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흑인 운동선수 vs. 여성, 아동, 장애인: 삼중차별의 압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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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는 미국 체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다. 24세에 36개의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고 그중 27개는 금메달이다. 바일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냈고, 체조코치에게 오랫동안 성적 착취를 당했던 과거라는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올해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그런 바일스가 '공중에 멈춰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 낯설다(foreign)'며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경기 한 종목에서 기권했다. 물론 그 뒤에 다시 복귀해 평균대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바일스의 행동은 예전 같으면 '국가대표가 정신력이 이렇게 해이해서야!'라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바일스는 몸이 아프다던지 하는 핑계를 대는 대신, 체조선수가 공중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 떨어지는 심리상태를 솔직히 밝혔다.
바일스는 국가 대표선수라는 압박감에도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용기있게 밝혔다. 프랑스 오픈에서 정신건강을 위해 기권한다고 밝힌 테니스 선수 나오미 오사카와 같은 이유였다.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기'의 중요성을 용기있게 밝힌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유색인종, 여성, 운동선수였다.
바일스나 오사카가 용기있게 나설 수 있었던 건 이들이 톱클래스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국가대표나 세계 수위권 선수들, 특히 소수인종 선수들이 자신의 취약점을 솔직하게 밝히기란 어려운 환경이다. 왜 그런지 알아보자.
흑인 운동선수들, 특히 올림픽 출전선수들이 겪는 이중-삼중의 압박
바일스의 사례는 'Black excellence'라는 미명 하에 흑인 운동선수들이 겪는 이중차별, 여성의 경우 삼중적 압박을 겪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여성 선수를 향한 성차별은 그동안 많이 알려진 바다. 외모 평가는 일상이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 비너스 윌리엄스는 1999년 경기에서 흑인들이 즐겨 하는 비즈가 달린 머리장식을 하고 출전했는데 이를 심판이 지적하자 항의했다. 천 같은게 경기장에 날리면 안 된다는 내부 규정을 들었는데 그건 경기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천조각을 뜻하는 것이라 심판의 지적은 다분히 차별적 요소가 있었다.
세레나 윌리엄즈도 여성 선수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하퍼스 바자에 글을 쓴 적이 있다. 2018년 나오미 오사카와의 US 오픈 경기에서 윌리엄즈가 심판 판정에 대해 항의하면서 라켓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을 한 후 언론이 윌리엄스와 오사카를 숙적처럼 묘사했기 떄문이다.
윌리엄즈는 글에서 "난 그 당시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은 행동을 헀다. 나오미 오사카. 당신이 자랑스럽다. 내가 미안했다. 계속 응원하겠다." 윌리엄즈는 이어서 그 동안 흑인 여성 선수로 겪은 갖가지 수모, '별별 욕', '잠자코 있어라'는 무언의 압박을 떠올렸다. 여성 선수가 적극적으로 항의하면 (남자 선수들은 겪지 않았을) 감점이나 징계 등이 가해지는 현실도 지적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표출하면서 뒷 세대 선수들에게는 조금 더 나은 플레이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덧붙였다.
"왜 '열정적'인 여자들에게는 '감정적' '미쳤어' '비이성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건가?"
세레나 윌리엄즈의 사과에 오사카는 이렇게 받았다. "세레나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맞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계속 선구자(trailblazer)의 역할을 해 주시기를 바라요."
윌리엄즈처럼 이렇게 당당하게 어필하는 선배 선수가 있었기에 오사카 나오미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게 사실이다.
"흑인 올림피언들의 어깨에 지워진 세상의 무게"
미국 여성 체조선수들이 겪은 성차별이야, 더 말할 것 있을까. 팀 닥터가 어린 여자 체조선수 수백명을 무려 18년간 성희롱, 성폭행해서 징역을 살고 있다. 시몬 바일스도 그 피해자 중 하나다.
이렇게 다중 압박에 시달린 바일스를 분석한 기사 중 단연 눈에 들었던 건 '흑인 올림픽 출전자들의 어깨에는 세상의 무게가 지워진다'(NPR)라는 내용.
<흑인 운동선수들의 반란>이란 책을 쓴 사회학자 해리 에드워즈(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 교수)는 구조적인 인종차별 하에서 흑인 운동선수들은 주류 백인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특히 '바로 성과가 나오는' 운동이란 분야를 택하면서 더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흑인 선수들은 19-20세기 내내 올림픽 무대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백인 선수들과 일반인 흑인들을 일부러 경쟁시켜 '흑인은 열등함'을 일부러 보여주려 했었다. 그 이후에도 웬만큼 뛰어나지 않으면 백인들과 나란히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당하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백인과 나란히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라'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다.
그래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흑인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에서자기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는 압박 외에도 이런 추가적인 압박감을 견뎌내야 한다.
1) Black fear: 흑인 선수를 견제하고 두려워하는 시선
2) Black excellence: 흑인 사회가 흑인 선수에게 거는 큰 기대
시몬 바일스를 보며 문득 휠체어를 타는 내 딸 지민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외출할 때마다 공들여 화장하는 아이에게 어린데 무슨 화장이냐고 타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화장하고 어른스럽게 옷을 입지 않으면 무시당하기 일쑤야."
"엄마, 나는 여자, 장애인, 아이잖아. 휠체어를 타고 나가면 3중 차별을 받는 느낌이 들어."
글을 곧잘 써내는 아이를 보면서 기대도 걸게 된다. 하지만 시몬 바일스를 보며 느낀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의 기대 대신 나 자신이 스스로를 움직이는 동력이어야 한다.
'모델 장애인'이라는 외부의 기대나, 뭔가 순순하고 고분고분해야 할것 같은 '장애인이면 장애인다워야지!'라는 편견에도 세레나 윌리엄즈가 그랬듯이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어떤 아이덴티티가 주는 편견에 아이가 갇히거나 규정당하지 않고 자기 모습을 제대로 잘 찾아가기를.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다가 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오사카나 바일스처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