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 인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그리고 나이키
경찰 과잉진압으로 미니애폴리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당한 후 전미가 인종차별철폐 시위로 들끓는 가운데 미국 기업CEO들이 연일 성명을 내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 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하다. 메시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미국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회사 내부적으로는 다양성을 강화하고 차별 철폐 NGO에 기부를 약속하는 내용이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이베이, 인텔,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공식적인 성명서를 냈다.
왜 특히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이 적극적일까? 우선 사업이 글로벌한데다 실리콘밸리 인재들이 다양한 인종, 성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IT기업에는 대부분 다양성&포용(Diversity&Inclusion)을 담당하는 임직원이 있다. 그래서 이런 성명서는 외부 고객을 향하기도 하지만, 직원들에게 보내는 레터 형식으로 쓰여지기도 한다.
여러가지 성명서를 읽어봤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계적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베이 CEO 제이미 아이노니 (Jamie Iaonne)의 이메일을 소개한다. 왜 인상적이었는지는 아래에서 소개한다.
첫번째 메일 -
"가슴이 찢어진다. 지쳤다.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공포스럽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죽어간 미국 시민들 -- Ahmaud Arbery(조깅하다 백인에게 살해당한 흑인 청년), Breonna Taylor (집에 있다가 경찰에게 살해당한 흑인 여성), George Floyd (경찰이 목을 눌러 죽인 흑인)을 보며 많은 분들이 이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요. 인종차별과 폭력이라는 미국의 과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전세계를 감염병이 휩쓰는 가운데 우리의 인삿말은 "안전하게 지내세요(Stay safe)"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흑인 동료들, 친구들, 이웃들은 직장, 차, 도로, 심지어 자기 집 안에서조차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유색인종은 코로나19에 인구 비중 대비 더 많이 영향을 받습니다.
흑인들이 느끼는 이런 차별을 똑같이 느낄수는 없겠지만, 저는 더 많이 알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정의의 편에 서야 함을 모두에게 확실히 하고자 합니다.
노골적이든 은근하든 인종차별, 편협함, 외국인혐오, 편견은 우리 이베이에서 지향하는 바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Period)
이번 사태로 개인적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동료들이 있습니다. 고통받는 모든 분들. 우리가 여러분 옆에 있습니다. 그 고통을 인지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함께 하겠습니다. People Experience Team과 '임직원 도움 프로그램'으로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현 상황은 미국에겐 고통의 시간입니다. 미국 외의 직원분들께는 이 소식이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이 상황에 대한 대화에 참여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동료를 위해 함께 합시다. 이베이 리더십팀과 저는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상황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여 이베이가 나은 세상을 위한 동력이 되고 더 안전한 일터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우리 이베이는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하고(Empower people) 모든 이들을 위한 기회 창출(Create opportunity for all)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유입니다. 이베이의 이런 목적(purpose)은 더 나은 우리가 되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부여하고 독려합니다.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마음과 진심을 다해 귀 기울이겠습니다.
두번째 메일 -
이베이가 정의, 평등, 포용, 연대라는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데 많은 분들이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좀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바램도 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베이는 NAACP Legal Defense and Educational Fund, Inc.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 와 가난해서 변호사도 고용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유색인종)의 변호를 돕는 Equal Justice Initiative(평등정의이니셔티브)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숨어 있는 차별'을 이야기하는 사내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미 회사에서 차별에 대한 '불편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꼭 해야 하는 대화입니다.
복잡하고도 힘든 시기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의와 인종 평등이라는 가치를 함께 지켜 나갑시다. 이베이의 핵심 가치를 마음에 두고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지속해 나갑시다. 그게 바로 이베이의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우리 이베이의 모습일 것입니다.(That’s who we have always been. It’s who we will always be)"
이베이의 두 차례 이메일이 인상적인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다.
첫째.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기업 이념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베이는 '모두를 위한 기회 창출(Create opportunity for all)'을 기업 이념으로 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 판매자와 경쟁하고 시장 독점을 추구하는 아마존과 달리 판매자와 직접 경쟁하지 않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가 비즈니스 모델이다.
