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법정에서 민주주의를 뒤집으려는 트럼프
바이든의 대통령 선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불복하며 '대법원에서 보자'고 하지만, 이미 어제 백악관에 나와서 '우편투표로 민주당표가 나오는 건 불법 표'라고 말한 것 자체가 패배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과정이라고 보인다. 2016년에 힐러리가 대선 총투표에서 이겼다는 것도 트럼프는 시인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그래서 과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미국 언론은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트럼프는 2000년 부시-고어 때 대법원이 부시 손을 들어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수 성향 대법원이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고 믿는 것 같다. 심지어 트럼프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상임고문이 2000년에 플로리다 재검표 법정 논란에서 공화당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제임스 베이커 전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법률 자문을 맡기려는 모양인데, 베이커 측에서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 이유는:
1. 트럼프는 합법적인 우편투표의 개표 자체를 문제를 삼고 있는데, 20년전 플로리다주에서 이슈가 된건 '재검표'였다. 당시에는 고어가 재검표를 해달라고 청구했고, 대법원이 재검표를 막았다. 게다가 플로리다에서는 전체 득표가 단 500표밖에 안났다. 아마 이번에는 표차이가 수백표밖에 안 날 것으로 예상되는 조지아주에선 재검표를 하게 될 거다. 하지만 다른 주는 재검표가 아닌 뭔가 다른 이슈를 끄집어내야 한다.
2. 지금 백악관은 선거과정의 작은 부정을 끄집어 내서 재검표 또는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려고 하고 있다. 4개 주 모두 성공해야만 뒤집을 수 있다. 각 주마다 이슈가 다르다.
3. 공화당이 순순히 트럼프 편을 들지 않을 것이다. 조지아주는 우리로 치자면 '대구경북' 수준의 상당한 보수성향 주라 주지사, 주 의회, 주 법원 모두 공화당이다. 트럼프 주장대로 부정선거라면 공화당이 부정선거를 했다는 말이 되는 거니까.
4. 정치적으로 힘이 안 실리고 있다. 지금 트럼프를 옹호하는 쪽은 백악관에서도 트럼프 일가(쿠슈너, 트럼프 주니어)와 비서실장 정도다. 나머지는 조용히 짐을 싸고 있다는 후문이다. 공화당 상원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넬이나 법사위원장인 린지 그레이엄 등도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대통령을 공개 비판했다.
5. 트럼프 기관지 역할을 했던 폭스뉴스도 슬슬 손절 중이다. 폭스뉴스는 일찌감치 애리조나주를 '바이든이 이겼음'이라고 선언했다. (CNN도 안했는데) 폭스가 보수적이긴 하지만 뉴스 쪽에서는 적어도 팩트를 왜곡하지는 않는다. 쿠슈너가 폭스에 반발해 폭스 사주인 루퍼트 머독에게 전화해서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6. 굳이 트럼프가 뒤집을 만한 가능성이 있다면,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개표과정(참관인이 몇 미터 떨어져서 참관을 해야 하는데 그 거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둥)을 트집잡거나 일부 우편투표 뭉치의 소인 날짜 등을 문제삼아서 무효화한다던지... 등등 아주 짜친 증거를 법정에 들고 가야 한다. 참고로, 펜실베이니아 주는 주지사는 민주당, 주 의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갈라서 갖고 있다. The Hill에서는 최악의 경우 선거인단이 두 그룹(한 그룹은 트럼프, 다른 한그룹은 바이든)이 꾸려질 수도 있다며 주 의회 공화당 리더십의 성숙한 대응을 촉구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질척거려야 하나 트통? 하는 여론이 비등할 거다)
7. 아무리 보수적 성향의 대법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짜친 증거만 갖고 미국 민주주의의 정점에 있는 선거제도 자체가 훼손됐다고 결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는 트집잡기 선수니까 얼마나 그런 구멍을 잘 찾아내는지 봐야 할 것이다.
8. 뉴욕타임즈는 트럼프의 어제 기자회견 자체가 분노->부정->체념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트럼프는 현장투표를 독려해왔고 바이든은 우편투표를 독려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현장투표에선 트럼프가 앞서도 바이든이 우편투표에서 나중에 앞서 가는 건 이미 대부분의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선거 전부터 예상했던 바다. 트럼프의 지지층 중 하나인 노년층도 코로나 우려로 우편투표를 많이 했다. 그러므로 사실 우편투표 전체의 신빙성을 깔아뭉개면 트럼프 본인이 손해다. (명심하자. 4년간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우편투표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200년 넘는 미국의 민주주의 요체 중 하나인 선거 과정의 정당성을 훼손하려고 하고 있다.
9. 수십년간 미국 정치를 커버해 온 베테랑 기자들은, 20년 전 부시 vs 고어 때 전체 득표수에서 지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앞서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해롭다고 한탄한다. 미국이 선거인단제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2000년 전에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항상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6년 이미 국민 다수 지지를 얻지 못하고도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4년 후에도 전체득표에서 지고도 '대법원 찬스' 등의 꼼수로 다시 재선된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니, 이미 그런 상처를 입었다. 노틀담대 밥 슈물 교수는 미국의 정치 구도가 "공화vs 민주당"이 아니라 "부족국가"의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과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대선에서 트럼프가 예상 외로 선전하는 한편 상하원 선거 결과 또한 민주당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미국의 현장 민심이 무엇인지 민주당이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는 거다. 민주당 경선후보 중 가장 공화당 지지층에게 어필했고 '현장 민심'에 가까운 언어와 정책을 선보인 앤드루 양의 말을 빌어보자.
"조가 승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어젯밤(선거날) 뭔가 중요한 것을 잃은 것 같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