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enam Kang Sep 30. 2020

"르뱅보다 맛있다" 뉴요커가 사랑하는 초콜릿 칩 쿠키

미드타운 커피의 자존심, 컬쳐 에스프레소(Culture Espresso)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솔 오웰(Sol Orwell)은 초콜릿 칩 쿠키를 좋아한다. 초콜릿 칩 쿠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초콜릿 칩 쿠키를 다이어트, 그리고 사업에 십분 활용하는 사람은 아마도 오웰이 유일할 것이다.


하루 한 개의 초콜릿 칩 쿠키를 먹는 것. 이것이 오웰의 다이어트 성공 비결이다. 이거저거 먹고 싶은 식욕을 쿠키 하나로 누르며, 나머지 식단은 단백질과 야채로만 채웠다. 자연히 가장 맛있는 쿠키를 파는 카페, 베이커리를 섭렵하게 됐고, 그곳으로 사업 차 만나는 사람들을 초대해 맛있는 쿠키를 대접했다. 왜? 누구나 초콜릿 칩 쿠키를 좋아하니까.


어느 날 오웰 덕분에 '인생 쿠키'를 맛본 한 친구가 그의 페이스북에 ‘더 맛있는 초콜릿 칩 쿠키를 찾았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아니다, 최고의 초콜릿 칩 쿠키는 이거다!’라는 간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웰은 “그러면 어떤 초콜릿 칩 쿠키가 가장 맛있는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2016년 18가지 쿠키가 참여한 가운데 지구상(?) 최초의 ‘초콜릿 칩 쿠키 오프(Chocolate Chip Cookie Off)’ 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졌다.      




Strand Bookstore에서 열린 초콜릿 칩 쿠키 대회   


사진 출처 : https://nickgray.net/cookie-contest

이 특이한 행사가 SNS를 타고 널리 알려지자, 이번에는 아예 오웰에게 자기가 만든 초콜릿 칩 쿠키를 먹어봐달라는 사람들이 생겼다. 오웰은 200명 이상에게서 쿠키를 배달 받았다. 쿠키에 자존심을 건 사람들은 오웰이 출장을 가면 그가 묵는 호텔로 쿠키를 보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코 등 오웰이 가는 곳마다 초콜릿 칩 쿠키가 따라다녔다.


이듬해 11월, 오웰은 판을 더 키워버렸다. 토론토 행사와 더불어 북아메리카의 중심, 뉴욕에서도 쿠키 오프를 열기로 한 것. 수익금은 가난한 인도 청소년들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데 쓰기로 했다(오웰은 파키스탄 출신이다). 뉴욕에서 명성 높은 르뱅(Levain Bakery), 쟈크 토레스(Jacques Torres), 마망(Maman)을 포함해 33개 베이커리 및 카페가 출전하기로 했고, 장당 250달러(약 30만 원)인 티켓 100장이 모두 팔렸다.


대회 당일, 뉴욕의 유명한 중고서점 스트랜드(Strand Book Store)로 사람들과 초콜릿 칩 쿠키가 한가득 모였다. 쿠키를 그득 담은 접시가 ‘가문’을 숨긴 채 테이블에 일렬로 놓였고, 사람들은 하나씩 맛보며 가장 맛있는 초콜릿 칩 쿠키에 표를 던졌다.


승자는 누굴까? 요즘 한국에선 ‘르뱅쿠키 스타일’이 유행한다. 뉴욕에서 꼭 맛봐야 하는 디저트로 꼽히는 르뱅 베이커리의 쿠키처럼, 두툼하고 쫀득하고 엄청 달게 쿠키를 굽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르뱅 쿠키는 4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대망의 1위는 ‘컬쳐 에스프레소(Culture Espresso)’라는 카페가 차지했다.     





Voted Best Cookie in NYC!     

38번가에 자리한 Culture Espresso의 첫번째 매장


2020년 9월, Culture Espresso  내부.


“초콜릿 칩 쿠키를 맛보고 싶은데요, 쿠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피는 뭔가요?”

“오트밀 밀크를 넣은 플랫 화이트를 추천해요. 그보다 진한 커피를 원한다면 코르타도(Cortado)가 좋고요.”     


