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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Sep 12. 2020

카페를 떠난 뒤에도  카페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려면

<뉴욕 커피 도장 깨기> ① 버치 커피(Birch Coffee)

[birchcoffee.com]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주인공들이 즐겨 가던 커피숍 이름은? 이 드라마를 몇 번 본 적 있다면 정답으로 ‘센트럴 크’ 커피숍을 고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버치 커피(Birch Coffee)’라는 엉뚱한 답을 내놨다. 프렌즈가 종영된 지 한참 후에 뉴욕에 등장한 버치 커피의 공동 창업자 제레미 라이먼(Jeremy Lyman)은 지난 3월 이 장면을 캡처한 이미지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면서 “최소 한 명은 버치 커피가 프렌즈에 나왔다고 생각하네요”라며 감격(?)했다.


버치 커피는 뉴욕 기반의 소규모 커피 브랜드다. 라이먼과 폴 슈레이더(Paul Schlader)가 2009년 매디슨 스퀘어 파크와 가까운 27번가에 첫 매장을 열면서 사업을 개시했다. 이후 4년 만에 3개 매장을 추가로 오픈하며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7개 매장을 운영하던 2016년 기업가치가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됐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는 기업가치가 2000만 달러가 훌쩍 넘는, ‘작지 않은’ 사업체로 성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버치 커피는 현재 뉴욕에서만 14개 매장을 운영한다. 12개 매장은 맨해튼 곳곳에 산재하며, 나머지 2개는 라구아디아 공항과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다. 롱아일랜드시티 매장은 로스팅 하우스(Roasting House) 겸 커피숍으로 규모가 100평 이상으로 널찍하다. 버치 커피는 여러 레스토랑과 커피숍에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공급하고도 있다. 최근에는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홀푸즈마켓에 입점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이것은 라테인가 캐러멜 마키아또인가

2020년 9월 초순 어퍼 이스트사이드 버치 커피. taken by jeenam.kang

맨해튼의 12개 매장은 맨 아래 월가에서 위쪽의 할렘까지 골고루 산재하기 때문에 한 잔의 버치 커피를 마셔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서류를 발급받으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가는 길에 어퍼 이스트 사이드 매장에 들렀다. 렉싱턴 애비뉴, 62번가에 위치해 총영사관과의 거리가 550m에 불과하다.


9월 초순의 뉴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6개월째 실내 영업이 금지된 상태. 이곳 매장은 대여섯 명의 손님만으로도 꽉 찰 정도로 아담해서 실내 영업 금지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예전엔 길가로 난 창가에 몇몇 좌석을 놓았던 것 같은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예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활짝 개방한 창문에 카운터를 마련해놓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줬다.



 버치커피의 아이스라테, 원두 설명 메뉴판. taken by jeenam.kang


아이스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카운터와 마주 본 위치에 벤치 하나가 놓여 있다. 거기 앉고 보니 버치 커피의 옆집은 당일 드라이클리닝이 가능한 이씨네 세탁소(Lee’s Cleaners). ‘한국 사람이 하는 가게인가 보다’ 하며 아이스라테를 쪽 빨아 마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차가운 커피와 우유 사이에서 캐러멜 향이 확 났다가 몇 초 후 사라졌다. ‘이것이 책에서 읽은, 커피의 캐러멜 향미라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두어 번 더 마셔본 뒤 ‘아냐, 캐러멜 마키아또처럼 캐러멜 시럽을 첨가한 것일 수 있어. 그런데 캐러멜 시럽을 넣어주는 아이스 라테가 세상에 있던가? 캐러멜 마키아또도 아닌데?’ 하며 헷갈려했다.


어쨌든 무척 맛있었다. 잠깐의 캐러멜 향이 차가운 우유와 잘 어울렸고, 커피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고소했다. 평일 오후 2시, 그렇게 길거리 벤치에 앉아 아이스 라테를 마시는 10분 동안 대여섯 명의 손님이 버치 커피를 찾아와 커피 한 잔씩 받아 들고 어디론가 떠났다. 나도 이제 가던 길 마저 가야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얼음만 남은 빈 컵을 버치 커피 직원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저기요, 혹시 커피 안에 캐러멜 시럽을 넣은 건가요?”


“전혀요(Never). 커피에서 나는 스윗(sweet)한 향이에요.”


