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눈박이엄마 Oct 08. 2020

불완전한 미국 민주주의

미국 대선 기사를 보면 볼수록 의문이었다. 한국같으면 탄핵을 백만번쯤 당했을 것 같은 트럼프가 코로나에 걸리고도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무솔리니(본인은 처칠인줄 알겠지만) 흉내를 내며 국민들을 뻔뻔하게 가스라이팅하는데 당최 무얼 믿고 저럴까? 



트럼프는 좋게 말해 독특한, 나쁘게 말해 아주 요상한 선거 제도와 정치 구조를 최대한 악용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여러 제도가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민의를 반영 못하는 구조다. 호기심에 몇 개 팟캐스트와 동영상을 찾아봤다. 



1. 선거인단제(electoral college)가 민의 반영을 어렵게 만든다.


미국 대통령은 승자독식 형태로 자기 주에서 우세한 후보에게 선거인단의 모든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뽑는다. 미국 건국 초기에, 작은 주도 대통령을 뽑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배려해서 만들어진 제도라는데 이제는 몇몇 경합주, 기껏해 봤자 수십명의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미국도 한국처럼, 공화당 뽑는 빨간 주와 민주당 뽑는 파란 주는 거의 고정이라서) 28년동안 공화당 후보가 다수득표를 못하고도 절반 가량의 기간 동안 대통령을 했던 이유다. 


다수득표를 못했지만 대통령이란 권력의 맛을 보면 그 다음에 민의를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게 된다.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를 비난하지 않고 옹호하는 이유다. 적극적인 투표층을 자극해서 양극화를 강화하는 게 선거공학적으로 유리하다. 


선거인단제에 따라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수 


2. 인종차별이 선거제도 곳곳에 남아 있다.


트럼프는 "해외로 일자리가 빠져나가고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는다"며 "대졸이하 블루컬러 백인 남성"의 공포를 자극해 대통령이 됐다. 물론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는 교외지역(suburbs) 여성표 등도 꽤 받았지만 2020년 이제 여성, 고령자, 유색인종, 교외지역 유권자 등의 표는 거의 다 떠나갔고 유일하게 이들 블루컬러 백인 남성 (+복음주의 기독교인)지지만 콘크리트처럼 남았다. 이들 계층은 다민족, 유색인종에 경제적/종교적으로 공격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가스라이팅 하기 전부터 그랬었다. 


그래서 사실 미국 뉴스를 보면 '투표 억압(voter suppression)'에 진보 정치인들이 대항하기 위해 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는 식의 기사가 종종 나온다. 유색인종, 특히 흑인과 라틴계를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예전 노예제도 시절 잔재들이 아직도 찌꺼기처럼 남아 있거나 공화당이 일부러 유색인종의 투표참여를 낮추기 위해 없던 제도를 만들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흑인이 절대 다수인 동네에서는 사전 현장 투표가 6-7시간씩 걸리는데 백인 동네에서는 10분도 안 걸렸다던지. 인종주의 잔재가 어마어마하다. 


3. 제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나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위의 두 가지에 비하면 애교에 가까워 보인다. 


제리맨더링은 한국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꼼수인데 정치적으로 한쪽 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개편하는 거다. 사진은 그 유명한 펜실베니아 주의 "구피가 도널드 덕의 엉덩이를 차고 있는" 제리맨더링. 


그 유명한 '구피가 도널드덕의 엉덩이를 차는' 모양으로 생긴 펜실베니아주 선거구


양당의 의견차가 큰 의료보험개혁안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큰 법안을 공화당이 거의 필리버스터 카드로 막아왔던 흑역사가 있다. 야당이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의회 석상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필리버스터는 최근 오바마 전 대통령이 존 루이스 상원의원 장례식에서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민주당도 섣불리 이걸 못 없애는게, 올 11월엔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한다 해도 2년 후에는 또 달라질 수 있으므로.. 



4. 그래서 그 결과? 


우선 정치 혐오나 정치 무관심이 늘어난다. 미국 유권자 중 투표를 안하는 사람이 무려 1억 명이나 된다. 지금의 미국 정치 구조는 민주당이 아무리 용을 써도 공화당에 트럼프 같이 분열을 부추기는 쇼맨십의 정치인이 나오면 언제든 상하원, 대통령 자리를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제 3당의 출현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화당은 (한국도 비슷한 것 같은데) 훨씬 편협한 지지층에 기댄다. 대신 민주당은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넓다. 한국으로 치자면 더불어민주당부터 정의당 녹색당 등등이 다 한 당에 '빅 텐트'처럼 모여 있다. 지금은 트럼프를 물리쳐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모여 있지만 사실 버니 샌더스와 조 바이든의 이념적 거리는 매우 멀다. 


너무나도 큰 민주당의 텐트.... 


5. 민주당이 만지작거리는 정치공학 카드는...


이번에 대통령,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다면 민주당은 아마 대법관 추가임명(court packing)과 필리버스터 폐지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다. 또는 푸에르토리코나 워싱턴DC, 괌 같은 곳을 '주 승격'시키는 것도 고려하라고 정치 평론가들은 권한다. (이곳은 모두 민주당 쪽 성향이다) 현재 미국 주 자체 구성으로 볼 때는 공화당이 자기네 텃밭만 잘 지키고 일부 경합주 승리하면 쉽게 정권 창출이 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서 그렇다. 


6.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미국 진보정치인들이 밀고 있는 제도는 Ranked choice voting과 democracy dollar다. 


1,2,3... 이 지속되면 공화/민주 양당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소수자 그룹은 맨날 탄압받는다. 기득권, 기성 정치인이 우대되고 최대한 상대방을 적으로 모는 '갈라치기'를 해야 지역 경선에서 뽑히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소수 정당이나 다양한 목소리는 반영될 틈이 없다. 


Ranked choice voting은, 다수의 후보자에게 순위를 매기는 투표 방식이다. 여러 명이 선거에 나오면 1명만 뽑는 대신, 여러 명에게 순위를 매기고 순위별로 가중치를 둬서 최하위 후보자를 떨어뜨리는 것. 이렇게 하면 다수의 후보가 나와도 최대한 많은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 또한 사표 심리도 막을 수 있어 소수 정당이 원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 메인(Maine) 주에서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Democracy dollar는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앤드루 양을 비롯해 몇몇 후보들이 지지했던 정책이다. 국민들 중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100달러 정도의 '민주주의 지원금'을 줘서 자기가 원하는 후보에게 기부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거대자본 모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민의 반영이 가능한 풀뿌리 민주주의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앤드루 양을 비롯해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들은 Democracy Dollar 정책을 제시했다


-----


PS 1. 팟캐스트 몇개를 듣다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보는 표현들이 나온다.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정치 신인이 데뷔하기 어려운 구조다" "본선보다 경선이 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은 편협한 특정 계층의 표를 정치공학적으로 얻어서 리얼리티 쇼 호스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제도는 아니겠지 하며 약간의 위안을 삼는다. 민주주의가 망가지면 말 그대로 사람이 죽는다는 걸 미국을 통해 본다. 정부기능을 마비시키는 리더를 뽑게 되고, 바이러스에 대응 못하고 사회갈등이 심화되면서 사람이 죽는다. 


PS 2. 아... 맨날 마감에 쫓길 때 마감은 안하고 이런 긴 글을 쓴다 ㅠ 이건 무슨 청개구리 심뽀인가 ㅠ 


참고한 팟캐스트: Vox의 <The Ezra Klein Show>, <The Weeds> New York Times <The Argument>

참고한 동영상: Netflix의 <Patriot Ac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