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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Aug 05. 2023

반도체는 일당백 싸움이다

반도체 업계를 주름잡은 위인들의 이야기

Keywords

-짐 켈러&라자 코두리: 외계에서 온 엔지니어

-젠슨 황&리사 수: 전세계를 흔들어 놓는 대만인

-진대제&임형규: 대한민국이 낳고 삼성전자가 기른 별


이번 주는 상대적으로 반도체 시장이 잠잠했던 가운데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텐스토렌트라는 다소 낯선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다는 기사가 이목을 끌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두고 있는 팹리스 스타트업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바로 반도체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짐 켈러이기 때문이다. 짐 켈러가 지나간 곳에서는 항상 괴물 같은 칩이 탄생했고, 그의 이직으로 반도체 업계의 판도가 뒤집히기도 했다. 조던 피터슨 교수의 처남이기도 한 짐 켈러는 AI가 조만간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고 곧바로 ChatGPT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텐스토렌트에는 또 다른 반도체 거장, 라자 코두리가 합류했다.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A급 인재 100명도 중요하지만 S급 인재가 꼭 필요하다



1. 짐 켈러&라자 코두리.


짐 켈러는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면 또 다른 도전을 향해 움직이는 전형적인 져니맨 스타일의 엔지니어이다. 1990년대 후반 AMD에서 애슬론 시리즈 개발을 주도하며 멀티코어라는 개념을 창시했다. 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이후 애플의 A 시리즈와 테슬라의 FSD 칩 개발을 주도하며 한 기업이 '하드웨어-소프트웨어-OS'를 통합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너져 가던 AMD로 복귀해 ZEN 아키텍처와 라이젠 CPU를 개발해 방심하고 있던 인텔에게 어퍼컷을 날리고, 그 다음에는 인텔로 넘어가 사파이어래피즈의 기초를 닦아 AMD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마치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의 밸런스패치를 하는 것처럼 짐 켈러는 반도체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어주었다.


라자 코두리는 짐 켈러와 애플, AMD, 인텔에서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았다. 짐 켈러에 비해 명성은 떨어지지만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그의 위상은 굳건하다. 대표적인 결과물로는 그가 2010년대 초중반 AMD에서 주도해서 개발한 라데온 GPU가 있다. 짐 켈러의 라이젠 CPU와 라자 코두리의 라데온 GPU는 AMD가 인텔,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이후 AMD의 경쟁사인 인텔로 넘어가 외장형 그래픽카드 사업을 이끌었는데 인텔이 처음으로 외부 파운드리에 생산을 위탁해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인텔은 ARC라는 그래픽카드 시리즈를 런칭하고 알케미스트, 배틀메이지, 셀레스티얼, 드루이드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발표했다. 인텔이 엔비디아와 AMD가 양분하고 있는 GPU 시장에 성공적으로 침투한다면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다.



2. 젠슨 황&리사 수.


젠슨 황은 샘 알트먼과 더불어 올해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한 명이다. 대만의 남부 지역인 타이난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AMD에서 근무하다가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에 설계 능력도 출중하지만 그는 CEO로서 갖춰야 하는 경영 능력도 탁월한데, 경쟁사가 그래픽카드 시장에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품 성능과 가격 정책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게다가 인텔이 CPU 생태계를 구축했던 것처럼 젠슨 황은 CUDA라는 개발자 플랫폼을 통해 개발자들이 엔비디아가 아닌 타사의 GPU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트레이드마크인 가죽자켓을 입고 나오는데 과거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사 수 역시 대만 타이난 출생으로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나 젠슨 황과 먼 친척 관계라는 소문이 있다. 그녀도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MIT에서 전기공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차례대로 취득했다. 미국에서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른 곳으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다른 기질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대학에서 먼저 남아달라고 요청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TI, IBM을 거쳐 AMD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마케팅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리사 수는 AMD의 APU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에 동시에 탑재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죽어가던 기업을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AMD의 CEO로 임명된 리사 수는 FPGA 전문 기업인 자일링스를 인수하며 안정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3. 진대제&임형규.


진대제 박사와 권오현 박사는 대한민국의 DRAM 산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각각 서울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를 전공하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4M DRAM을 개발할 때 회로를 위로 쌓는 방식과 아래로 쌓는 방식이 충돌했을 때 두 사람이 제안한 스택 방식이 채택된 덕분에 삼성전자가 결국 DRAM 치킨게임의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를 퇴사한 이후 진대제 박사는 정보통신부 장관이 되어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권오현 박사는 서울대학교 이사장이 되어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특히 진대제 박사는 국비유학 1기 장학생으로 국가가 길러낸 천재 한 사람이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증명했다.


임형규 박사와 황창규 박사는 삼성전자에서 NAND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두 사람 역시 서울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임형규 박사는 플래시메모리가 NAND로 통합되기 전부터 비휘발성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고,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황창규 박사는 메모리의 용량이 매년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주창했고, 삼성전자가 도시바를 꺾고 NAND까지 거머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삼성전자 퇴사 이후 각각 SK텔레콤, KT로 건너가 대한민국의 통신 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특히 임형규 박사는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병역을 해결했는데 이는 정부가 반도체라는 안보자산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반도체를 통해 세상이 새로워지고 있지만, 그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기업이 백년대계 정신으로 인재 양성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30년 이상쌓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견고했던 요새에 균열이 생기는 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은 공대가 아닌 의대로 진학하고 있고, 21세기 학생들이 아직도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수에게 교육받고 있다.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해 모든 국민이 반도체를 전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반도체를 외면한다면 그때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반도체 주가 대신 반도체 기술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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