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에 둥글게 몸을 말아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내 고양이를 보고 있자면 가끔 묻게 된다. 이 아이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내 고양이는 여느 고양이처럼 하루의 3분의 2를 자면서 보낸다. 자고 또 자는 평화로운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에까지 다다른다. 혹시 저기 꿈 너머의 삶이 진짜 이 아이의 삶인 것은 아닐까. 눈을 떠 밥을 달라고 보채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창문 앞에 앉아 새들을 눈으로 좇고, 내 무릎에 올라와 애교도 부리는 일들은 그저 작은 일탈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지금의 삶을 살다가 가끔 여행을 떠나거나 카페에 가서 휴식을 취하듯 이 아이도 꿈 너머에 진짜 삶을 살다 이쪽 세상으로 여행을 오는 건 아닐까.
그럼 내 고양이는 진짜 삶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가끔 입을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발길질도 하는 걸 보아 사냥을 하거나 다른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짐작했다. 어느덧 나의 통통한 고양이는 열 살이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자면서 과격한 몸놀림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나이를 먹으며 사냥에도 장난에도 흥미를 잃은 걸까? 그럼 지금은 무얼 하며 지낼까. 연애라도 하거나 친구들과 조용히 사색하는 걸 즐기는 중일 수도 있겠지?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이 아이는 지금 집을 짓고 있는 게 아닐까? 이쪽 세상에서 가져보지 못했던 집을 조금씩 짓고 있는 거다.
나의 고양이가 지은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높은 곳을 좋아하니까 크고 튼튼한 나무 위에 트리 하우스를 지었을 수도 있겠다. 겁이 많은 아이니까 집을 나무에 밧줄로 꽁꽁 묶어두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나무 아래로 개들이 지나다닌다면 무서워도 작은 테라스 하나는 마련해두었을 것이다. 개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곳에서 약 올리는 걸 좋아하니까.
의외로 첨단 기기가 가득한 집일지도 모른다. 나무 아래로 내려가는 게 귀찮으니 늘 깨끗한 모래가 나오는 화장실이 있고, 딱 화나지 않을 만큼 잘 피해 다니는 장난감 쥐가 있는 헬스 룸도 있고, 엄마 고양이의 혀처럼 생긴 브러시가 자동으로 털을 빗겨주는 욕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심한 듯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분명 컴퓨터 모니터에 자주 집중하는 모습을 몰래 봐왔다. 다 배워뒀다 집 짓는데 써먹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컴퓨터라고 하니 떠오른다. 내 고양이는 집에 소파를 두는 대신 노트북 키보드를 가져다 놓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키보드 앞을 장식할 카펫 대신에 중요해 보이는 서류를 얹어두면서 말이다. 침대는 뭘로 만들었을까. 털이 잘 달라붙는 모직 코트나 흰 수건일 가능성이 높다(내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이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빠져 붙은 자신의 털을 보며 흡족해할 얼굴이 떠오른다.
내 고양이는 이 정도의 방 외엔 별다른 공간은 성가셔하겠지만, 가끔 심심할 때를 위해 서재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서재의 책장엔 책 보다 떨어뜨리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물건들이 아슬아슬하게 얹어져 있어야 한다. 앞으로 사뿐사뿐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의 공간도 있어야 하고. 서재 한구석엔 오래된 패브릭 암체어나 종이 상자가 필수다. 서재에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 건강에 좋지 않으니 스트레칭도 하고 발톱 관리도 할 수 있게끔 벽지는 두꺼운 천으로 된 것이 좋겠다.
내 고양이는 지금 집을 얼마큼 지었을까. 가구를 놓는 일만 남은 정도일까. 아직 구상만 하고 있는 걸까. 그런 말을 하면서 이 아이의 배를 문지르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다르게 느껴진다. 편히 쉴 수 있는 집 잘 짓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나는 내 고양이가 언젠가 ‘진짜 삶’이 있는 곳에 남아 더는 이쪽 삶으로 넘어오지 않는 날이 오는 게 두렵다. 얼굴에 얼굴을 맞대고 ‘오늘 거기서 뭐 했어?’ 하고 살갑게 물을 수 없는 날이 오는 게 무섭다. 더는 따뜻하게 안아줄 수도 털을 빗겨주는 것도 상자를 양보하는 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는 게 속상하다.
정말 그런 날이, 지난 겨울옷을 정리하다 주인 없는 털을 발견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그런 날이 온다면, 난 내 고양이가 지은 집을 떠올리고 싶다. 이제 집을 다 지어서, 가서 편히 지내는 중일뿐이라고 안심하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꿈에서라도 내 고양이의 ‘진짜 삶’으로 넘어가 그 아이의 집의 방문을 두드려보고 싶다. 얼른 달려가 얼굴에 얼굴을 맞대고 ‘오늘 여기서 뭐 했어?’ 하고 살갑게 물으며 안아주고 싶다. 내 고양이가 지은 멋진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내 고양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만, 그래도 오래오래 내 곁으로 여행 와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