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밥

고마움과 함께 변화하는 감정

by 황지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우리 삼 남매는 응애 시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항상 반겨줄 사람이 있었고, 아프면 걱정해주고 학교에서 있던 시시콜콜한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대가족의 북적함과 따스함 속에 사랑을 배로 먹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이 글은 밥에 얽힌, 할머니 관찰록이다. 또한 밥에 얽힌, 내 시선의 변화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매일 아침 반복되었던 경험

"일어나~ 잉?", "늦겄다 빨리 일어나.", "고마 일어나 밥 먹어라!!"

반복되는 말과 함께 할머니의 음성 볼륨은 점점 커져갔다.


입맛이 없어 밥을 먹지 않거나 시간이 없어 밥을 생략하는 날이면 할머니의 입꼬리는 축 처지는데, 이는 아프거나 맘이 불편할 때 나타나는 할머니만의 신호다.

그렇기에 우리 셋은 늦어도 한 숟가락이라도 꼭 먹으려 노력했다. 비하기 급급해 밥을 못 먹는 날는 퍼놓은 밥을 다시 밥솥에 붓고 원래 밥솥의 밥인양 주걱으로 다독여 놓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름의 치밀함조차 모두 알고 있는 할머니였다.

(그때는 치밀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술함으로 가득했다ㅋㅋ)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는 것은 애정과 사랑의 결과물이다.

내가 무슨 반찬을 좋아하는지, 평소 어느 정도의 밥을 먹는지.

밥을 차려주는 것은 한 사람의 취향을 파악하고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더운 여름날, 부엌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기에 이건 분명 고마운 마음이 맞는데, 그건 변함없는 사실인데, 가끔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 당황스럽다. 누구는 아주 배부른 소리 한다고, 복이 터졌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밥 먹어라! 에 대해 변화한 스스로의 태도에 당황스럽고 죄송할 때가 있다.

곰곰이 생각했다. 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20대 초반, 이젠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독립심이 자라서일까. 아니면 1년의 자취생활 즉, 밥보다 할 일이 우선이었던 그때의 시간 흐름에 익숙해져서일까.

과거에는 밥 먹어라! 속 단순히 밥과 반찬만 보였다면

지금은 파스 붙인 할머니의 손목, 시간 통제, 간편한 시리얼이 엉겨 붙어 예전과 또 다른 감정들을 형성한다.

이제는 성인이기에 직접 요리하기도, 한 끼 정도는 안 먹어도 비축해놓은 에너지가 꽤 있어 살 만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다고 걱정을 하신다. 역지사지 회로를 굴려봤다. 내가 할머니. 그리고 상상해보는 내 아들, 딸의 2세라.


몇십 년 동안 반복해 습관화된 일상 루틴 혹은 그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좋아 요리를 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84세의 우리 할머니, 뭔가를 하시려는 모습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늘어가는 신체 아픔에 말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따스한 집 밥 온기는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고마움을 알고 부당함에 용기 낼 줄 아는 파이팅 넘치는 어른으로 말이다.


밥 먹었어?라는 흔하지만 기분 좋은 안부 인사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인사라는 것을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그러고 보니 자취할 때도 부모님과 통화하면 항상 밥 먹었는지의 여부와 밥 굶지 말라는 얘기를 하셨는데.

역시 한국인의 밥심에는 따스함과 사랑의 힘이 공존하고 있나 보다.


밥, 에너지의 원동력이자 사랑.


머리가 커져, 밥 먹으라는 말에 이제는 신경 안 써줘도 된다는 뾰족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생각해주는 마음에 "신경 안 써도 돼요"라는 말보다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쉬고 계세요~"라는 부드러운 말로 답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어쩌면 지금의 순간을 가장 추억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변화하는 스스로의 마음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는 일은 없길. 고마움과 사랑은 맘속에 항상 기억하고 간직하길. 오늘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할머니에게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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