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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CO Mar 31. 2020

글쓰기 수업의 추억

지금은 사라진 <소글> 수업을 그리워하며 

"OO님 글은 어떤 소재로 시작하든 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매주 수요일 저녁, 글쓰기 수업에 간다. 오늘은 처음으로 과제로 낸 내 글의 교정을 받았다.

파란 펜으로 여기 저기 표시가 되어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담임 선생님에게 일기장 검사를 받던 꼬꼬마 시절 이후에 내 글을 교정 받아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첨삭한 부분들을 살펴 보는 눈빛이 들떠있다. 

내가 이렇게나 자주 대화문마다 "어" "응" "아" 를 썼구나.  

"있다가 해." 가 아니고 "이따가 해." 구나. 


은성은 해바라기같다. 뜨거운 여름 날, 팡 하고 샛노랗게 피어난 해바라기. 

"망설일 것 없어요. 이렇게 활짝 피는 것도 괜찮잖아요?" 라며 까르르르 웃는다. 

보고 있으면 실내에서도 광합성이 되는 기분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엔진이랄까, 생기의 파장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묵직한 세단처럼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인생을 주행한다. 어떤 사람은 경운기처럼 보잘 것 없는 속도에 비해 심각하게 시끄럽다. 몇몇은 비현실적인 우주 발사체 엔진을 타고나기도 한다. 은성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같다. 엔진 따위는 애초에 없다. 그저 제 발을 열심히 굴려서 나아간다. 속도가 우선 순위가 아니다. 

"오늘 날씨 정말 끝내 주네요!"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뺨을 스치는 바람을 만끽한다. 그러다 아무 곳에나 멈춰 서서 울퉁불퉁한 흙길을 걷기도 하고 지치면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기도 한다. 


나는 사람을 상상한다. 내가 가진 환상을 상대방에 투영한다. 그들의 영혼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그녀의 큰 눈을 마주할 때면 온 힘을 다해 나를 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 아무 것도 보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가끔 웃고 있는 얼굴이 머쓱해 시선을 피하게 된다. 




은성의 말에 돌아보니 내가 쓴 글은 주로 어떤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어쩐 일인지 분주하다. 

나는 관찰자이면서 멈춰 있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혼자 쓸 때 전혀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다. 정말 그렇다. 

늘 어떤 글을 써보라 태스크를 받으면, 주로 한 사람을 관찰하거나 그 사람에 대한 내 느낌 위주로 글을 썼다. 세명이 등장하지도 나 혼자 있지도 않다. 늘 내가 아닌 단 한사람이 내 글 속에 있다. 


글은 얼마나 사람을 잘 반영하는지.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딱 한사람과 만나는 것에 익숙하고, 여러명이 있는 상황에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내 글 속에서는 늘 단 둘이다. 


나 그리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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