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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CO Sep 11. 2019

배팅하시겠습니까?

마카오 여행,  가난한 노동자의 카지노 체험기 

“글쎄, 별로 기대가 안되는데.”

“기대 없이 가면 나름 괜찮은 곳이라니까.”


친구가 나를 꼬셨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한껏 여유로운 발리나 태국인데 

마카오? 카지노, 쇼핑, 고급 호텔이 즐비한 향락의 도시는 그닥. 


“어차피 나 혼자 가려고 방은 다 예약했거든. 너는 그냥 오기만 해. 어때?”


솔깃하다. 우리가 여행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이유. 시간이 있을 때는 돈이 없고 돈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다. 절묘하게 그렇다. 그리고 나는 요즘 시간은 많고 통장 잔고는 더없이 겸손해지고 있는 중이다. 항공권도 저렴하고 방값도 안 든다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번 가볼까? 


마카오 공항에 내려 택시를 기다리면서 이미 마카오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일수가방을 옆구리에 낀 – 파우치 백이라기엔 일수가방이 맞다 – 남자들이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곁을 서성였다. 우리에게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뭐라고 웅얼웅얼 말을 건네는데 못 알아들었다.


“돈 빌려주는 사람들이야.”


친구가 속삭였다. 과연 직업의 세계란. 마카오까지 건너가 새벽 2시의 공항에서 노름꾼들을 대상으로 영업 중인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나 열심히 살고 있다. 




온 도시를 돈으로 바른 마카오에서 당황스럽게 허름한 것은 택시였다.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인지 3박 4일 동안 탔던 택시가 모두 비슷하게 낡아 있었다.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라더니 마카오 야경은 또 생각보다 시시했다. 화려하기는 홍콩이, 운치 있기로는 서울의 야경이 더 낫지. 호텔 로비는 또 왜 이리 큰지 리셉션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엘리베이터에서 방까지 가는 데만 한세월이다. 

방에 들어가 창밖을 내다보니 엉뚱하게 에펠탑이 보인다. 

‘뭐야 유치하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인데 내가 또 헛된 기대를 했나 보다. 혹시나 했던 딱 그만큼 실망하고 말았다. 



다음 날 늦으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저녁이 되어 드디어 카지노에 가보기로 했다. 어마 무시하게 컸다. 혹시나 길을 잃을까 입구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만약 헤어지게 되면 어디에서 만날 지를 정했다. 



"저기, 롤렉스 앞에서 만나는 거야."  


카지노 한가운데에 커다란 롤렉스 매장이 있었다. 돈을 따면 그곳에서 시계를 하나씩 사서 차는 거란다. 대체 얼마를 걸고 어떤 게임을 해야 롤렉스를 살만큼 딸 수 있는 것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친구가 지폐를 칩으로 바꾸고 블랙 젝 테이블을 찾았다. 한참 게임이 진행 중인 테이블 뒤에 서서 나에게 게임의 룰을 설명해준다. 무슨 숫자에 가까운 편이 이기는 게임이라는데 도통 모르겠다. 한참 지켜보다 친구가 게임에 끼기로 한다. 나는 빈 의자에 앉아 지켜본다. 테이블을 톡톡 치거나 공중에 손을 휙 젓는 동작으로 카드를 더 받을지 말지 딜러와 신호를 주고받는다. 언어의 장벽 없이 게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다 결국 계속 잃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칩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긴장해서인지 배가 살살 아파온다. 친구가 의자에서 일어선다. 흐름이 좋지 않으니 다른 테이블로 가보자고 한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계속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중국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랬고 카지노에서도.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는 경우는 뭔가 팔려는 경우뿐인데. 중국은 그런 삭막함이 좀 덜한 모양이다. 어쩐지 한국 사람들은 이래저래 참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앉아 게임을 하는 테이블에 얼굴이 뽀얀 남자 두 명이 다가온다. 잠시 지켜보다 의자에 앉는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어려 보인다. 스물한 살? 카지노에 들어올 수 있는 나이를 간신히 넘겼을 것 같은 앳된 얼굴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칩의 색깔이 다르다. 고액의 칩들을 무더기로 들고 있다. 저게 다 얼마인지. 웬만한 대기업 월급은 훌쩍 넘어 보인다. 대단한 운으로 저걸 다 땄을까? 아니면, 그냥 금수저? 어느 쪽이건 기분이 묘하다. 아니 별로다. 


