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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Oct 05. 2020

덤보 인생사진은 브루클린 커피와 함께

브루클린의, 브루클린을 위한, 브루클린에 의한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

“아무 거나 좋으니 라거(Larger)로 사다 달라”는 남편 부탁을 받고 동네마트 맥주 코너를 탐색했다. 갈색 병의 초록색 패키지에 ‘라거’라고 확실하게 쓰인 맥주가 있길래 6병 들이를 사왔다. 저녁식사 때 맥주를 마셔본 남편이 말했다. “‘브루클린’ 이름 붙은 거는 다 맛있는 거 같아.” 그제야 눈여겨보니 내가 사온 맥주는 ‘브루클린 라거’이고, 그 유명한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 제품이었다. 알코올에 약하고 술맛을 잘 모르는 나도 이 맥주를 맛있게 마셨다. 쓴맛 없는 청량한 맥주였는데, 제주맥주와 닮았다고 느꼈다. 잘 알려졌다시피 제주맥주의 ‘제주 위트 에일’은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합작해 출시한 제품이다.


브루클린 브루어리(출처 : https://brooklynbrewery.com/)와 브루클린 라거


브루클린에는 브루클린 브루어리 말고,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Brooklyn Roasting Company)라는 곳도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맥주 아닌 커피 회사의 이름이다. 2009년 짐 먼슨(Jim Munson)이란 사람이 세운 브랜드인데, 그는 다름 아닌 브루클린 브루어리 출신이다. 브루클린 브루어리에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다. 이후 7년간 달리스 브로 커피(Dallis Bros Coffee)의 부사장을 지냈다고 하니, 먼슨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착실하게 현장 경험과 경영 수업을 쌓은 치밀한 인물이라 하겠다.    




이토록 크레마가 두툼한 아메리카노라니!

 


브루클린 덤보로 미국 최대 무료 사진 전시회 ‘포토빌(Photoville) 페스티벌’을 보러 간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한 시간 가량 야외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러 다녔더니 몸이 얼얼해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해졌다. 미리 점 찍어놓은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의 카페를 찾아 얼른 들어갔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손님은 적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 다음으로 내 차례가 왔다 주문하고 5분 정도 기다리자 내가 주문한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커피 컵을 받아든 순간 나는 ‘우와’ 하고 감탄했다. 진한 캐러멜색 크레마가 두툼하게 올려진, 보기 드문 아메리카노였다. 크레마가 사라지기 전에 맛보고 싶어서 컵 뚜껑 챙기러 간 서비스테이블에서 과감하게(?) 마스크를 내리고 한 입 홀짝 마셨다. 초콜릿 향과 과일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커피였다. 블루보틀 커피처럼 깔끔하면서도 깊이감이 있었다. 바리스타에게 다시 가서 물었다.

     

“이 커피 원두가 뭔가요?”

“아이리스 에스프레소라고, 저희 카페의 시그니쳐 원두예요. 맘에 들어요?”

“너무 좋아요! 원두 사갈게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판매용으로 비치된 아이리스 에스프레소가 없었고, 바리스타는 미안해하며 모레쯤 오면 있을 거라고 했다. 아이리스 에스프레소는 그윽한 페루 원두와 스모키한 수마트라 원두, 그리고 달콤한 블루베리 향미가 나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각각 볶은 뒤 섞은 것으로 독특한 커피 맛을 낸다는 게 이 커피숍의 설명. 아이리스는 창업자 짐 먼슨의 딸 이름이라고 한다.


      


커피 마시며 맨해튼 브릿지 감상하기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는 2009년 브루클린 덤보 지역에서 사업을 개시했다. 현재 브루클린과 맨해튼에서 9개 매장을 운영한다(2018년 기준). 본사 격인 로스팅 하우스는 이곳, 덤보 지역의 제이(Jay) 스트리트 25번지에 있는데, 해당 건물은 브루클린 커피 산업을 상징한다. 아버클 커피(Arbuckle Coffee)가 세우고 사용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짐 먼슨이 애초에 덤보에서 사업을 하기로 맘먹은 것도 이 일대가 미국 커피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인들이 커피숍과 각 가정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 데는 브루클린 커피가 기여한 바가 크다. 1881년 펜실베니아 출신 존 아버클과 찰리 아버클 형제가 브루클린으로 이주해 아버클 커피를 세웠다. 이 형제는 브루클린에서 커피를 볶고 분쇄해 1파운드(약 450g)짜리 작은 패키지로 포장하는 기계를 개발했다. 그 전까지 커피는 볶지 않은 초록색 열매 상태로 유통됐고, 따라서 쉽게 상하곤 했다.


