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를 둘러싼 가시

by 황지

이 맘 때쯤 한창인 생선이 있다. 옛말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생선, 바로 전어다. 태어나서 그렇게 가시 많은 생선은 또 처음 봤다. 수두룩 빽빽 가시들. 규칙성을 찾으려 했는데, 도통 모르겠다. 내가 아는 생선이란 모름지기 지탱하는 가운데 큰 가시, 그 주변의 잔가시, 양 옆 가시. 이렇게 3 부분이 끝인데. 경험으로 축적된 해부학적 구조가 적용되지 않아 당황했다. 가시가 무슨, 뻥 안 치고 사람의 머리카락을 차지하는 것처럼 많았다.


맛은 확실히 기대에 부응했다. 고소함과 쫀득함이 먹어본 생선 중 단연 고였다. 한편으론 조용히 고도의 집중력으로 가시 발라내기에 몰두하는 스스로의 모습 우스웠다.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가시를 먹지 않겠다고 조금씩 이리저리. 귀차니즘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재도전은 쉽지 않을 음식임이 분명했다.


맘 같아서 밥 한 술 넣고 생선살을 우앙 하고 먹고 싶만, 먹는데 속도가 안 난다. 상상 회로에 또 걱정 버튼이 눌렸다. 엄마는 먹는 사람들은 연한 가시도 씹어 먹는다고, 자잘한 가시는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괜히 난 먹다가 왠지 가시가 박힐 것 같고 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과 혹시라도 운 안 좋아 가시가 잇몸에 찔려 균이 잇몸에 침투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생선살은 콩알만큼 발라 먹었다. 생선 하나 먹는데 이렇게 집중력을 발휘할 게 무엇이랴. 이 세상 처음 전어를 먹기 시작한 스타터는 분명 인내심이 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시가 많으면 유연할까?

사람, 동물, 식물 등 자연을 이루는 것 들에는 필요 없는 부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문득 전어에게 가시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다. 마지못해 태어나 산다는 말처럼 전어에겐 가시란 그저 눈 떠보니 날 이루고 있는 것들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죽음 앞에서도 스스로 가시가 이렇게 많은 줄 모르고 있었을까.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생처럼 전어의 삶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전어에서 이어진 생각 흐름


돌아보면 요즘 세웠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에 가시를 세우고 있는 나날 보냈다. 마음처럼 되지 않,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어 더 재미난 세상이라지만, 평소처럼 받아 넘기기엔 심적 여유가 부족했었나 보다. 너무도 빨리 흐르는 시간, 1년의 절반 하고도 절반이다. 했다고 벌써 5개월 남짓한 휴학 생활이다. 올해 초, 휴학을 꿈꾸며 계획했었던 희망찬 목표들. 그렇다고 또 마냥 놀진 않았는데 뭐했는지 모를 성과와 컴활시키에 현타가 왔다. 현대인은 집중할 때 팍 하고, 휴식할 때는 또 잘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난 휴식하는 순간은 좋아도 이상하게 그 시간이 지나면 모순적인 감정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밖에 나가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텅 빈 마음을 시원한 가을바람으로 충전해야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루틴, 아침 챙겨 먹는 습관으로 몸 마음 튼튼이로 재탄생하려고 한다. 계획 세우는 건 좋아해도 지키는 건 작심삼일인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작심삼일도 계속 반복한다면 어느 순간 습관으로 정착한다.'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다. 그렇게 잠들기 전 매일, 내일의 계획 세우 있다. 가즈아~ 어느 정도 스스로에 대한 가시는 잘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작용해 능률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가 넘으면 독이 되는 것 같다. 그때는 스스로에 대해 정비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롸잇나우 무브 무브 얼른 아침 먹고 기분 좋게 산책을 나가야겠다. 파이팅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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