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가 출연한 좀비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윌 스미스가 좀비 감염을 치료할 백신을 찾으면서 유일한 인간으로서 히어로가 되고, 그가 인류를 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원작 소설은 좀 다르다. 소설에서는 오히려 모두가 좀비가 된 세상에서 유일한 인류인 주인공이 좀비들에게 괴물이다. 인간의 존재가 되레 좀비들에게 위협이 된다. 결말도 다르다. 인류를 구원하는 주인공은 없다. 유일한 비정상인 주인공이 좀비들에게 처단된다. 소설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문제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소수가 될 때, 비정상이 될 수 있다.
거리에 코를 찌르는 은행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몇년전 바로 이맘때, 나는 비 내리는 서울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한 손에는 우산과 신용카드를 아슬하게 겹쳐든 채. 나는 봉사활동 중이었다. 서울 시내 휠체어 출입 가능 점포를 표시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봉사활동이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헛걸음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내가 맡은 역할은 종로와 대학로 일대의 현장조사였다.
봉사활동의 첫 과정은 교육이었다. 한 대학교의 강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교육을 받았다. 그때 내가 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지를 깨달았다. 휠체어를 타고 문을 열고 나가는 장애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는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는 게 아니라 문을 잡아주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교육에서 강조한 건 장애인을 무턱대고 도와주는 대신,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고도 넘을 수 있는 턱의 높이가 신용카드 가로 너비 정도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교육 후, 내가 현장조사를 하는 날에는 비가 왔다. 비 오는 가을날은 서늘했다. 휴대폰, 우산, 신용카드, 수첩 등 손에 이것저것 들고 거리를 배회하자니 점점 힘이 들었다. 휠체어가 출입 가능한 점포를 50개는 찾아야 했는데, 거리에는 그런 점포가 턱없이 적었다. 그러다 한 편의점을 발견했다. 문 폭도 넓고, 문턱도 저 정도면 되겠다 싶었다. 카드를 문턱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점주가 나와 뭐하냐고 물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점주는 “우리 가게에는 그런 사람들 안 와요. 찍지 마요.”라며 나를 밀어냈다.
비 오는 거리를 배회하며 그제야 깨달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고 있는 것은 좁은 문 폭도, 높은 문턱도 아닌 소수라는 이유로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소외시키는 시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떤 편리한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해도, 점주들의 시선이 이렇다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다시금 헛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정상과 비정상. 이를 가르는 것은 다수와 소수의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