아버클 커피는 균질한 품질을 오래 유지하는 작은 원두 패키지를 미 전역으로 유통시키면서 크게 성장했다. 그에 맞춰 덤보의 이스트 강변을 따라 공장, 창고 등을 속속 세워나갔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가 사용하는 건물도 그 중 하나다. 최근 재생을 거쳐 쇼핑몰로 재탄생한 엠파이어 스토어(Empire Store)도 알버클 커피가 원두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알버클 커피는 1930년대 후반 알버클 가문에 의해 해체됐다가 1974년 아리조나주(州)에서 팻·데니스 윌리스 부부에 의해 재탄생해 현재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찾아간 곳은 로스팅 하우스는 아니고, 그와 가까운 워싱턴 스트리트에 위치한 매장이었다. 여행자라면 여기서 이 브루클린 커피를 마셔보는 게 좋겠다. 왜냐면 뉴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맨해튼 브릿지 샷’을 찍는 스팟과 지척이기 때문이다.


덤보(DUMBO)는 ‘맨해튼 브릿지 아래 동네'(Down Under Manhattan Bridge Overpass)란 뜻이고, 여행자들은 이 동네의 프런트 스트리트와 워싱턴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혹은 무한도전 화보를 따라 인생사진을 찍는다. 붉은 벽돌의 양쪽 건물 사이로 맨해튼 브릿지가 보이는 바로 그 사진 말이다.


이 인생사진이 나오는 교차로에서 맨해튼 브릿지 쪽으로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 카페가 있다. 카페 출입구에서 뒤로 맨해튼 브릿지가 보이기 때문에, 교차로의 인파를 피해 사진 찍기에도 좋다.   


  



만화책과 수영모자 파는 커피숍     


https://brooklynroasting.com/

뉴욕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라면 으레 그렇듯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도 유기농 원두, 공정 무역, 친환경 소비, 사회적 참여 등을 주요 가치로 삼는다. 커피 원두를 제 값에 사오고,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동참하고, 대선 투표 참여를 북돋는 활동만으로는 차별화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도 이 점을 잘 아는 걸까. 이 브랜드는 여기에 더해 ‘재미’를 추구한다. 머그잔이나 에코백 굿즈를 만들어 파는 카페는 흔하지만 만화책을 펴낸 카페는 처음 봤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는 전문 만화가에게 맡겨 커피의 기원,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내리는 법 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두 권의 코믹북을 5달러에 판다. 굿즈 중에는 강렬한 빨강, 파랑, 노란 색의 긴 양말도 있고, 정말 뜬금없이 수영모자도 있다. 투박하고 굵게 쓴 ‘Brooklyn Roasting Company’ 안을 다양한 컬러로 채운 것이 이 커피 회사의 고로인데, 이 경쾌한 로고 디자인 덕분에 매장과 굿즈 분위기도 밝고 다채롭다. ‘브루클린처럼 대담하고 용감하고 다채롭고 창의적이고자 한다’는 사업 철학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Our business philosophy is easily summarized: We are serious but not snobby, practical not pretentious, accessible not exclusive. Like Brooklyn, we are bold, brave, colorful and creative. (우리의 사업 철학은 쉽게 요약됩니다. 우리는 진지하지만 속물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지만 가식적이지 않고, 다가가기 쉽지만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브루클린처럼 우리는 대담하고 용감하고 다채롭고 창의적입니다.)   -  https://brooklynroasting.com  



https://brooklynroasting.com/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브루클린’이라는 지명을 브랜드에 사용함으로써 지역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브루클린의 인기를 개척해냈습니다. ‘브루클린’이라는 단어의 잠재력을 깨닫게 해준 거지요. 브루클린이 맥주와 커피, 이 두 가지 훌륭한 음료의 역사에서 역할을 한다는 게 정말 좋습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가 ‘브루클린’이란 이름을 마땅히 사용할 자격이 있듯, 우리 커피도 비슷한 이름을 마땅히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는 브루클린의, 브루클린을 위한, 브루클린에 의한 커피를 지향한다. 짐 먼슨이 한 인터뷰에서 한 위의 말에서 그러한 의지가 충분히 배어난다. 미국 맥주의 부흥을 다시 일으키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브루클린 브루어리처럼(독일 맥주에 제패당하기 전 미국도 꽤 많은 맥주를 생산했고, 브루클린 지역은 미국 내 맥주 생산의 10%를 담당했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 자신이 지역 커피 산업의 부흥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리라. 이렇게 맛있고도 자신만만한 야망을 가진 동네 커피가 있는 브루클린이 부러웠다.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

참고자료 3

참고자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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