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아기오리, 오랑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미운 아기오리'

by 황지

미운 아기오리래요~ 미운 아기오리래요~ 친구들이 소파 위 가족사진을 보고 꼭 한 마디씩 하는 말이다. 뭐 그래, 틀린 말은 아니기에 인정한다. 나는 살이 까무잡잡한 미운 오리다. 그런데 그 이름 말고 실제 내 이름 두 자, ‘오랑’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오랑이라도 맘 한 켠에는 검정 피부라는 이름의 트라우마 둥지를 튼 지 오래였다.


“엄마, 형 어디 갔어요?”

“형? 친구들이랑 농구하러 밖에 나갔어. 한 40분 뒤면 올 걸?”


허기진 미운 아기오리는 남은 20분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형이 이따 같이 먹자고 넣어둔 닭고기 3개가 놓여있다. 한 번 읽어볼까? 오. 리. 닭. 가. 슴. 살.

맞다. 아직 한글이 서툰 오랑이는 '우리' 닭가슴살을 '오리' 닭가슴살로 읽은 것이었다. 요즘 오랑이는 한글 공부에 심취해 있다. 얼룩이와 함께 일주일에 3번 월, 수, 금요일마다 한글 과외를 받는다. 창문 너머 보이는 붉은 벽돌에, 우유 주머니가 걸린 현관 손잡이, 저 집이 바로 얼룩이네 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먹고 출발할 예정이다.


꽥꽥. 꽥꽥. 고. 구. 마. 좋. 아. 요. 꽥꽥. 하. 늘. 은. 푸. 르. 다.


"얼룩아, 이거 봐. 우리 형이 받아온 오리 닭가슴살인데 색 예쁘지."

“와. 진짜 새하얗다. 그런데 나 이거 책에서 본 적 있어. 우리도 사람들한테 잡히면 이렇게 된대. 조심해.” 눈을 가늘게 뜨고 겁주는 얼룩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하얘질 수 있어? 난 검정, 넌 색이 섞여 있잖아. 우리는 하얗지 않아. 그러니 들켜도 안 잡지 않을까?”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룩이는 이내 동의하는 끄덕임을 보였다.

“그렇겠다. 우리는 잡힐 걱정은 없겠어.” 얼룩이는 닭가슴살에 ‘오리’가 아닌 ‘우리’라고 적혀있는 것을 알았지만 혹여 자신이 틀렸을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을 땐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 이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얼룩이만의 신념이었다. 그날부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랑이는 자신의 검정 피부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자신을 지켜주는 최고의 수단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오랑아 엄마 시장 갈 건데, 같이 갈래?” 평소라면 내키지 않았겠지만 배꼽에서부터 용기가 났다. 그렇게 한 손에는 엄마 손을, 다른 손에는 끌개를 꼭 잡고 신호등을 건넜다. 차츰 시장 간판에 가까워졌다.




“자~ 여기 잡곡 세일합니다! 살펴보고 가세요~ 미운 아기오리야 오랜만에 엄마랑 장 보러 왔네?”

“네… 안녕하세요 아줌마.”


사실 그동안 오랑이가 시장에 안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네 이웃들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미운 아기오리로 불러주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닭가슴살 사건 이후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오랑이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기야 오랜 시간 익숙해진 무거움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 있어, 마음이 생각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잠깐이지만 그런 오랑이의 표정을 읽었다.

“자기야, 미운 아기오리가 아니라 우리 오랑이예요. 예쁜 이름이 있는데 왜 그렇게 불러. 앞으로는 오랑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미운 아기오리가 더 익숙해서 그렇게 부른 건데,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오랑아 거스름돈 여깄어.”

“감사합니다. 아줌마.”


오랑이는 얼떨떨했다. 그동안 까만 피부에 미운 아기오리는 그 자체로 사실이니,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니, 내 기분이 나빠도 그만하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무시만이 정답이고 시간이 해결해주길 굳게 믿고 있을 뿐이었다. 장을 보는 내내 오랑이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미워서가 그런 게 아니라 익숙함 속 불리는 이름이었고, 그 말에 난 상처를 받았던 것이었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중요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기분이 나쁘니 그만하라는 말은 상대에게 직접 전해야만 상대가 알아. 아무리 맘속으로 누군가 내 맘을 알아주겠지 하고 변화된 행동을 바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삶은 짧아. 얼마나 기다리려고 그래. 네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연습은 꼭 해야만 해. 그래야 상처가 곪지 않지. 우리 오랑이, 마음이 넓고 영리해서 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란다.”


그 말을 들으며 오랑이는 안심했다. 그 순간에는 오리 닭가슴살이건 우리 닭가슴살이건 중요한 건 하나 없었다. 피부가 하얗고, 검정이고 무지개 색이면 어때. 그저 날 사랑하고 내가 정한 선을 넘는 이에겐 그 선을 알려주며 살면 돼. 복잡하지 않아. 단순하게 생각하자. 오랑!! 그렇게 그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썼다. 제목은 ‘미운 아기오리, 오랑’ 그리고 고심 끝에 쓴 첫 문장은 ‘그래서 어쩌라고…….’




8시, 얼룩이와 한글 과외를 약속한 시간이다. “아니 어제 형이랑 음식 나눠 먹다가 알았는데, 그때 우리가 먹은 게 오리 닭가슴살이 아니라, 우리 닭가슴살이었어. 너도 몰랐지?”

“어어, 응. 우리 닭가슴살이었구나.” 속으로는 자신이 맞았다고 좋아했지만 티 안 내는 얼룩이었다. 한편으로 왜 그런 것을 거짓말하는지 싶었지만, 반대로 오랑이는 그런 얼룩이의 배려 덕분에 민망한 상황을 겪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이 모여 행동을 이룬다. 반복된 행동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삶의 방향은 상황에 따른 열린 마음에서 기초한다. 그러니 얼룩이의 경우도 자신이 내린 결정이므로 그 행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저 각자에게 맞는, 타인에게 어느 정도의 솔직함을 내비칠지 고민과 마음 여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오늘 밤, 내일 마실 보리차 물을 끓이며 아랫집 아기오리 아리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인다. 들리는 노래는 요즘 오랑이 마을에 유행하는 동요다. 초록색~ 내가 좋아하는 풀! 파란색~ 내가 좋아하는 물~ 가알색~ 내가 좋아하는 지렁이~ 보라색~ 내가 좋아하는 포도~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오랑이도 가만히 앉아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주황색~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검은색~ 내가 좋아하는 얼룩이, 노란색~ 내가 좋아하는 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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