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COCO Dec 21. 2022

성공적인 프로젝트 설계의 조건 feat. 종이의 집


<종이의 집 - 공동 경제 구역 > 넷플릭스 



<종이의 집>은 범죄의 정의. 죄는 무엇이고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 그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야합하는 동안 소시민들은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어른의 보살핌 없이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먹고 남자들의 욕정에 무방비상태로 스러져가는 남한의 여자아이, 

아픈 자식을 살리기 위해 어두운 밤 강을 헤엄쳐 탈북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눈앞에서 잃고 25년을 수용소에서 자란 소년, 그 소년을 빼오기 위해 필요한 어마어마한 돈을 위해 은행을 털기로 결심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마저 잃고, 그러니까 가족 모두를 잃고 혼자 남은 소년. 그 소년은 자라서 교수가 되고 아버지의 마지막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베를린, 도쿄, 모스크바, 덴버, 나이로비, 리우, 헬싱키, 오슬로. 본명 대신 세계 각국의 도시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부터 전략의 시작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고 믿었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계산할 수는 없었던 교수  


대의명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우리는 단지 개인적인 부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를 해하는 범죄 집단이 아닌 그보다 위대한 대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대중을, 그리고 관객을 설득해야 했다. 


조폐국에서 돈을 찍어내고 땅굴을 파서 탈출한다는 시나리오는 무식하기 짝이 없다. 돈을 탈취하는 과정 자체는 <이탈리안 잡> <도둑들> 같은 영화에 비하면 허술하고 단순하기만 하다. 실제로 돈을 조폐국 바깥으로 빼내는 과정은 마지막 회차 한편에서 아주 간략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보다는 그들이 한탕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챙겨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살아가기를 꿈꾸는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막바지에는 의적, 또는 영웅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전략의 정점이다. 그들을 향했어야 하는 단죄의 화살을 정치인과 그에 결탁한 기업, 사회 부조리를 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교수의 설계는 그 점에 묘수가 있었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은 그렇게나 해피하게 각자의 사랑과 미래를 향해 수천억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지는 순간에 관객 모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큰 도둑, 작은 도둑 


이 이야기를 작게 축소하면 과연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을까?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피해 도망가버린 어머니. 홀로 방치된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법을 익혔다. 배가 고파서 다른 아이들의 것을 훔치고 뺐었다. 그것이 그 아이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었다. 어른들마저 두렵게 만드는 눈빛을 갖게 되었다. 그 아이는 소년원에 가게 된다. 소년원을 출소한 이후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길은 더 없어졌다. 20대의 청년은 다시 폭력과 범죄의 세계에서 사회를 익힌다. 그의 주변에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형, 친구, 동생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직의 일원으로 가담해 은행을 턴다.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겁을 주고 그곳에 있는 돈을 모두 가져오는 것이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대의 따위는 생각할리 없었다. 대학생들이 벤처 동아리에서 창업으로 대박을 꿈꾸듯 그가 노릴 수 있는 한방은 크게 터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은행 창구 직원을 인질로 삼아 은행에 있던 현금 3억을 챙겨 달아난다. 성공이다. 함께했던 동생들과 정확하게 수익을 배분한다. 그러고 나니 수중에 남은 것은 몇천이다. 은퇴는 요원하다. 


다음엔 어디를 누구와 털어볼까. 어떻게 해야 리스크를 최소화, 아니 안 걸리고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까. 매일 머리가 아프게 고민하면서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CCTV의 위치를 확인하고 가담시켜도 될만한 녀석들을 신중하게 고른다. 그는 어느 날 단 한번 실패하게 되고 그 순간 절도범으로 감옥에 가게 된다. 그의 인생을 두고 그 누구도 박수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대의 재산이 자신보다 10배가 넘으면 그를 무시하고 헐뜯지만 100배가 넘으면 두려워한다. 1000배가 넘으면 그를 위해 기꺼이 심부름하고 1만 배가 넘으면 그의 수하에서 하인 노릇을 기꺼이 한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 - 사마천 ‘사기’ 중 


“사람들은 도둑을 막기 위해 노끈으로 상자를 튼튼히 묶고 빗장과 자물쇠를 잘 채워둔다. 큰 도둑은 (이를 두려워하기는커녕) 통째로 들고 달려가면서 오히려 노끈이 풀리거나 자물쇠가 망가져 그 안의 물건이 도중에 쏟아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 장자 ‘거협’ 편 중 


부자든 도둑이든 그 규모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다. 

