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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Sep 30. 2022

유소유 #39 혜자로운 기업이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3가지 체크포인트

예전에 주식 투자를 배우러 강연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ROE, PER 같은 기본적인 개념조차 모르는 '주식 신생아'였다. 강연의 주제는 '좋은 기업 찾기'였고, 강사는 워런 버핏의 핵심 투자 비결이라며 '경제적혜자'라는 개념을 알려줬다. 나는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싼 기업을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 강사가 표현을 지어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 '경제적혜자'가 아니라 '경제적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빨개졌지만 나는 이 개념을 곱씹으면서 결국 경제적해자가 있는 기업은 투자 관점에서 '혜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경제적해자라는 프레임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3가지 팁을 전하고자 한다.



1. 경제적해자는 일상 속에 존재한다.


‘경제적해자’란 모닝스타라는 펀드 평가사의 주식 분석 부문 이사였던 팻 도시가 집필한 책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해자라는 단어가 낯설 수 있는데, 중세 시대에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 주위로 깊게 파놓은 연못을 의미한다. 기업은 경쟁사가 핵심역량을 해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해자를 구축하는데, 그가 제시한 경제적해자의 종류로는 무형자산(Intangible Asset), 연결효과(Network Effect), 전환비용(Switching Cost), 원가우위(Cost Advantage)가 있다.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제대로 보유하고 있어도 경제적해자가 있는 기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러분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는 경제적해자가 있는가, 없는가?



기업의 경제적해자 유무를 보다 쉽게 판별하기 위해 '이 기업이 없다면'이라는 주문을 외워보자. 예를 들어 미국에는 어도비라는 사진 및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 만약 어도비가 오늘 당장 사라지면 전세계의 크리에이터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어도비 프로그램을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거의 없고, 설령 존재할지라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즉, 어도비는 전환비용이라는 경제적해자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인지도나 호환성을 고려하면 무형자산과 연결효과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도비처럼 경제적해자가 튼튼한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더라도 고객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경제적해자를 보유한 기업이 어디 있을까? 최근 나는 쿠팡 없이 한 달 살기에 도전했다. 한 달에 5000 원 남짓하는 작은 돈이지만 충동구매를 유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나머지 매장에서 직접 물건을 사 오거나 다른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는 게 상당히 불편했다. 쿠팡의 김범석 의장은 국민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내가 저렇게 말하고 있었다. 비록 쿠팡은 수익성에 물음표가 붙어있는 기업이지만 경제적해자 측면에서 만큼은 전환비용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한다. 아마 쿠팡이 지금보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사람들은 충분히 납득하지 않을까 싶다.



2. 경제적해자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팻 도시도 강조했지만 가짜 경제적해자에 속으면 안 된다. 그가 제시한 대표적인 가짜 경제적해자는 높은 시장점유율과 우수한 경영자이다. 우연히 시장의 기회를 일찍 발견할 수도 있지만 경쟁사가 비슷한 제품으로 프로모션을 하면 시장점유율을 지켜내기 어렵다. 지금 당장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시장점유율을 높게 유지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경쟁력이다. 또한 경영자의 능력이 우수하더라도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은 그가 떠나자마자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언젠가 기업을 떠날 우수한 경영자보다 필요한 것은 영원히 기업에 남아 미래에도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비슷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더라도 고객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진짜 경제적해자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OTT 시장을 개척하며 압도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했고, 비디오 스트리밍 산업의 선구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라는 유능한 경영자가 이끌었다. 초기에는 경쟁사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가 OTT 시장을 독점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수많은 OTT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고객들은 넷플릭스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없어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은 많았던 것이다. 즉, 넷플릭스의 경제적해자는 일시적인 시장 환경이 만들어낸 눈속임이었다.



경제적해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위기가 닥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올해 공모주 시장의 최대 관심사인 컬리는 혁신적인 새벽배송과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한 높은 시장점유율, 글로벌 투자은행과 컨설팅펌 출신의 우수한 경영자를 앞세워 4조 원의 기업가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쿠팡, 네이버, 쓱닷컴, 오아시스마켓 등 경쟁사가 진입하며 컬리의 시장 선점 효과는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고물가와 고금리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하자 김슬아 대표의 경영 능력과 상장 추진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꿈과 비전으로 꾸며낸 가짜 경제적해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반면 실체가 있는 진짜 경제적해자는 위기가 지나가고 더욱 깊고 넓어지기 마련이다.



3. 경제적해자는 영원하고 완전하지 않다.


팻 도시의 경제적해자는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기 위한 좋은 도구이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경제적해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개념이며, 그가 제시한 4가지 경제적해자 중 일부는 사라지고 새로운 경제적해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의 기업인들은 자사의 경제적해자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과 경쟁사의 경제적해자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매일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기업이 경제적해자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지보다 앞으로 경제적해자가 어떻게 변화할지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경제적해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봤다면, 지금부터는 기업의 경제적해자가 넓어질지 좁아질지를 생각해볼 시간이다.



경제적해자가 넓어서 도저히 망하지 않을 것 같은 기업을 떠올려보고, 그 기업이 망할 수 있는 이유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명암을 동시에 보는 훈련이 된다. 예를 들어 빈틈이 없어 보이는 애플조차도 메인 생산기지였던 중국의 임금수준이 상승하고 미중갈등이 격화되면서 공급망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수년째 '와우 모멘트'를 불러일으키는 신제품이 출시되지 않는 가운데 잡스가 아이폰을 손에 쥐고 나타났던 것처럼 스마트폰 다음의 혁신적인 제품이 등장해 애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애플은 현재 경제적해자가 매우 넓은 위대한 기업이지만 여기에서 경제적해자가 더 넓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때로는 경제적해자를 어설프게 확장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지키는 게 현명할 수 있다. 삼성전자조차 경제적해자 관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갤럭시는 위로는 아이폰에 밀리고, 아래로는 OVX에 쫓기는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사업에서 메모리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따라붙고, 파운드리는 TSMC와 인텔이 둘러싸는 모습이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역사적으로 저렴한 구간에 접어들었다 할지라도, 본질적인 경쟁력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전고점을 돌파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렇게 경제적해자 관점에서 기업을 분석하면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올해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삼중고에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희망을 잃은 개미투자자들이 주식에서 채권으로 대이동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 또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식 투자를 부추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주식 투자를 떠나 기업 분석을 하기에 최고로 좋은 시기이다. 작년까지는 주식을 사면 누구나 돈을 벌었지만, 올해부터는 좋은 주식을 사야만 자산을 지킬 수 있다. 즉,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눈을 기르기에 최고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좋은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경제적해자를 소개했다. 해자가 있는 기업, 해자가 넓어질 기업을 지금 사면 ‘혜자’로운 투자가 될 것이다.



<다음 편 예고>

유소유 #40 (10/7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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