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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Dec 30. 2022

유소유 #52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2022년 투자를 하면서 깨달은 3가지 교훈

2022년에는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블로그에 주요기사를 정리했고, 계획된 일정에 맞춰 브런치에 시리즈물을 연재했다. 또한 운동과 독서도 꾸준히 하면서 몸과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봐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냈던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주의에 사로잡혀서 새해가 다가오는 설렘보다 올해가 지나가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은 성공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2022년 투자를 하면서 깨달은 3가지 교훈을 제시하며 마무리지으려 한다.



1. 역대급 위기에서 의미 있는 투자 성과를 냈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했다. 3월 27일,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상하이를 전면 봉쇄했다. 7월 13일, 미국 CPI 상승률이 9.1%를 기록했다. 8월 9일, 8월 16일, 9월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CHIPS Act, IRA, NBBI에 차례대로 서명했다. 9월 30일, 달러 원 환율이 1445까지 급등했다. 10월 16일, 중국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됐다. 11월 3일, Fed가 4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이 선방했다. 올해 증시를 뒤흔든 이벤트를 정리해봤는데 정말 역사적인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나는 역대급 위기였던 시장을 하루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시장이 너무 어렵다'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시장은 결코 쉬운 적도 없었고 어려운 적도 없었으며, 모두 결과를 알고 난 뒤에 내리는 사후 판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물가와 환율 쇼크에 책에서만 보던 전쟁과 봉쇄가 현실이 되자 나 또한 올해 시장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며 괜히 투덜댔다. 나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투자의 역사는 경기 사이클과 심리 사이클 속에서 반복되었으며, 지나고 보면 위기는 곧 기회였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진행됐던 세계화가 장벽을 세우고 십여 년 동안 유지됐던 저금리가 고개를 들면서 나조차도 이제는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게 아닐까 의심을 품었다.



올해 나의 주식 투자 수익률은 -4.89%이다. 예적금도 5% 가까이 주는 시대에 괜히 주식으로 돈을 날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반토막 나는 종목들이 수두룩했던 시장에서 이 정도면 괜찮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단리가 적용되고 이자소득세가 부과되는 예적금 대신 주식 투자로 복리의 마법을 누리고 비과세 혜택을 받으면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시장이 무너지는 공포 속에서 주식을 계속 샀던 경험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투자를 하면서 올해 같은 위기가 최소한 3번은 더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세상이 망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용기를 갖고 주식을 늘릴 것이다.



2. 투자에 미쳐보는 삶도 의미가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투자 관련 뉴스 기사를 보고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1주, 2주, 4주마다 '유소유', '주가 없는 주식학', '프로듀스 유니콘'이라는 투자 콘텐츠를 기획해서 브런치에 올렸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시작했던 활동이었다. 어떤 날은 몸이 아프고, 시간이 없고, 주제가 떠오르지 않고, 구조화를 해내지 못했지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써내려갔다. 출근 전, 퇴근 후, 주말에도 오로지 투자에 관한 생각 뿐이었다. 처음에는 하찮게 느껴졌던 나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는 어느덧 각각 364 편, 90 편의 글이 쌓여 있었다. 나는 일 년 동안 투자에 미쳐보는 삶을 살아냈다.



블로그에는 매일, 브런치에는 매주 투자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면서 투자를 습관화할 수 있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모든 글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다시 보면 너무 엉망이라 부끄러운 글도 있고, 예전에 썼던 글과 지금의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이 당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훗날 귀중한 무형자산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소비와 지출, 저축과 투자, 결혼과 여행처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른 소재에 대한 생각과 투자 관련 책, 영상, 보고서에서 영감을 받은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투자 마인드를 갖추어 나갔다.



52 가지 섹터로 200여 개 상장사와 13 가지 토픽으로 19 개 비상장사를 분석하면서 투자의 기초를 다질 수도 있었다. 기업마다 영위하는 사업은 다르지만 분석하는 방법은 거의 비슷했다. 일부 산업과 기업은 아무리 공부해도 용어와 개념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투자 유니버스에 편입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볼 기업과 투자하지 말아야 할 기업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넓고 얕게 훑어봤다면 내년에는 좁고 깊게 톺아보려고 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올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는데 내년에는 엔비디아, 퀄컴, TSMC, ASML 등 해외 기업까지 시야를 넓혀서 공부할 계획이다.



3. 투자가 아닌 일상에서 의미를 찾을 때가 되었다.


숫자를 보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물가 폭등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졌다. 빅스텝이니 자이언트스텝이니 하늘 모르고 치솟는 금리 인상 때문에 주택 원리금 청구일이 다가오면 소름이 돋았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1400 원대까지 뚫린 환율 상승 때문에 국내주식 투자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투자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 투자가 행복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시시하게 느껴졌고 투자 공부가 일이자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투자 열풍이 끝나고 나서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다른 가치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투자가 아닌 일상의 가치들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투자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건강을 잘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을 잘 챙기라는 말을 평소에도 인삿말처럼 주고받기 때문에 막상 실제로는 건강을 잘 챙기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잔병치레가 거의 없었고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가 한창일 때에도 피해갔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은 줄로만 생각하고 지냈다. 하지만 최근 A형 독감으로 한바탕 고생하고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로 쌓였던 부담이 부신피로증후군으로 나타나면서 소중한 연말 2주가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의 절반이라도 나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았다.



올바른 투자 만큼이나 나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삶에서 투자는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출퇴근길에서도 매일 투자와 관련된 글을 읽었고, 평일이나 주말이나 하루 종일 투자 생각만 했다. 하지만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사건 이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줄 취미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투자자로서는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성숙해지지 못했다. 내년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테지만 그 전에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며 인생을 행복하게 가꾸어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2022년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큰 마음을 먹고 투자라는 길로 들어섰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내 인생의 지향점은 아니었다. 다행히 한 방향으로 달렸기 때문에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인생이라는 큰 길로 다시 나오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가보고 싶은 길은 많은데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가는 길을 선택했다. 2023년의 마지막 날에 나는 또 후회할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모든 것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고, 가보지 않았다면 깨달을 수 없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Epilogue

유소유 시리즈 연재를 마쳤습니다. 올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했던 중앙은행 때문에 주식, 채권, 부동산, 암호화폐까지 모든 자산 가치가 폭락했지만 갈 곳을 잃은 투자자들이 예적금으로 몰리면서 화폐 가치는 급등했습니다. 다시 'Cash Is King'의 시대가 돌아온 것일까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부자가 되는 공식은 변치 않았습니다. 팔지 않아도 되는 좋은 자산을 군중의 공포심을 이용해 싸게 사고 평온한 마음으로 오래 소유하는 것이죠. 소유권을 얻는다는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폐를 직접 구하러 다니기보다 화폐가 나오는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경제적 자유와 정서적 행복까지 추구하는 사람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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