결국 친구는 그 테이블에서 칩으로 바꾼 돈을 다 잃었다. 

“우리 나갈래? 다른 카지노로 가보자.” 

“그만 하지. 많이 잃은 거 아냐?”

“원래 그런 거야. 처음에 좀 잃어 줘야 따는 거라고.”

우리는 다른 카지노로 가기로 했다. 그래, 니 돈이지 내 돈이냐. 니 돈 네 맘대로 쓰는데 내가 뭐라고.


택시를 타고 윈 호텔 카지노로 향했다. 얼마 안 되어 또 다 잃었다. 대체 지금까지 잃은 게 얼마야. 내 돈도 아닌데 미친 듯이 아깝다. 


나라면 그 돈으로 한 달은 살 텐데, 차라리 뭘 하나 샀을지도. 하나 마나 한 생각을 자꾸 하고 있다. 어쨌든 그건 내 돈이 아닌데. 어차피 남의 돈, 길에다 뿌리든, 뭘 사든, 도박을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테이블 위를 오가는, 딜러가 쓸어 담는 노랗고 파랗고 까맣고 빨간 칩들을 보면서 저게 다 얼마야 자꾸만 속으로 헤아리고 있는 나를 어쩔 수가 없다. 


세 번째 카지노에 들어갔다. 친구 혼자 게임에 집중하게 두고 나는 빈 게임 머신 앞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도저히 못 보겠다. 아무리 내 돈이 아니라도 나는 못 보겠다. 30분쯤 지나 가보니 친구의 얼굴이 밝다. 결국 친구는 잃었던 돈을 모두 만회하고 백만 원 정도의 돈을 땄다. 롤렉스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몇시간 놀면서 백만 원을 벌었다. 기분이 묘하다. 


이미 많은 돈을 잃은 상황에서 딸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게임을 계속할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태 잃었지만 다시 내 운이 돌아올 것이라는 위험한 믿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이 환하게 밝힌 조명 아래 도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을 나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결국 나는 ‘카지노 체험’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왔고 친구는 백만 원의 돈을 벌어(?) 왔다. 거의 다 잃어갈 때쯤 몇 판을 연속으로 이겼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신이 나서 떠드는 친구의 영웅담이 택시에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잊을만하면 이어졌다. 


따서, 아니 잃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잃었으면 나는 그 돈이면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몹시 속이 상했을 테니까. 어차피 내 돈도 아닌지만 배가 아프게 아까웠을 테니까. 


3박 4일 동안 우리가 카지노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눈물이 날만큼 멋진 공연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끝내 주는 마사지도 받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카지노에서 느낀 이질감과 공허한 쓴 맛은 그 모든 경험을 압도할 만큼 강렬하게 남았다.


인천 공항에 내리자 12시 종이 울리고 마법은 사라졌다. 아름다운 드레스는 누더기 옷으로, 마차는 호박으로, 마차를 끌던 멋진 말은 생쥐로 변해버렸다. 궁전에서 왕자님과 춤을 추던 나는 사라지고 구질구질한 현실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저 임금을 받으며 밤새도록 편의점에서, 고깃집 불판 앞에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상사의 추행을 이를 악물고 견뎌가며 일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 곳에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의 재미를 위해 던져지는 그 돈들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치사하고, 더럽지만 눈물 나게 소중한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생각이 난다. 


이상한 나라의 시골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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