6번 애비뉴와 38번가가 만나는 위치에 자리한 컬쳐 에스프레소. 이곳의 초콜릿 칩 쿠키가 얼마나 맛있길래 쿠키 전문 르뱅 베이커리를 이겨먹었는지 궁금해 찾아왔다. 베이커리 쇼케이스에 쿠키는 딱 두 종류, 오트밀 크린베리 쿠키와 초콜릿 칩 쿠키다. 10여 개쯤 쌓여 있는 오트밀 크린베리 쿠키와 달리 초콜릿 칩 쿠키는 딱 4개 남았다. 초콜릿 칩 쿠키 2개와 코르타도와 주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로 실내 영업이 금지됐기 때문에 테이크아웃해 두 블록 위에 있는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에 가서 맛보기로 했다. 내 뒤에 뒤에 줄선 남자가 나머지 2개의 초콜릿 칩 쿠키를 사갔다. 월요일 오후 3시. 영업 종료까지 4시간이나 남은 시각에 초콜릿 칩 쿠키가 완판됐다.


브라이언트 파크
초콜릿 칩 쿠키와 카페 코르타도


쿠키 반쪽이 에어팟 프로보다 크다.
르뱅 베이커리 쿠키


뉴욕 공립도서관의 뒤태가 바라보이는 브라이언트 파크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봉지에서 초콜릿 칩 쿠키를 꺼냈다. 생김새는 투박하다. 내 손바닥보다 큰 사이즈에 두께는 꽤 두툼한데, 패션엔 관심 없는 남자처럼 좀 찌그러진 동그라미 모양이다. 쿠키를 쪼개 입으로 가져갔다. 다크한 초콜릿이 입안에 싸악 퍼졌다. 버터나 밀가루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초콜릿의 씁쓰름하면서 달콤한 맛이 주를 이뤘다. 2주 전 처음 맛본 르뱅의 초콜릿 쿠키보다는 덜 쫀득했다.


르뱅 베이커리냐, 컬쳐 에스프레소냐. 어디 쿠키가 더 맛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둘 다 맛있다”다. ‘촉촉한 초코칩 쿠키’를 좋아하지만 '칙촉'도 맛있게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 아니, 맛없는 초콜릿 칩 쿠키가 세상에 있기나 할까. 솔 오웰이 주최한 쿠키 오프 행사도 가만 생각해보면 웃기다. 초콜릿 칩 쿠키를 두어 개만 먹어도 입안이 초콜릿과 설탕으로 얼얼해져 개별 쿠키의 맛을 구별해내는 게 가당치 않으니까. 오웰도 “진짜 우열을 가려서 마케팅에 활용하자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재미로 하는 행사”라고 강조했다.  


쿠키 다음에 코르타도 한 모금을 얼른 마셨다. 아주 약한 신맛이 나는 진한 커피였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고, 맨해튼의 높은 빌딩들은 반짝이고…. 쿠키 한 조각, 커피 한 모금을 번갈아 하다 보니 오후의 피곤함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차려서 먹고 치우고 아이들 공부시키고 공원 나가 운동한 뒤 점심 차려서 먹고 치우고, 연필 크레파스 공책 폴더 가위 연필깎이 포스트잇 등 아이들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학용품을 스테이플(Staples)에서 한아름 사서 나온 길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작은 아이 데리고 축구 수업에 갔다가 간단한 장을 보고 저녁밥을 해야 하기에 오후의 디저트는 아주 중요한 연료다.


코르타도는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1대1로 섞은 음료다. 우유 거품을 올리는 플랫 화이트보다 양이 적다. 때문에 쿠키 반 개를 먹는 동안 커피를 다 마셨다. 당(糖)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남편이랑 애들 갖다 줘야지.       

  



쉐프 출신 창업주,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초콜릿"


사진 출처 : https://www.cultureespresso.com/


뉴욕의 커피, 특히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는 소호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소호가 뉴욕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동네여서 그런 거라고 짐작한다. 소호에서 첫 매장을 내 성공하면 2호점, 3호점으로 확장해나가는데, 월가나 첼시, 어퍼웨스트 쪽으로 가지 타임스퀘어가 있는 미드타운으로는 잘 진출하지 않는 듯하다.


