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눈박이엄마 Aug 20. 2020

미국 개신교 복음주의가 트럼프를 맹신하게 된 이유


사랑제일교회 교인들이 심각한 방역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8월 15일 광화문광장에 몰려든 사람들은 다른 건 모르겠고 정치적 목적은 확실한 것 같았다. 몇 달 전 트럼프 유세에 몰려든 미국인들을 보며 '제정신인가?'했는데 데칼코마니처럼 한국에서도 그 일이 일어났다. (성조기가 나부낀 건 같다. 한국에서는 일장기...가 등장했다는 게 충격..)


집회 모습만 비슷한 게 아니었다. '코로나19는 가짜뉴스다'라는 선전 게시판이라던지, 전광훈 목사가 '코로나 검사 받으러 가지 말라'고 말했다는 교인 자녀의 증언 등등. 신앙으로 코로나를 고쳐준다는 등. 5G나 빌게이츠가 음모라는 등. 코로나를 교회에 부어서 그렇다는 등….


미국 몇 달전 모습과 똑같다. 트럼프가 코로나 확산을 폄하할 때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미국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지사 등 지역정부의 록다운 정책에 반대해 시위하던 모습과 정확하게 겹친다. 이번 광화문 시위대가 들고 나왔다는 '5G 음모론'이나 '빌 게이츠 백신 음모론' 또한 미국/유럽에서 몇 달 전부터 유행했던 음모론인데 한국으로 수입(?)된 셈이다. 미국에서는 큐아넌(Qanon)이란 음모이론 세력이 “트럼프를 무너뜨리기 위해 정부 고위-미디어-엔터테인먼트계가 은밀히 모의한다”는 식의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는데 트럼프 지지하는 개신교 신자들이 그 확성기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 ‘일부 개신교’를 ‘복음주의(Evangelicals)’라고 부른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는 뭘까?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두 개의 자료를 찾아봤다.


첫번째. 미국 저널리스트인 Sarah Posner가 ‘Unholy: Why White Evangelicals Worship At The Altar Of Donald Trump(신성하지 않다: 복음주의 백인들은 왜 트럼프 신전에서 예배를 드리나)’란 책을 쓰고 NPR Fresh Air에서 인터뷰한 내용,


두번째. 캐나다의 유튜버인 J.J. McCullough 가 올린 ‘A history of the religious right: How Evangelicals became Republicans(우파 기독교의 역사: 복음주의자들이 공화당원들이 된 이유)’ 동영상을 참고했다.


(미리 말하지만 신학공부를 제대로 한게 아니라서... 보충이 필요하면 댓글로 지적해주세요)


1. 복음주의가 뭔가?


복음주의는 개신교 중 마이너리티로써 장로교 감리교 같은 특정 종파는 아니다. 18세기 미국의 영적 대각성/신앙부흥(Great Awakening)운동에서 탄생한 복음주의에는 다음 4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born again' – 즉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감정적 경험을 중시한다.

둘째, ‘personal relationship’ 예수님과의 상호 교감과 경험을 중요시한다.

셋째, ‘evangelism’ –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을 남에게 전파하는 걸 중요시한다.

넷째, ‘biblicism’ --성경은 최종적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다른 기독교인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엔 오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개신교는 진화론을 믿는 비율이 78%지만 복음주의론자들은 단 27%만 믿는다.



복음주의의 4대 특징 (출처: Andrew M. Henry  from JJ McCullough 유튜브채널)


2. TV목사의 탄생


복음주의가 유행한 건 1960년대 빌 그레이엄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설교를 하는 목사들이 라디오쇼, TV쇼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무슨무슨 부흥회…의 모습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TV로 폭풍처럼 설교를 쏟아내는 이들 텔레반젤리스트(TV+에반젤리스트)들은 여권 향상, 낙태 허용, 동성애 등 ‘세속적 휴머니즘’, 아울러 자유주의적 가치(복음주의자들이 봤을 때 반성경적인 가치)가 미국에서 확산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3. 낙태 합법화 판결의 충격파


한편 베트남전이 끝나고, 구 소련이 확장되고, 미국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고 범죄율이 높아진 1970년대 미국에서는 “나라꼴이 이게 뭐냐”며 신보수주의가 잉태됐다. 한편 복음주의론자들이 특히 경악한 자유주의적 판결이 나왔다. 낙태를 대부분 주에서 합법화한 1973년의 ‘로 vs 웨이드’판결이었다. 이후 복음주의 계열 기독교인들은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라는 운동을 결성하여 정치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4. 복음주의적인 대통령 레이건


