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노조. 트럼프. 수정헌법 2조
미국에서 경찰이 무장도 안한 사람 목을 눌러 죽였는데 기껏 해고 조치? 바로 체포하고 기소해야지!
이게 한국인들의 상식일 것이다. 그 상식은 왜 미국에서 먹히지 않았을까? "숨을 못 쉬겠다"는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9분간이나 눌러 죽인 경찰은 시장이 즉각 해고했고, 이후 3급 (나중에 2급으로 상향됨) 살인으로 결국 구속됐는데도 왜 미국인들은 시위하러 쏟아져 나올까?
뉴욕타임즈, 버즈피드 등의 기사에서 다룬 미니애폴리스 경찰 조직의 현실을 통해, 미국 경찰이 왜 '폭력 경찰'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 경찰 내사 조직이 경찰 내부에 있다. 식구를 조사하니 솜방망이 처벌일 수밖에 없다.
2. 경찰 가혹행위에 대한 징계 판단은 "과거 판결에 근거"하기 때문에 세게 처벌할 수가 없다. 시민에게 인종차별적 욕설을 한 경찰을 징계하려고 해도 "예전에 시민을 걷어찬 경찰도 징계 안받았는데?"라는 식으로 징계를 최소화하는 식이다.
3. 경찰의 가혹행위 등을 외부 감시하는 소위 '시민감사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 위원회 결정이 권고 수준이라 실질적인 힘이 없었고 결국 위원회는 폐지됐다. 미니애폴리스는 특히 유색인종들에 대한 경찰 폭력이 심했는데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대대로 시장들이 많은 시도를 했으나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4. 경찰노조 또는 지역 경찰협회의 힘이 세다. 경찰노조는 경찰이 가혹행위로 고소당하거나 징계를 당하면 끝까지 싸워서 해당 경찰을 복권시킨다. 시카고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지역에서 경찰 노조가 생기면서 경찰 폭행 등에 대한 신고 건수가 증가했다. 노조의 계약 조항에 '경찰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경찰들도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슬그머니 복권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5. 경찰노조는 경찰들이 유색인종 가혹행위를 하더라도 해고를 최대한 막고 임금 인상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로 세수가 줄어서 가용예산이 줄어든 지방정부에서도 경찰 월급은 노조가 지켜낸다. 뉴욕시에서는 공립학교 예산이 3% 삭감되었으나 경찰 급여은 단 0.3%만 깎았다. LA에서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일시 해고(furlough) 후 10% 임금 삭감되었는데 경찰 임금은 4.8% 올랐다.
6. 보통 노조는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진보성향인데 반해 경찰노조는 보수성향이다. 노조가 경찰 내부에서 수십년 동안 자행된 소위 racial profiling (인종 프로파일링: 인종에 따른 차별행위) 관행의 개혁을 막는다. 이번에 시민 살해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의 경우 경찰노조위원장 스스로가 재직시절 시민 가혹행위를 수십건 저지른 인물인데다가 강력한 트럼프 지지자다.
7. 경찰은 노조를 중심으로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는 경찰 협회가 개혁 성향의 지역 검사(district attorney) 선출을 막기 위해 그를 반대하는 내용의 광고비 거액을 모금하기도 했다. 경찰 예산은 대부분의 지방정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경찰조직이 지방정부 전체 예산 결정에 있어 상당한 권한을 갖는다. 선출직 공무원 대부분이 경찰 조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8. 미국의 법과 사법시스템, 과거 판결이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고 살해했더라도 면책이 되는 구조(architecture)를 형성했다. 총기소지가 합법인 국가이므로 경찰이 시민을 죽여서 법정에 섰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그 상황에서 해당 시민이 총을 꺼내는 줄 알았다던지, 등등 순간적으로 ‘합당한 공포(reasonable fear)’를 느꼈다고 주장하면 재판 배심원들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눌러 죽여 기소된 경찰관 데릭 쇼빈도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를 이유로 풀려나거나 감형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미국 경찰이 인종차별을 하는 이런 구조를 뜯어 고치기 위한 노력은 없었을까? 있었다. 여러 번. 그 중에서도 가장 대담한 시도는 2015년 시카고에서 흑인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경찰 조직 내의 인종차별 관행을 개혁하려는 시도였다. 같은 시기에 #BlackLivesMatter 운동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공했을까?
오바마의 이런 시도는 경찰 조직을 급격히 우경화시켰다.
두 기사를 보면서 느낀 것.
나는 '사회에 대한 신뢰'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그 사회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의 신체적 장애가 사회의 장애물과 만날 때 그런 신뢰가 떨어지고, 결국 그것이 우리 가족의 비용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너무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높을 수록 사회적 비용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쩌면 미국에서만큼은, 시민이 스스로를 지킬 권리를 통해 총기 소지를 합법화한 미국의 '수정헌법 제 2조' 때문 아닐까.
내 딸은 종종 미국에서 사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고 한다. 코로나나 이번 시위 사태 전에도 그랬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는 총기 사고가 자주 나잖아.” 였다. 사고도 사고이지만, 밤늦은 거리에서 배회하는 저 사람에게 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일상화된다는 건 끔찍하다. 남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경찰이 시민을 믿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미국 흑인들이 경찰을 믿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 미국의 합법적 총기 소지가 공포를 부추기고 폭력을 유발한다. 인종차별은 폭력을 자양분 삼고, 폭력은 공포와 차별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미국인들이 줄서서 물건 산 곳이 총포상이었다는 점은 섬뜩하다.
이번 미국 시위를 촉발한 인종차별 이슈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총기를 소지해서 자신을 지키라는 미국의 수정헌법 2조 조항을 뜯어고치지 않고는 어쩌면 영영 풀 수 없는 난제일 것 같다.
수정헌법 2조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있고, 그가 이미 임명에 성공한 2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이 앞으로 한 명 더 늘어나면 미국의 총기 규제 개혁은 더 요원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