때문에 커피 불모지(?) 미드타운에서 컬쳐 에스프레소는 귀한 장소로 대접을 받는다. 2009년 38번가에 첫 매장을 낸 이후 10년 넘게 인근 직장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현재 매장을 3개까지 늘렸는데, 2호점과 3호점도 1호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36번가와 39번가에 위치한다. ‘미드타운 커피’로서의 의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컬쳐 에스프레소는 커피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지 않고 외부 업체로부터 공급 받는다. 스텀프타운(Stumptown), 피츠(Peet's), 조(Joe) 등의 원두를 고루 검토하다 하트 로스터(Heart Roasters) 원두에 정착했다. 하트 로스터는 스텀프타운과 마찬가지로 오레곤주(州) 포틀랜드에 근거지를 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컬쳐 에스프레소가 커피숍임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칩 쿠키가 유명한 것은 공동 창업자이자 현재 소유주 조디 로카시오(Jody Locascio)가 뉴욕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한 쉐프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호주 출신의 커피 사업가 아담 크레이그와 컬쳐 에스프레소를 창업했을 때부터 갓 구운 초콜릿 칩 쿠키를 커피와 함께 팔았다. 로카시오에 따르면 컬쳐 에스프레소는 고지방 무염 유럽 스타일 버터를 사용하고, 반죽을 하루 냉장해놨다가 쿠키를 굽는다. 그래야 쿠키가 좀더 두꺼우면서도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로카시오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초콜릿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컬쳐 에스프레소는 다크 초콜릿을 사용한다고 한다.    


 


사랑받는 것을 꾸준하게 유지한다면

   

사진 출처 : https://www.cultureespresso.com/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열린 카디오 댄스 수업트


지난 3월 코로나19가 뉴욕을 강타하자 컬쳐 에스프레소도 다른 카페들과 마찬가지로 문을 닫아야 했다. 컬쳐 에스프레소 매장은 널찍하지 않다. 몇 개의 테이블과 스탠딩 바가 비치돼 있는 조밀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커피를 마셨다. 뉴요커들은 이러한 컬쳐 에스프레소를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좋은 커피와 맛있는 쿠키를 맛볼 수 있는 멋진 곳이라고 평가해왔다.


하지만 지난 6월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실내 영업 금지 방침에 따라 실내 좌석을 모두 없앴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내가 머무는 잠깐 동안에도 대여섯 명의 사람이 커피나 쿠키를 테이크아웃 하러 왔을 정도로 손님이 꾸준한 편이었지만,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는 텅 비어 있어서 왠지 쓸쓸했다. 로카시오는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경영 압박으로 22명의 직원 중 절반을 내보냈다고 밝혔다.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커피와 쿠키를 먹으며 친구 서너 명과 카페에 앉아 열심히 수다 떨던 수많은 추억을 되새김해봤다. 팬데믹 시대에 카페 타임은 더는 가능하지 않은 일상이 됐나 하며 울적해지려는데, 신나는 비트의 음악이 쿵쾅쿵쾅 들려왔다. 한 피트니스센터가 공원 광장에서 카디오 댄스 야외수업을 개시하는 소리였다. 강사의 파워풀한 율동에 맞춰 몇 명의 수강생이 가열차게 몸을 흔들어댔다.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영업이라도 가능한 카페, 식당과 달리 운동 시설은 여전히 영업이 전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다’며 요즘 뉴욕의 공원, 광장, 골목, 심지어 부둣가에서도 각종 야외수업이 열리고 있다. 둠칫둠칫 보고만 있어도 흥이 나는 카디오 댄스 음악에 나를 포함한 구경꾼들은 어깨를 들썩였다.


마지막 커피 방울을 탈탈 털어 삼키며 ‘어떤 조건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게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내에서든, 야외에서든, 테이크아웃이든, 배달이든 사람들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꾸준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따뜻한 카페'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에 계속 있어줄 수 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며 이날 밤 작은 아이와 함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야외 수업을 하던 피트니스 센터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신나게 힙합 댄스를 췄다. 초콜릿 칩 쿠키를 먹은 날이니까.




참고 자료 1

참고자료 2

참고자료 3

참고자료 4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를 떠난 뒤에도  카페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