복음주의 텔레반젤리스트 중에 1970년대에 유명했던 제리 폴웰 목사가 있었다. 제리 폴웰과 절친했던 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레이건이다. 레이건은 독실한 기독교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다시 태어난’ 복음주의론자다. 레이건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앞에서 “여러분이 저를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 없으니, 제가 여러분을 지지하겠습니다”라고 한 연설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리고 이들의 몰표로 레이건이 당선된다. 복음주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기독교 중에서도 소수라고 할 수 있지만 다음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에게 충실하다. 둘째, 열혈 투표층이다.

제리 폴웰 목사와 레이건 대톨령


5. 낙태 합법을 뒤집으려 했으나...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복음주의자들은 숙원이던 낙태 합법, 즉 ‘로 vs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고 했다. 레이건 정부도 기를 썼지만, 1986년 대법원에서는 딱 1표 차로 낙태 합법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미국에서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종신직이다. 한번 지명하면 최소한 30-40년동안 그 대법관 성향에 따라 주요 판결들이 좌지우지된다. 따라서 복음주의론자들은 거의 근본주의적 성경 가치를 지닌 대통령을 세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6. 중요한 것? 대법관! 그리고 그 대법관을 지명할 대통령!


레이건 정부는 감세, 총기소지 권리 옹호, 홈스쿨링… 등등 ‘작은 정부’를 지향했으며 이는 ‘정부가 교회 맘대로 할 권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복음주의 교회의 가치와 일치했다. 복음주의론자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법 논리로 막는 걸 싫어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기반인 회사는 직원의 피임 비용에 회사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걸 거부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미국에서는 이제 불법이다. (그래서 뭐가 중요한가? 대법관! 이렇게 생각했을 것)


7. 목사 출신 대통령 대망론...


인기가 비교적 높았던 레이건의 영향으로 1980년대 미국은 상당히 보수주의적이었다. 심지어 텔레반젤리스트 목사 중 한명이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부와 명성을 긁어모은 일부 텔레반젤리스트들이 성 스캔들, 헌금 횡령 사건 등이 터지면서 목사 출신 대통령 대망론은 없던 일이 됐다.


8. 조지 W. 부시 시대


그러다가 다시 우파와 기독교가 만난 건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이 때는 성소수자 권리, 특히 동성혼이 큰 이슈가 됐다. 부시는 헌법에 동성애 반대를 넣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물론 이 시도는 좌절됐다. (동성애는 안된다며 차별금지법을 강력히 반대하는 현재의 한국 기독교와 겹쳐 보인다) 이 시기 미국은 팔레스타인과 갈등을 일으키던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중동 긴장이 높아졌다. (8-15 집회에 이스라엘 국기가 나온 것 기억하는가? 복음주의 세력은 성경에 나온 이스라엘 선민주의를 철저히 믿는다) 이 시기, 레이건 시절의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우파와 기독교 공통의 적이 나타났다. 바로 오사마 빈 라덴.


트럼프가 지적인가? 란 질문에 83%의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그렇다고 답했다. (출처 JJ McCullough 유튜브)


9. 아무리 그래도 트럼프는 너무 안 기독교스러운데?


잠깐. 그래도 레이건이나 부시는 트럼프처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 않나? 어떻게 각종 혐오표현의 상징 같은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주자가 되어 이들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몰표를 받게 된 걸까?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트럼프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90% 재선 지지) 트럼프를 그냥 지지하는 정도가 아니다. ‘트럼프는 지적이다’ 와 같은 설문에서도 이들은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한다.


