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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Aug 12. 2023

반도체 밀당을 역이용해야 한다

미국, 중국, 유럽의 반도체 줄다리기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방법

이번 주 수요일 미국이 중국에 또 다시 칼을 빼들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투자 자본이 중국의 첨단 기술에 유입되는 것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지명된 첨단 기술 분야는 AI, 양자컴퓨팅, 그리고 반도체였다. 앞으로 이 세 가지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하려는 미국 자본은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금지 조항이나 다름 없다.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했던 것을 미루어 보아 이번 규제 조치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숨통도 조여들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반도체를 두고 서로 강하게 밀고 당기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하나의 축인 유럽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과 기업이 어떤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하는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1. 미국의 공격은 잠시 쉬어간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당시에도 전세계 언론은 디커플링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의 화웨이 규제는 자유주의의 선봉장인 미국이 타국 기업을 향해 직접적인 수출 통제를 명령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2020년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당시에는 전세계 언론이 미국과 중국이 싸움을 멈추고 지구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취임 첫날 가장 먼저 했던 업무가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이었기 때문에 그린에너지를 표방했던 미국과 중국 사이에도 그린라이트가 켜질 것이라는 믿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보다 정교하고 집요하게 중국을 압박했고, 그 대가는 글로벌 경기침체였다.


코로나19와 함께 했던 바이든 정부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년 말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정부가 중국에 신경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다시 말해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권과의 리벤지 매치, 또는 제 3의 라이벌과 붙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2024년은 미중 갈등이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이 내부 결속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 시기를 반도체를 포함한 전략기술을 지키기 위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전략기술을 지정하고, 미국에게 협조해야 한다면 우리나라가 얻어낼 수 있는 협상카드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중국의 부활은 이제 시작이다.


작년 10월 시진핑 3기 정부의 출범은 먼 훗날 세계사의 한 챕터를 장식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당이 장기집권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중국의 공산당은 하나의 정치이념으로 14억 인구를 지배할 수 있고, 공산당 안에 존재하는 여러 파벌 가운데에서도 시진핑 계열이 독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장기적인 국가 발전 계획을 그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정당 간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미 진행 중인 계획이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세워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1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지율이 급락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1년 동안 부진한 성과를 거두었을지라도 10년 미래를 보고 나아갈 수 있다.


미국이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 중국은 밖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시진핑 정부는 코로나19를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빅테크를 누르다가 박살낸 경제를 이제는 다시 살려야 한다. 따라서 중국은 7월 정치국 회의에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고, 민간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동안 빗장을 걸어잠궜던 국가들에게 단체관광을 허용하는 조치를 내렸다. 비록 디플레이션이나 그림자경제의 위험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중국 경제는 정부의 의지로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중국이 이렇게 문을 열어놓는 동안 문화 같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침투하고 기술 같은 하드웨어 산업에서는 탈출하는 투트랙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3. 유럽의 현실은 살짝 캄캄하다.


앞으로 가기 바쁜 유럽은 여러 문제에 발목을 붙잡혀 있다. 브렉시트를 선언했던 영국의 물가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고, 유럽연합(EU)의 핵심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정권 교체와 폭동 사태라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린에너지라는 꿈을 날렸던 유럽연합에게 그린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선진국으로서 지구 환경 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는 명분과 모양 빠지긴 하지만 말을 바꿔서라도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유럽은 점점 후자로 기울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게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지만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예전처럼 쉽게 조율되지 않기 때문에 유럽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얼마나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든다.


유럽은 현재 9%에 불과한 반도체 자립화율을 2030년까지 2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 많기 때문에 어드밴스드 공정보다는 레거시 공정을 우선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월 마그데부르크에 300억 유로 규모의 인텔 반도체 공장을 유치한 독일 정부는 이번엔 투자금의 절반을 보조해서 드레스덴에 100억 유로 규모의 TSMC 반도체 공장 설립 계획을 통과시켰다. 유럽 고객사를 다수 보유한 삼성전자가 정작 유럽 시장 진출을 주저하는 것이 의아해보일 수는 있지만 삼성전자가 지금 당장 주력해야 하는 영역은 AI를 위한 데이터서버 쪽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얼핏 보면 먹음직스럽지만 막상 들어가면 먹을 게 없는 유럽 시장은 반도체 기업에겐 계륵과도 같다.



1980년대 일본이라는 고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새우를 지켜주었고 심지어 새우가 클 수 있도록 먹이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대 중국이라는 더 큰 고래가 나타나자 미국은 통통하게 자란 대한민국이라는 새우를 먹어치우려고 한다. 여기에 유럽이라는 늙은 고래도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외치고 있다. 40여 년 전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살아남는 법은 덩치를 잔뜩 키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몸집이 자라지 않는 가운데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살아남는 법은 두 고래가 맞부딪칠 때 수면 위로 점프하는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고래의 충돌을 피한다면 다시 바다로 들어갔을 때 혼돈에 빠진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덩치 큰 새우가 아닌 또 한 마리의 고래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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