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눈박이엄마 Nov 05. 2020

미대선 재검표, 트럼프에게 이익인가?

부시 승리를 안긴 2000년의 미 대법원 판결, 바이든에게 유리할수도

<2000년의 민주당 악몽, 재검표는 트럼프에게 순풍이 될까 역풍이 될까?: 부록: 조 바이든은 왜 플로리다에서 졌는가>


1.


현재 미 대선 상황으로 보면 뉴스위크, 애틀랜틱 등이 예측한 불길한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우편투표, 사전투표 등을 집계한 결과 경합주에서 바이든이 간발의 차로 이기고, 트럼프가 불복하고(벌써 아예 개표를 멈추자고 주장 중), 법원을 동원하는 것(벌써 트럼프는 위스콘신 재개표를 요구 중)... 불길한 시나리오 전체 분석은 여기. (https://brunch.co.kr/@jeeminstory/15)


2.


사실 한국 뿐 아니라 최대 득표자가 선거에서 이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라면 일찌감치 바이든이 이겼을 것이다. 게다가 바이든은 역대 최대 득표를 얻어가는 중이다. NPR에 따르면 오바마가 2008년에 얻은 최대 득표 수를 벌써 (미국 11월 4일 기준)추월했다고 한다.


3.


그러나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밤을 꼬박 새고 나서도 며칠을 더 선거개표방송에 매달려야 할 실정이다. 왜 미국이 이런 제도를 갖게 되었는가?는 엄청 엄청 분석해놓은게 많으니 찾아보셔도 좋겠고...


결국 남북전쟁 이전부터 뻑하면 대립 일변도였던 미국 '연방'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정치인들이 타협하며 만들어 놓은 제도다. 인구가 적은 시골 지역, 특히 남부도 연방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인구 쪽수로 대통령을 결정 않고 각 주에서 투표를 한 후 선거인단이 몰아주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결정하면 작은 주들도 목소리를 (엄밀히 말하면 그런 주들끼리 연합해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4.


선거인단제도를 뜯어고치려는 시도가 없었을까? 있었다. 놀랍게도 공화당 쪽에서 시도했었다. 현대에서는 1968년 선거에서 닉슨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였다. 극보수로 4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제3의 대선후보(조지 월레스)가 나와서 "야 내가 너 지지하면 나한테 뭐줄래"라며 닉슨에게 흥정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선거인단제도 수정 입법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남부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서 선거인단제도 수정이 무산됐다.


5.


많은 민주당원들이 불만을 토로하듯, 선거인단 제도는 현대에 와서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는 도시, 교외(suburbs)가 주 거주지다. 현대에 들어와서 도시가 팽창해서 사실 popular vote로 보자면 최근 30년 동안 대선에서는 딱 1번을 빼고 계속 민주당이 이겨왔다. 그런데도 공화당이 절반의 기간 동안 대통령을 했으니.


6.


그래서 미 진보진영 언론, 팟캐스트에서는 민주당이 아무리 전체 표를 얻어도 계속 이렇게 선거인단에서 머리를 쥐어뜯을수밖에 없는 상황을 탈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선거 전부터 분석해 왔다. (그에 대해서는 브런치에 써놨다 https://brunch.co.kr/@jeeminstory/17)그 중 한가지 방식이 바로 Ranked choice voting이다.


이번 대선 선거인단 싸움에서 '승자독식'이 아닌 'Ranked choice voting'과 'congressional district method'를 도입한 네브라스카에서 대선 투표인단 수가 갈렸다. 네브라스카 선거인단 중 4표는 트럼프,  1표는 바이든에게 갔다. 바로 이 1표가 바이든에게 대선으로 가는 선거인단 숫자 270표를 간신히 채우는 매직 넘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Ranked choice voting의 장점은 정치 신인도 능력만 있으면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거다. 하지만 제3정당이 나오면 진보 표가 갈리면서 현재 당내에서 중도-진보를 고루 포함하고 있는 소위 '빅텐트' 민주당에 불리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Ranked choice voting을 지금 당장 확대하자고 이야기할리 만무하다.


7.


트럼프가 꾸역꾸역 대법관을 3명이나 임명하고 상원 원내대표인 공화당 미치 매코넬이 100명이나 되는 보수 성향 법관들을 연방/주 법원에 채워 넣은 데에는 바로 이 선거를 위한 빅픽처가 있었다. 결정적 순간에 법원이 공화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들이 생각하는 대로 법관들이 순순히 "아 네 저를 임명해 주신 공화당 정치인느님들께 갖다바치겠습니다요"라며 이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여 줄까?


8.


대법원이 고어의 당선을 막았던 2000년 이야기가 앞으로 며칠 동안 겁나 미국에서 많이 나올 것이다.


2000년 대선, 고어는 미국 전체 전체 득표는 이겼지만 선거인단에서 뒤졌다. 이 때 플로리다 (으으으 플로리다...)에서 초박빙(불과 500표차!!!!!)으로 지면서 고어가 몇몇 카운티의 재검표를 요청했다. 당시는 펀치를 뚫어 선거투표를 했는데 선거검표기기에서 무효표가 된 표들이 꽤 많았다. 나비 선거용지(butterfly ballot)라고 하는 이들 용지는, 펀치뚫은 종이가 대롱대롱 달려 있거나 (hanging chad) 펀치가 다 뚫리지 않고 불룩 나와 있거나 (pregnant chad) 하는 표들이 상당했는데 이걸 재검표하자는 게 고어의 주장이었다.



