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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희 Nov 18. 2024

내 몸을 통과한 책

약 2시간 뒤면 기차를 타고 있을 것이다. 기차를 자주 타서 좋다. 서울에 갈 땐 하루에 한 대 있는 증평-서울 무궁화호 직행을 주로 탄다. 아침 10시경 출발해서 12시쯤 서울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면 항상 기분이 좋다. KTX가 아니라서 좌석 테이블도 없고 의자도 그렇게 편하지 않지만, 만 원이라는 저렴한 값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서울에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어릴 적 살던 곳과 프랑스에서 살던 곳에서도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주로 자차로 이동을 했고, 아니면 고속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그런데 이제 어딘가로 이동할 때 기차라는 옵션이 생긴 것이다. 괴산엔 기차역이 없어 아쉬웠지만, 이사 온 곳은 증평이랑도 가까워 기차역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KTX를 탄다. 순천에 북토크가 있어 혼자 내려가는데, 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는 없는 모양이다. 증평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오송에서 KTX로 갈아탄다. 덕분에 표값이 꽤 비싸서 흠칫 하긴 했지만, 예약제 서점을 이용한다는 마음으로 결제했다. 테이블도 있는 편한 좌석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멋진 풍경을 보며 신나게 책을 읽어야지. <치치새가 사는 곳>이라는 짧은 소설책을 들고 가서 오며 가며 다 읽을 생각이다. 그럼 이 책은 내게 '순천 기차 여행길에서 읽은 책'으로 남겠지. 조금씩 야금야금 집에서 읽는 책도 좋지만, 여행길에 훅 다 읽어서 '00에서 읽은 책'으로 기억하는 책도 많아지길 바란다. 


나는 어느 해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엉엉 울며 전부 읽어버린 책 한 권을 절대 잊지 못한다.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라는 가벼워 보이는 제목의 일본 소설이었다. 별생각 없이 공항 서점에서 산 책이었는데, 유난히 그때 내 상황과 잘 맞고 처절하게 공감되어서 서럽게 울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후로 어딘가로 이동할 때, 어딘가로 여행 갈 때, 그때그때 끌리는 책 한 권은 반드시 가지고 혹은 사서 간다. 잘 읽히지 않는 여행길도 분명 있지만, 가끔 이렇게 '내 몸을 통과한' 책을 만나게 되기도 하니까. 오늘은 우연히 고른 책 제목이 <치치새가 사는 곳>이다. 철새가 떠오르는 순천으로 오가는 길에 읽게 되었다. 이번엔 이 책이, 이 여행이 어떤 흔적을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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