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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Aug 12. 2022

유소유 #32 술이 항상 문제야

필름이 끊기고 깨달은 3가지 인생의 진리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날이 생겼다. 지인이 이사를 해서 집들이를 갔고, 모처럼 술을 한 잔 걸쳤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일과 공부를 열심히 병행하느라 술자리를 거의 갖지 않았는데, 그날은 기분도 좋고 유독 술이 잘 받아서 과음을 한 것 같다. 결국 나는 정신을 잃었고 아침에 방 침대에서 눈을 떴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출근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서 부랴부랴 짐을 챙겨나왔다. 오늘은 다소 황당하면서도 아찔했던 에피소드를 과음 후 깨달은 3가지 인생의 진리라는 주제로 다뤄보았다. 필름이 끊겨서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교훈을 얻기에는 기억의 파편만으로도 충분했다.



1. 치명적인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책상은 엉망진창이었고 바닥에는 옷이 너저분했다. 그 옆에는 사이드미러가 있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회사에 도착한 후에도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회사 고객센터 담당자로부터 메신저가 왔다. 오토바이 차주 분이 바닥에 떨어져있던 사원증을 보고 회사로 연락한 것이다. 퇴근 후 차주 분을 찾아갔다. 그리고 CCTV를 보면서 내가 오토바이 옆에 토를 하고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사이드미러를 파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에게 연거푸 진심으로 사과했고, 오토바이 수리비와 분실물 사례금에 더해 민폐를 끼친 것에 대한 보상까지 기꺼이 해드렸다.



정찬성 선수는 펀치를 많이 맞아도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버티고 절대 KO를 당하지 않는 모습으로 '코리안 좀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무리 펀치가 강해도 맷집이 약하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게임이 끝날 수 있는 반면, 공격력이 다소 약해도 수비력이 매우 강하면 상대가 지친 틈을 노려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인생에서도 한 차례 대박을 노리는 것보다 한 차례 실수를 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는데도 그날 밤 한번의 실수로 인생에서 큰 위기를 맞이할 뻔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오토바이 차주 분은 나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주셨고, 젊은 사람인데 술 조심하고 살라는 충고를 해주셨다.



투자자는 시장에서 완전히 아웃되는 리스크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 투자를 하다 보면 판단을 잘못하거나 운이 나빠서 잃을 수는 있다. 하지만 원금 이상의 손실을 입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처럼 치명적인 실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그날 밤의 실수로 한동안 시장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만약 더 큰 사고로 이어졌다면 투자는 커녕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투자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분명 여러가지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인생에서 KO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 스마트폰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휴대폰부터 찾았다. 휴대폰이 없으니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휴대폰을 못 찾은 채로 회사에 갔는데, 휴대폰이 없으니 삶이 마비되었다. 출퇴근길에는 바보처럼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업무상 전화를 자주 해야 하는데 휴대폰에 있는 연락처나 메모를 확인할 수 없어 매우 답답했다. 심지어 휴대폰이 없으니 약간의 불안 증세까지 나타났다. PC와 연동되지 않고 휴대폰에만 저장되어 있는 기록이나 사진은 복구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깨달은 것은 휴대폰의 중요성보다 휴대폰 없는 시간의 중요성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공개하는 장면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순간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덕분에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스마트해지지 못했다.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살아보니 사고가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관점이라 여겼던 것들이 온전히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접한 여러 관점들의 집합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휴대폰을 되찾은 건 기뻤지만 스마트폰 없는 나는 스마트하지 않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투자자는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투자를 하면서 뉴스 기사 몇 줄이나 유튜브 영상 몇 개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멍청한 선택은 없다. 스마트폰을 쥐고도 멍청해지지 않으려면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스마트폰에는 보약 같은 귀한 정보도 많지만, 인스턴트식품 같은 실속 없는 정보나 마약 같은 악성 정보도 많기 때문이다. 나도 어쩌다 스마트폰 없는 하루를 지내면서 나의 생각에도 수많은 소음이 껴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는 매일 30분 이상 스마트폰을 끄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다소 뜬금없는 교훈이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3. 루틴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며칠이 지났다. 경제적인 손실도 괴로웠지만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이었고, 오히려 나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과 죄의식이 들어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정신적인 괴로움은 육체적인 피로도도 증가시켰고 결국 일과 삶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직장에서도 해야 하는 일을 자주 까먹었고, 매일 규칙적으로 하던 운동이나 독서도 거르는 날이 많아졌다. 즉, 삶의 루틴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루틴은 만드는 데에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루틴이 망가지는 것은 하루면 충분했다. 그리고 망가진 루틴을 회복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나에게 루틴이란 '하지 않으면 이상한 기분이 드는 행위'이다. 그래서 루틴이 자리잡으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매일 실천해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일로 인해 루틴이 깨지면 갑자기 낯설어지고 회복하기 어렵다. 원래 나는 매일 아침에는 뉴스 기사를 아카이빙하고 저녁에는 주식 시장을 모니터링한다. 지금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루틴이지만, 이번 사건이 있고 나서는 1시간이 걸려도 작업을 끝내지 못했고 매일 해오던 작업임에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 작업을 해야 하는지도 까먹을 뻔했다. 더 이상 루틴이 아니게 된 것이다.



투자자는 꾸준함을 유지해야 한다. 투자를 할 때에는 스프린터가 아니라 마라토너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사 스크랩을 한다면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 7편을 몰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 동안 매일 1편씩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번 사건 이후로 3일 동안 루틴을 실천하지 못했다. 그리고 루틴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일주일 이상 걸렸다. 매일 훌륭한 투자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훌륭한 투자 아이디어는 매일 생각하는 루틴에서 비롯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술 때문에 루틴이 무너지는 일이 또 다시 발생한다면 그때는 모든 이 앞에서 금주를 맹세할 것이다.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사건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합의를 안 해주고 경찰에 넘기면 나는 범죄자가 되는 건가? 지금 주식은 잔뜩 물려있는데 눈물을 머금고 손절해야 하는 건가?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한 편의 글로 정리해보니 정말로 평생 잊지 못할 실수를 한 것 같다. 전혀 자랑할 일도 아닌데도 불특정 다수가 보는 브런치에 나의 과오를 고백하는 것은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굳게 다짐하는 동시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오토바이 차주 분에게는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뜻을 전한다.




<다음 편 예고>

유소유 #33 (8/19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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