10. 트럼프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들은 트럼프가 전통적인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anointed)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에 의외의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논리다. 성경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페르시아 왕 키루스 왕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2020년 1월 트럼프를 위한 복음주의 기독교인 연합 모임에서 기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11. 대통령 출마를 꿈꾸던 트럼프


트럼프는 2011년 기독교케이블방송인 CBN(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에 출연해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이란 전제 하에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일종의 코칭을 받았다. 이때 트럼프의 성향은 ‘낙태는 확실히 반대. 동성혼은 아직 잘 모르겠음’ 정도의 애매한 스탠스였다. 이후 트럼프는 폴라 화이트 등 텔레반젤리스트들과 친하게 지내며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폴라 화이트는 ‘비전의 가치’라는 설교로 유명하다. 비즈니스맨인 트럼프는 TV를 돌리다가 우연히 접한 그녀의 설교 스타일에 매료되어 친분을 쌓게 됐다. (폴라 화이트는 트럼프 타워에 콘도를 갖고 있다고도 한다)


12. 보수 성향 대법관 2명 임명, 성공!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몰표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이들의 소망을 이뤘다. 보수 성향 대법관 2명을 임명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성추행 의혹으로 인준 청문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브랫 캐버나다. 낙태 이슈의 경우, 트럼프 정부의 보건부는 종교적 이유로 낙태 시술에 간호사가 참여하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역사상 가장 생명을 중시하는(pro-life = 낙태반대)’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판데믹 상황에서도 그 전제는 바뀌지 않는다.


13. 그런데 코로나대응도 트럼프가 잘했다고..? 왜..?


오케이. 알겠는데 코로나 위기에서 바이러스 위협을 폄하하고 마스크도 거의 안쓰면서 모범을 보이지 않은 트럼프에 대한 이들 기독교인의 지지는 왜일까? 우선 이들이 필터 버블에 갇히게 만든 미디어 구조다. 우선 트럼프가 “가짜뉴스 언론을 믿지 말라”고 4년 내내 인이 박히도록 얘기하고 그것을 폭스를 비롯한 트럼프 우호 언론들이 증폭시켰다. 소셜미디어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필터버블은 더 심해졌다. (사실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어떤 황당한 소리를 하더라도 모든 언론들이 보도할 수밖에 없다. 참이든 거짓이든 어떤 종류의 주장에 많이 노출되면 그걸 믿는 사람은 더 믿을 수밖에 없다)


14. 친트럼프주에서 감염율은 더 높을까?


정치 성향과 코로나 감염의 상관관계는 있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있다’고 나온다. 지난 봄 미국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말라’ '트럼프 지지' 한다며 기독교인들이 시위에 나섰다. 예배할 권리를 막지 말라는 것이다. 주마다, 시기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친트럼프 성향 주는 경제 정상화를 앞당겼을 때 감염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대통령영향을 받아 트럼프 지지자들이 코로나를 과소평가하거나 마스크 착용을 잘 안한 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친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플로리다는 코로나 감염율이 7월 전체 주 중 최고치를 찍었다.



15. 트럼프는 복음주의자들의 해묵은 불만을 깨웠다


트럼프가 이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결집시킨 또 하나의 이유. 이들이 잊고 있던 ‘불만’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1950년대 이후 자유주의적 가치가 도입되면서 기독교적인 국가가 무너지고 있다’는 불만이다. 이들 우파 기독교인들은 ‘정부 간섭 안 받고 기독교 학교나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60년대 기독교계 학교들이 잇달아 생겨났는데, 이 중 많은 학교들이 의도적으로 백인만 받기 위해 세워졌다. 당시 흐름인 인종차별철폐(desegregation)와 반대 방향이었다. 이들 학교들은 이후 수업에서 기도의무화도 무산되었고, 흑인 비율을 법에서 정한 만큼 채우지 못하는 학교에는 면세 혜택이 박탈당하기도 했다. 국가가 정한 정책을 이행하지 않으면 국민의 세금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 하에서 법원 판결이 하나 나왔다.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주 장학금을 수령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파 기독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판결로 본다.


16. 백인우월주의 극우론자와 복음주의 기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백인우월주의자인 극우(alt-right)와 복음주의 기독교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포스너는 말한다. 극우세력은 딱히 종교적이지 않고, 복음주의론자들도 ‘하일 히틀러’라 외치는 극우세력 집회엔 가지 않는다. 단 두 집단은 자유주의적 가치가 확대되는 걸 싫어한다. 극우주의자들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독재적 스타일에 열광한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의회-법원이 자유주의적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그런 판결을 내리는 걸 싫어하기에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발동해서 이에 제동을 거는 데 통쾌함을 느낀다.


17.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들 리스펙. 읽다가 ‘헛… 한국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고 느껴도 무리가 아니다. 나도 쓰면서, (한미 현 정부의 성향을 제외하고)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미국에서도 이들 복음주의 개신교자들은 기독교인 중 소수다. 하지만 아주 목소리가 큰 소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