둘째. 회사소개 페이지와 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맨 위에 2019년 Diversity & Inclusion 연례 리포트가 올라 있다. 첫번째 전 직원 이메일은 CEO의 링크드인 페이지에 게재했고, 기업 차원의 기부를 하겠다는 약속이 든 두번째 이메일은 기업 링크드인 페이지에 게재했다.
셋째,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메시지를 진화시켰다. 제이미 아이오니가 첫 메일을 보낸 건 6월 1일이며, 이베이의 기업 이념과 입장을 명확히 하고 주로 직원들이 느낄 내부적인 충격이나 동요에 답변하기 위해 내부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게 골자다. 4일 뒤 보낸 두번째 메일에서는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해서 실제 액션을 취하기로 했다"며 기부 계획과 추가적인 사내 차별에 대한 대화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이야기한다.
이베이 CEO인 제이미 아이노니는 이베이에서 프로덕트 마케팅을 하다가 반즈앤노블에서 눅(nook)전자책을 만들고 운영했다. 더칠드런스플레이스, 월마트 샘스클럽 온라인 총괄에 이어 월마트 이커머스 사업부 총괄을 거쳐 올 초 이베이로 다시 돌아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을 고루 거쳤기에 아마 오프라인 매장들이 약탈과 방화로 몸살을 앓는 이번 사태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번 기회가 코로나19로 상반기 상당 부분 재택근무를 했던 직원들에게 본인을 소개하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다.
네 번째, 이베이의 성명 앞뒤로 발표된 아래 CEO들의 성명을 보자.
이베이 전사메일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희생자들을 한 명씩 호명하는 형식의 발표가 인텔 CEO인 밥 스완에게서도 나왔다.
"아마드, 브리오나, 조지, 크리스찬(최근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 공동체와 우리는 함께 합니다. 인종차별 행위와 불평등, 부당함은 끝나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We stand with Ahmaud, Breonna, George, Christian, their families, their friends and their communities, and we call for an end to acts of racism, inequity and social injustice."
- 인텔 공식 성명서 중
또 하나 재미있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drcO2V2m7lw
나이키의 비디오 형태 성명서도 눈길을 끌었다. 나이키의 Just Do It 을 비틀어, 'For Once, Don't Do It'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짧은 비디오다.
단 한번만. 하지 말아요. 미국엔 문제가 없는 척 하지 말아요. 인종차별에 등을 돌리지 말아요. 억울한 생명이 스러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말아요. 더이상 변명하지 말아요. 나는 상관 없겠지라며 외면하지 말아요. 그저 물러 앉아 침묵하지 말아요. 당신이 이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 모두 변화에 동참해요.
For once, Don't Do It. Don't pretend there's not a problem in America. Don't turn your back on racism. Don't accept innocent lives being taken from us. Don't make any more excuses. Don't think this doesn't affect you. Don't sit back and be silent. Don't think you can't be part of the change. Let's all be part of the change."
나이키 CEO인 존 도나호는 이 인상적인 비디오의 공개와 동시에 전 직원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보냈다.
인텔과 나이키의 공통점이 있다. CEO가 이베이 출신이라는 것이다. 밥 스완은 이베이 CFO를 오랫동안 지냈으며, 존 도나호는 이베이 CEO였다. 특히 밥 스완은 아직 이베이 이사회에 있다. 나이키와 인텔, 이베이의 셩명서는 하루 이틀을 사이에 두고 연달아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존 도나호와 밥 스완은 25년간 이베이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원이었다. 특히 존 도나호는 이베이에서 여성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임원 중 여성 비율을 4분의 1까지 끌어올린 CEO였다.
