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로 응급실 격리공간에 있던 경험이 준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공감
아이가 밤에 38도 넘게 고열이 났다. 우리 아이는 하반신마비라 환절기에 열이 자주 난다. 요즘처럼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때는 병원이 더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집에 있을 수는 없기에 주위에 여기저기 물어보고 결국 응급실에 갔다. 아래는 아이가 열이 난 밤부터 결국 응급실로 가서 격리실에 있다가 입원하게 된 시간 동안 느꼈던 점.
1. 정보는 소중하다
고열로 응급실 가기 전 SNS 친구분들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이분들이 조언 주신게 너무나 유용했다. 감사드린다. 어줍잖게 보건소나 동네 병원보단 (차트 기록이 있어서 응급처치를 더 빨리 받을 수 있으니) 기저질환이 있거나 특정 병원에 자주 다녔다면 다니던 3차 진료기관의 선별진료소를 거쳐 응급실에 가는게 좋다.
보건소에 가게 되면 코로나검사는 검사대로 받아야 하지만 아이의 상태에 대한 기록이 없다 보니 하다못해 열 떨어지는 주사 한 대 맞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동네 병원은 고열이 나는 경우 아예 받아주지를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3차진료기관도 생각해봤으나 거기에서도 입아프게 의사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했을 것이다. 결국 다니던 데를 가야 환자가 덜 고생한다.
가기 전에 페친들에게 들은 정보로는, 코로나 검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고열 환자는 격리구역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격리구역에 들어가게 되면 화장실 갈 때 외엔 나올수가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 가서 불안감이 훨씬 줄었다.
2. 코로나 시대 응급실 사용법
응급실에는 환자가 몰리는 시간대가 있다. 페친들 말에 따르면 새벽에 많이 몰린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밤에 약을 먹어보면서 좀 버텨보자 했는데 아침 나절에 39도까지 올라서 도저히 더 미룰 수 없어서 오전 8시경에 병원에 도착했다. 출근시간대라 차가 막혔는데 마음졸였다. 그런데 아침 이른 시간대에 가니 도리어 사람이 적었다. 그냥 그날만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응급실을 여러번 이용해봤던 경험으로는 밤에는 의사분들이 많이 피곤해하신다. 당연히 근무자 수도 적고... 그런데 아침이라 그런지 의료진분들 상태가 좀 나았던 듯..?
열이 있다고 하니 선별진료소로 안내해 주고, 선별진료소에서 상태를 물어본 후 응급실 격리실로 안내해 준다. (윗 사진) 격리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필요한 응급처치(우리 아이의 경우 해열제 주사, 수액을 놔줬다)를 해 준다.
다만 놓쳤던 건, 응급실 격리구역에서는 꼬박 굶을 수밖에 없다는 점. (성인 응급실의 경우 환자 혼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학생 아이인데다가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걸 보고 아동 응급실 격리실로 안내받아 보호자가 같이 있을 수 있었다. 대신 함께 격리된다) 보통 응급실에 있더라도 뭔가 먹을거 사러 나갔다 올 수 있거나 보호자 2명 중 1명은 나갔다 올 수 있는데, 격리실은 그게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코로나 검사한 아이가 마시던 수통 물도 먹을수 없어 간호사가 멸균컵에 준 멸균 물 한잔 마신게 다다. 아이는 응급실에 있던 6시간 포함 꼬박 24시간을 굶었고 나는 18시간을 못먹었다. 나중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친척집에 전화해서 음식을 반입해 달라고 했다. (외부 음식 반입은 가능하다) 배달이 되냐고 물어봤더니 간호사들이 당황해하는 걸 보면 그런 사례가 없었나보다.
내가 갔을 땐 코로나검사가 8시간 정도 기다려서 나왔는데, 요즘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열나서 응급실 가는 분들은 먹거리 챙겨가시라.
3. 홍해가 갈라지듯...의료행위와 거리두기, 미지의 공포 사이
코로나 판정 나기 전 우리 아이는 여러가지 다른 증상이 의심되어 일반 병동으로 입원하기로 했다. 일반 병동에 코로나 음성판정 받기 전 고열 환자를 수용하는 격리병실으로 가기로 했다. 이 곳으로 이동할 때는 병원 앰뷸런스를 타고 간다. 아이 침상이 병원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양 옆 사람 오가는 걸 미리 막고 있었다. 홍해를 가르고 가는 느낌이었다.
격리병실로 입원했는데 간호사가 방호복 완전무장 후 들어왔다. 처치 중 아이가 코로나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자 바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간호사가 방호복을 벗어던지더라. 오갈 때마다 방호복을 입는다니 얼마나 더울까... 싶었고 우리 옆에 오는 게 공포였겠다 싶었다.
코로나 음성판정 나기 전 격리구역에 6시간 있으면서 의료진들의 행동에서 고열만 있어도 최대한 피하는 게 느껴졌다. 당연하다. 하지만 낯설었다. 아이도 그걸 느꼈는지 “엄마. 내가 마시던 물 마시지 마. 혹시 모르잖아..” 한다. 눈물이 왈칵 나려 했다.
4. 코로나 확진자를 비난도 혐오도 말자.
격리되어 있으면서 이젠 코로나가 우리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단 몇시간의 격리로도 코로나 확진으로 수 개월 격리되고 사회에서 외면된 이들의 심정을 아주 약간은 이해하게 됐다. 코로나에 정말이지 재수없어 확진된 사람들의 정체를 알려고 하거나, 뒷담화하거나, 비난하거나, 굳이 어디서 어떻게 걸렸네 물어보지 말자고 한번 더 다짐했다.
주말엔 병원에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e북 리스트에 넣었다. 아래는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책 저자의 조선일보 인터뷰 증 일부를 따왔다.
코로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고가 아녜요. 인류의 인격에 보내는 경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라고 붙였어요. 영어로 하면 ‘I accidentally got COVID’, 우연히 일어난 사고(事故)예요.
이번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면서 ‘저 사람이 없으면 나도 없구나’라는 연대감이 제 삶 전반에 깔려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읽는다면 공감하며 두려움을 떨쳐내길 바라며 글을 썼어요.
몸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왔어요. 마음엔 후유증이 남았지요. 제가 마주한 현실은 잔혹했습니다.
퇴사 서류를 쓰러 간 회사 앞에서 동료들이 담배를 피우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다들 마스크를 썼어요.
보이지 않는 칼로 찌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실 바이러스보다 사람들이 더 무서웠어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만난다면 말할 겁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어도 돌봐줄 수 있는 환경, 완치돼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또 복귀했을 때 사람들이 적어도 나를 밀쳐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완벽한 방역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