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본주늬 Jul 29. 2023

반도체는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

Keywords

-상반기 결산: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담지 못한다

-메모리: 겉으로는 안심, 속으로는 고민

-팹리스: 앞에서는 플랜A 고집, 뒤에서는 플랜B 궁리

-파운드리: 안으로 굽는 팔, 밖으로 뻗는 다리

-하반기 전망: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지난 주 ASML과 TSMC의 실적 발표에 이어서 이번 주에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인텔이 차례대로 실적을 발표했다. 아직 퀄컴, AMD, 엔비디아 같은 주요 팹리스 기업들이 실적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반도체 산업의 2023년 상반기를 총평하자면 어둠 속 빛 한 줄기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유례 없는 경기침체가 예상되었고 실제로 PC와 스마트폰의 수요는 매우 부진했다. 메모리 업체들은 감산을 통해 공급을 조절했고 팹리스가 주문량을 줄이자 파운드리의 가동률도 떨어졌다. 그 와중에 AI라는 새로운 모멘텀이 반도체 공장을 다시 돌아가게 만들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가득했던 상반기였겠지만 이제는 다 털어버려야 한다.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반기를 맞이해야 한다.



1. 메모리.


작년 4분기부터 시작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출혈이 잦아들었다. 비록 양대 메모리 업체의 상반기 적자가 각각 9조 원, 6조 원에 육박했지만 1분기보다 2분기에 그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빅테크 기업 간 AI 경쟁이 생존을 위한 전쟁으로 심화되면서 고성능 프로세서와 호환되는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DDR5와 갑자기 떠오른 HBM3가 매출과 영업이익을 지켜준 덕분에 응급치료에 성공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재고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반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마트폰 신제품이 출시되고 데이터센터 서버교체도 예정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소식이다.


메모리 기업들이 겉으로는 안심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고민 중이다. 메모리 업계가 함께 행복해지려면 DRAM은 기본이고 NAND가 반등해야 한다. 하지만 NAND는 여전히 최악의 국면을 지나고 있고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쓰레드와 트위터의 경쟁으로 데이터센터 SSD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꺾여버린 심리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도 크다. AI가 단기 모멘텀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 트렌드로 이어지면 메모리 반도체도 시스템 반도체처럼 주문형 제품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수익성과 안정성이 증대되는 효과가 있지만 제품 간 불균형이 심해지기 때문에 마냥 좋기만 한 현상은 아니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와 함께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를 사업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2. 팹리스.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면서 세계화가 영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은 아시아로 넘기고 생산에 전념했다. 이들이 주장했던 효율성은 그럴싸해 보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갈라지면서 세계화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 드러났다. 반도체 산업에서 진행됐던 세계화는 사실 아시아화, 특히 대만화와 한국화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인텔은 IDM 2.0이라는 전략 하에 미국 리쇼어링의 선봉장이 되었고, 퀄컴은 인텔의 부활에 베팅하며 2나노 공정을 예약했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과 AMD의 CEO 리사 수는 각각 올해 6월과 7월에 조국인 대만을 방문해 TSMC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최첨단 파운드리 시설을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팹리스 기업들은 앞에서는 플랜A를 고집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플랜B를 궁리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리쇼어링이 결실을 맺으려면 인텔이 2나노 양산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TSMC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TSMC의 생산능력은 한정적이고 최첨단 라인은 VVIP 고객인 애플에게 선배정된다. 2순위를 확보하기 위한 팹리스 간 경쟁이 치열하고 TSMC는 가격을 올리면서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TSMC의 푸대접에 자존심이 상한 팹리스 기업들은 삼성전자로 고개를 돌리고 있고, 일정 부분 공정 기술의 격차가 있더라도 가격 협상력과 납품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멀티 파운드리 전략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 시기에 엑시노스 라인업을 재정비해야 한다.



3. 파운드리.


최근에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중간에 낀 대만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TSMC를 실리콘 쉴드라고 칭하면서 중국이 침략해도 미국이 보호해줄 것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는 TSMC의 최첨단 파운드리 라인이 대만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순간 실리콘 쉴드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TSMC가 갑작스럽게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건설 중인 공장 완공을 1년 가량 연기하고, 대만 주커에 반도체 R&D 센터를 개소한 것은 일종의 저항으로 해석된다. 작년까지는 미국 정부에게 끌려다녔지만 올해부터는 바이든 대통령도 재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레임덕 상태가 된다. TSMC가 협조하지 않으면 아쉬운 건 바이든 정부이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대만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파운드리 기업들은 안으로 굽는 팔도 있지만 밖으로 뻗는 다리도 있다. TSMC는 대만 신주 공장 외에 미국과 일본에 생산거점을 확보했고, 인텔도 미국 오하이오 공장과 함께 독일과 폴란드에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이 경제를 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안보를 지키는 것에도 중요한 전략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국내 투자와 해외 투자의 균형을 맞추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TSMC와 인텔이 해외로 진출하더라도 최고 선단 공정은 자국에 먼저 건설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평화적인 세계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핵무기를 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건설 중인 공장과 경기도 용인시에 건설 예정인 공장 간의 교통 정리를 확실하게 표명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그 어느 업계보다도 빠르게 변하지만 올해 상반기처럼 정신없이 지나갔던 시기도 없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만년 2인자였던 SK하이닉스가 30년 부동의 1위였던 삼성전자보다 앞서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로 분업화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대한민국, 일본, 대만, 유럽의 전략적인 포지션도 재편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더 이상 경제적 논리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2020년대는 대한민국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도 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제 2의 반도체 신화를 일구어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반도체, 소음 속에서 진실을 찾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