에 걸어둔 수건에 손을 닦는다. 요리하는 동안에도 계속 손을 닦아서인지 아직 축축한 수건이 은근히 불쾌하다. 눈이 가득 내린 날, 집으로 돌아와 벗어둔 운동화가 계속 신경 쓰인다. 드라이기로 아무리 말려 보아도 꿉꿉한 냄새는 가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랜만에 큰 맘먹고 스튜를 한가득 끓이기로 했는데 원하는 맛과 모양이 나오질 않는다. 밤새 약한 불에 졸이면 분명 맛있어질 것 같은데, 가스비가 무서워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본 불편한 일들. 그럴 때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것처럼 당연히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장작 오븐이라는 신문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신문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라져 가는 옛 물건이다. 한국엔 아궁이와 온돌이 있듯이 유럽엔 장작 오븐이 있었다. 프랑스엔 요즘에도 장작 난로를 사용하는 주택이 꽤 많지만, 주방에 장작 오븐을 두는 집은 드물어서 실제로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시누이의 집에 처음 방문했는데 주방에 커다랗고 검은 난로가 턱 하니 놓여있었다(검고 커다란 그 난로는 정말이지 ‘턱’ 하니 놓여있었다는 말 외엔 설명이 안 된다).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던 난로, 바로 그렇게도 만나보고 싶었던 장작 오븐이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장작을 넣는 곳, 바로 아래에 재를 꺼낼 수 있는 곳, 옆으로 적당한 크기의 오븐과 온도계가 달려 있었다. 윗부분엔 연통이 달려 있고 세 개의 원형 틀이 뚫려있었다. 이 틀들은 무엇에 쓰이는 건가 궁금했는데, 시누이가 요리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화력 조절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븐 위에 프라이팬을 얹고 요리하다가 좀 더 센 불이 필요하면 긴 쇠막대로 틀 하나를 꺼낸다. 그럼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서 불이 직접 프라이팬에 닿을 수 있다. 더 센 불이 필요하면 더 큰 크기의 틀을 하나씩 더 꺼내는 식이다.


이건 천재의 발명품이 틀림없다, 고 감탄했다. 장작 하나로 오븐도 쓸 수 있고 화력 조절도 되는 버너도 쓸 수 있다니. 그러나 장작 오븐의 역할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제 겨우 ‘기본’ 기능만 봤을 뿐이다. 바쁘게 요리를 마치고 시누이가 축축하게 젖은 수건들을 적당히 빤 뒤 탁탁 털어 장작 오븐에 달린 기다란 손잡이에 걸었다. 아! 손잡이엔 화력 조절을 위한 쇠막대와 장작 쏘시개 등이 달려 있었고 수건을 걸기에도 넉넉한 길이였다. 요리하다 오븐에 몸이 닿지 않게 하는 방어막 역할도 한다고 한다. 난로 하나가 이렇게 다재다능할 수 있는 건가.



장작 오븐이니 장작이 필요하다. 시누이가 나가서 장작을 좀 더 가져와달라고 하자 남편이 외투를 챙겨 입고 양동이 하나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돌아온 남편은 가득 쌓인 눈 때문에 금세 다 젖었다며 신발을 벗어 장작 오븐 뒤편에 놓았다. 뒤로 가보니 남편 신발뿐 아니라 온 식구들의 신발이 옹기종기 모여 말려지고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눈이 좀 묻었다며 장작도 난로 옆에 바싹 붙여 놓았다. 장작 오븐은 부엌, 아니 집 한가운데서 눈 오는 밤의 축축한 존재들을 모조리 말려버리겠다는 기세로 불타고 있었다.


수건도 신발도 장작도 말려지는 동안 레드와인이 듬뿍 들어간 스튜는 한참을 그렇게 졸여졌다. 빵 한 조각 뜯어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동안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에, 따뜻한 온기에 끌려 온 식구들이 장작 오븐 주위로 몰려들었다. 가만히 서 있기 민망한지 식구들이 하나둘씩 자잘한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은 장작불을 뒤적거렸고, 조카는 부엌 상판을 닦았고, 난 접시를 닦았고, 다른 시누이는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작 오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기에 있었다. 요리하는 이를 혼자 두지 않게 하는 것. 모두가 주방에 모여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 그제야 왜 시누이네 가족이 이 커다란 장작 오븐을 집 한가운데에 두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리가 완성되어 모두 식탁에 앉아 잘 조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를 먹을 즈음 집안엔 요리 냄새가 빠져나가고 은은한 장작불 냄새가 퍼졌다.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부엌으로 들고 가니 장작불은 천천히 사그라들고 있었고 신발과 수건은 모두 잘 말라 보송보송했다.



알맞게 데워진 집, 적당히 매콤한 나무 연기 냄새, 은은하게 남은 불씨에 뭉근히 끓여진 허브티, 내일 아침 신으면 기분 좋을 잘 마른 신발. 이 모든 게 장작 오븐 하나가 만들어낸 따뜻함이라니. 이제 장작 오븐 없는 겨울은 상상할 수 없다는 시누이. 그렇다. 나도 이제 장작 오븐 없는 미래의 집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부터 내가 그린 모든 집엔 장작 오븐이 들어가 있다. 평면 투시도 속엔 항상 동그란 연통과 뚜껑 자리가 그려진 커다랗고 네모난 장작 오븐이 집 한가운데 박혀있다. 주방을 그릴 땐 장작 오븐의 자리를 먼저 정한 후 그에 맞춰 나머지 구조를 정한다. 그럼 집을 데울 필요가 없는 여름엔 어떻게 요리를 할 거냐고 묻는 남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집 바깥에도 장작 오븐을 두는 건 어때?” 거대하고 꽤 비싼 장작 오븐을 두 개 놓기 위해 돈을 조금 더 벌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줄리아 차일드처럼 거대하고 든든한 요정 같은 존재는 집에 두 개, 아니 세 개 있어도 넉넉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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