뭐든 할 거면 크게 해야 되는 것은 범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케일이 압도적이면 평가도 달라진다. 잡범, 사기꾼과 정치사범, 경제사범 모두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다르다. 리스크가 동일하다면 - 걸리면 좆됨- 크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 비즈니스 역시 동일하다. 망하면 좆된다. 결정해야 한다. 


프로젝트 목표 정의는 최대한 원대하게. 

이것이 제1의 원칙! 




성공적인 (범죄) 프로젝트의 조건 


우선 내가 설계자인지 기술자인지 냉정하게 점검하고 그에 맞춰 기능을 고도화하는 시간을 쌓아야 한다. 

블루프린트를 그리는데 시간을 쏟을 것인가 땅을 팔 수 있는 체력과 기술을 단련할 것인가.


디렉팅을 하는 사람에게는 눈과 귀, 손발이 필요하다. 머리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손발은 머리가 없으면 성과 없이 고생만 하기 십상이다. 모든 부분이 합쳐져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원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게다가 ‘잘’ 하기까지 하려면 그 부분들의 합이 그야말로 관건이다. 얼마나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그 판단을 빠르게 인출해낼 것인가.  


문제는 손발은 늘 머리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시만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는 손발을 하찮게 여겨 자기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기 쉽다.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 조직 관리, 인재 관리, 보상 관리 시스템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위기관리, 업무 매뉴얼 


하나의 (범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1. 필요한 기능을 가진 이들을 모은다 

2. 공동의 목표에 헌신할 것을 확인한다 

3.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신뢰를 구축한다 

4. 시나리오를 만들고 가능한 모든 변수에 plan B를 준비한다 

5. 위기관리 프로토콜, 매뉴얼을 준비한다 - 의사결정자를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포함 


교수와 팀은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감정과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을 헤쳐나가는 임기응변은 1, 2, 3번이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는가에 달려있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실력, 공동의 목표에 대한 집념, 그리고 팀 구성원에 대한 믿음. 


<종이의 집>에서 공동의 목표는 한 번도 변함없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섬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 신분을 세탁하고 원하는 곳 어디로든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을 만큼의 막대한 돈.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의 탐욕을 비난하고 그들이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저질러온 만행을 폭로하지만 그들의 목표 또한 다르지가 않았다. 개인적인 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의적이라도 된 듯 당당하게 퇴장한다. 박수! 

이것이 비즈니스의 전략이자 브랜딩이다. 


내래 이 작전에 목숨을 걸었디


치밀한 전략과 실행 능력, 구성원의 헌신. 

범죄든 비즈니스든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정공법이다. 




eplilogue 


- 원작은 보다 말았는데 나는 한국 버전이 훨씬 재미있었다. 좀 더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라서인지. 

- 종이의 집을 국민에게 돌려준 그들의 행복을 마냥 응원할 수 없는 것은 결국 그 추가발행되어버린 4조가 국민들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가져가든, 베를린과 도쿄 일당이 가져가든 결국 도둑맞은 4조가 아니냐는 말이다. 

- 30억이라면 어디까지 각오할 수 있을까 1분 정도 고민해 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3000억이라면 죽음을 각오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진 기술이 그 소수정예에 낄만한 것이 없다. 교수가 안 뽑아주겠지. 범죄마저도 실력이 필요해 



 

 


작가의 이전글 첫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