9.


일부 카운티에서 재검표가 시작됐다. 공화당이 대법원에 제소했다. 당시 보수 성향 다수였던 대법원은 재검표를 막았다. "그런 투표용지를 만든 유권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공통된 룰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 시기가 선거인단이 최종 결정되는 12월 18일에서 불과 6일 남아 있었던지라 물리적으로 제대로 된 재검표가 불가능했다는 상황도 있었다.


10.


솔직히 고어는 그냥 버텼어도 됐다. 미국에서는 대선 패배 후보가 시인을 해야 미 선거 결과가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암묵적 룰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분열을 우려한 고어가 "패배 시인(concession)"하면서 평화적 정권 이양이 됐다. (사실 고어가 재검표를 요청한 카운티들 자체가 친 민주당 성향이었다는 것도 작용했다)


11.


20년 후, 거의 비슷한 상황이 이번엔 편을 바꾸어 일어난 셈이다. 나머지 우편투표를 다 까봐야 알겠지만 현재 트럼프가 재검표하자고 하는 위스콘신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법원이 20년 전과 똑같이 판결한다면 트럼프는 진다. 미국 법률 전문가들은 법원은 법관의 개인 정치성향과는 관계 없이 되도록이면 정치적 판단에서 빠져 있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므로) 그렇다면 20년 전 공화당에 유리했던 대법원 판결이 이번에는 거꾸로 민주당에게 유리할 가능성도 있다.


12.


20년 전과 여러 상황이 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점?


지금 앉아 있는 미 대통령은 패배선언을 절대 하지 않을 거란 거다. 왜? 트럼프 심리에 대해서는 여기서 분석해 놨다. (https://brunch.co.kr/@jeeminstory/20)


그리고 지지자들도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다.


왜? 지지자 심리는 여기서 분석해 놨다. (https://brunch.co.kr/@jeeminstory/19)


13.


착각하지 말자. 조 바이든은 미 대선에서 가장 많은 대중 득표를 한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미국 민주당에서 장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런 미 선거제도의 결함 때문에 "크게 이겨서 트럼프가 불복하네 어쩌네, 지지자들이 총들고 뛰쳐나오는 상황이 안나왔으면"하는 바램을 모두가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있는 제도도 부인하고, 진실은 거짓이라고 하고 거짓은 퍼뜨리는 '미디어 귀신'이기 때문이다.


14.


좀더 분석이 나오겠지만 생각보다 "거짓말을 오래, 진득하게, 집요하게 떠들어대고 확산시키는 것"의 후유증이 크다.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문제가 많다'는 말을 거의 1년동안 떠들어 댔다. 사람들이 정말 그래? 라고 믿을 때까지. 그런 가짜뉴스는 어디를 통해 퍼지나? 폭스뉴스 코멘테이터, 극우 팟캐스터, 다시 트럼프의 트윗, 지역 언론으로 계속 확대재생산되며 무엇보다 소셜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한다.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거짓말이나 음모이론 온상이 되는지 분석은 여기. (https://brunch.co.kr/@jeeminstory/22)


15.


이런 종류의 가짜뉴스가 가장 크게 퍼진 곳 중 하나가, 이번에 바이든이 갖고갈 거라고 생각했던 플로리다였다. 이번에 바이든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데 실패했는데, 그 중 한 이유가 트럼프 가 퍼뜨린 음모이론이 지역 스페인어 방송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꾸준히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물론 현장 조직도 공화당에 비해 취약했다. 코로나 때문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성향을 민주당이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건 몇 달 블룸버그가 이 지역에 Tv광고 때려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압도적인 히스패닉 유권자 지지를 얻었는데 거기 가서 진작 좀 물어보지... 하는 분석이 미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버니 샌더스는 탄탄한 히스패닉 지지자 조직을 꾸려왔고 이들의 표심에 맞는 메시지를 계속 반복했다. 물론 조 바이든이 샌더스의 플레이북을 따르는 것은 자기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히스패닉 투표를 얻으려면 그들에 맞는 공약을 내놓아야 하는데 버니의 공약은 트럼프에게 좌파 공격 받기 딱 좋기 때문에)


16.


간단히 적으려다 길어졌 ...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 아무튼 트럼프는 절대로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거에요. 심리적으로 패배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기를 부정하느니 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여서 이를 덮으려 할 것이라서요.


> 선거인단제란 독특한 제도의 미국 민주주의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지만, 또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트럼프를 제압할 수 있는지 한번 지켜봐야겠어요. 법원에게 기대...를 걸어봐야겠지만, 결국은 국민들이 움직여야겠지요.


> 기본적으로 트럼프가 애초에 리얼리티Tv스타에서 대통령이 된 과정에 미디어가 어떻게 작용했고, 진실 대신 대안진실이 판치게 되는 상황을 우리도 미국을 반면교사 (...라고 하는 게 맞나) 삼아서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