나이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전직 임원이 회사를 고소하고 어린 여성 선수에 대한 혹독한 훈련이 뉴욕타임즈에서 폭로된 한편 임신 선수 불이익을 준다는 폭로, 임원 중 여성 비중이 적다며 비판받는 등 나이키는 다양성 측면에서 도전받았다 새로운 CEO인 도나호의 이런 단호한 성명은 나이키의 이미지와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한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 CEO들 중 눈에 띄는 것은 알파벳(구글의 모기업)과 애플이다. 알파벳 순다 피차이는 유색인종(인도 출신)이고 팀 쿡은 동성애자다. 알파벳은 6월 3일 아예 전직원과 8분 46초 동안의 묵념 시간을 가졌다. 조지 플로이드가 목을 눌려 죽어간 시간이다. 애플 팀 쿡도 사내 이메일과 외부 공개 메시지를 통해 비슷한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했다. 알파벳의 경우 최근 다양성&포용 관련된 프로그램을 계속 축소해 왔는데, 이번을 계기로 다시 프로그램 투자 비용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다.
또 다른 한 축에서 흥미로운 곳은 페이스북과 아마존이다. 두 회사 모두 회사 규모에 걸맞게 거액을 인종차별철폐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여론은 두 거물의 입에 주목했다. 마크 저커버그와 제프 베조스. 두 사람이 과연 'Black Lives Matter'라고 직접 밝힐 것인가?
마크 저커버그는 5월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첸 저커버그 재단을 통해 1천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는데...
바로 이 포스팅에, 페이스북에서 퍼지는 가짜 뉴스에 페이스북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다는 비판 코멘트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트위터가 트럼프의 "약탈이 시작되면 총 쏜다"는 1967년 인종차별주의자 발언을 인용한 트윗을 가려 버린 데 비해, 마크 저커버그는 트럼프가 보는 폭스뉴스에 나가서 "우리는 진실의 중재자(arbiter of truth)가 되고 싶지는 않다"며 발을 빼면서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직원들이 항의하고 일부 직원들이 그만두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포스트를 하나 더 올렸다. "여러분의 의견 잘 들었다. 가짜뉴스 등에 대한 정책을 손보겠다. 투표 독려를 위한 조처를 취하겠다. Black lives matter."
아마존의 경우에도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아마존이 사이트에 'Black Lives Matter' 라는 메시지와 기업블로그에 기부 계획을 밝히자 (베조스의 개인적인 발표는 없었다) 한 고객이 베조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메시지를 보내서 "경찰들도 목숨을 잃지 않느냐. All lives matter"라며 항의한 것이다. (All lives matter는 주로 백인 또는 다른 인종 사람들이 '흑인 목숨만 소중하냐'는 의미로 쓰는 반발 메시지다) 이에 베조스는 "내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는데 그 아이가 밖에서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다르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CNBC는 이 소동을 보도하면서, 아마존이 경찰의 민간인 사찰에 협조한다는 점을 시민단체들이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이 고객이 없는 경우 물품 배송을 하기 위해 고객 집의 문을 따고 들어가서 택배를 놓고 나올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가진 회사 링(Ring)을 인수하면서, CCTV 화면을 지역 경찰들이 요구하는 경우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CEO들이 전국적인 시위에 이렇게 공식적으로 일제히 반응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비슷한 인종차별 논란으로 인한 시위가 2014년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18세 흑인 청년을 경찰이 쏴서 죽였을 때도 전국적으로 있었다. 조지 플로이드와 마찬가지로 브라운도 비무장이었고 하교 중이었는데 단순히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6발의 총성에 살해당했다. 하지만 그때 대부분의 IT기업들은 침묵했다고 IT전문지 The Verge는 밝혔다.
2020년에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이슈가 된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있다. 이베이 제이미 아이오니의 전사 이메일에도 쓰여 있듯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이미 유색인종, 특히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들이 더 많이 죽고 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린다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물론 기업에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 광고뿐 아니라 실제 운영도”를 강조하는 소비자 흐름도 강해졌다.
The Verge는 "가장 파워풀한 이들 IT기업들의 움직임을 통해 고질적이고도 구조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미국이 현재 겪는 정치 리더십, 특히 도덕적 리더십 공백 상황, 백악관의 공감능력 부재 때문인지 이들 기업가들에게도 해묵은 인종차별 이슈 해결에 대한 솔루션을 찾아 나가는데 1/n만큼의 부담이 지워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