직원은 활짝 웃으며 아이스 라테에 사용된 원두가 ‘엠마의 에스프레소(Emma’s Espresso)’라고 알려줬다. 메뉴 설명에 따르면 이는 두 가지 이상의 원두를 섞은 블렌드(blend) 커피로, 다크 체리와 초콜릿 향 그리고 약한 신맛을 가진다고 한다. 커피의 향미는 워낙 복잡하고 미묘해 같은 커피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내가 느끼기엔 분명 캐러멜 향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거든 두 시간 일찍 일어나라

버치커피 공동창업자 폴 슈레이더(왼쪽 )와 제레미 라이먼. [nytimes.com]
‘항상 진화하며 절대 안주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에스프레소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퓨어 샷(pure shot)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 그리고 우유 첨가는 오로지 경험을 향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가 들어간 음료는 유쾌하고, 부드럽고, 매끈해야 합니다.’


버치 커피가 홈페이지에 ‘우리의 생각(Our Thought)’이라며 밝힌 커피에 관한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을 기치로 하여 2009년 당시 갓 30대가 된 혈기왕성한 두 남자가 세운 버치 커피는 어느 도시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뉴욕에서 지난 10년간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 비결이 커피 본연의 맛에만 있는 것 같진 않다. 이 두 남자가 2016년 경제전문 방송 CNBC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사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역시 깊어 보인다. 주요 내용을 간추려본다.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진 않도록 노력하라.
사업을 어떻게 성장시킬지를 고민해야지, 무사히 임대료 내는 데만 몰두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같은 부동산 중개인과 일했다. 관계는 발전했고, 그는 우리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새로 시작한 사업에 흥분하면 길 잃기 쉽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한 친구와 함께 저녁 먹은 지 한참 됐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라.
(이건 비밀인데) 하루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거든 두어 시간 일찍 일어나라.
직원이 아프다고 하면 일의 질(quality)을 생각하라.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업을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많은 이들이 사업하는 것의 두려움을 얘기할 것이다. 사업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해라. 다른 이들의 두려움이 당신의 시작에 영향을 끼치게 두지 말라.
채용 인터뷰를 할 땐 지원자의 눈을 마주치고 보디랭귀지와 전반적인 성격에 집중하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과 일하는 게 좋다. 경력은 도움된다. 하지만 핵심은 성격(personality)이다.
의사소통이 부족하면 사업은 망한다. 분함이 쌓이도록 놔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비건설적인 방식으로 분출되고 만다.
창의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가게를 떠난 뒤에도 당신에 대해 계속 얘기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라.



  

어떤 슈퍼 히어로를 좋아하세요?

버치 커피의 대화 카드, 'The Ignition Initiative'. [Google]

“회사 관두고 작은 카페 하나 운영하고 싶어”라고 하면 누구나 묻는다.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할 건데?”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임대료 감당’ 이슈가 아니라 사업을 발전시키는 방법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버치 커피 남자들은 명쾌하게 말한다. 시간 없다고 징징대지 말고 2시간 일찍 일어나라든가, 사업에만 몰두하지 말고 친구도 만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는 말도 작지만 큰 조언이다.


이러한 사업의 원칙 중 버치 커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맨 마지막, 창의성의 발현에 있지 않을까. 버치 커피는 ‘와이파이 없는 카페’ 흐름의 선두에 선 커피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노트북이 장악한 카페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대화하는 공간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버치 커피는 2016년부터 매장 내 와이파이를 없앴다. 그런데 주변의 염려와 달리 매출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늘었다. 윌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같은 미국 주력 언론이 버치 커피를 ‘와이파이 없앤 커피 브랜드’의 대표 사례로 언급, 버치 커피로서는 막대한 마케팅 효과도 거뒀다.


한발 더 나아가 버치 커피는 매장에 ‘진취적 점화(The Ignition Initiative)’라고 명명한 대화 카드를 비치했다. 손님이 ‘인생을 바꾼 책 한 권’, ‘내일 아침 투명인간이 된다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 건가요’ 등 대화 주제를 제시하는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해당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 다른 손님이 합석해 서로 대화 나누도록 한 것이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을까? 직접 낯선 이와의 대화 실험에 나선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는 버치 커피의 한 매장에선 모든 손님으로부터 외면당했지만, 다른 매장으로 자리를 옮겨가서는 배트맨 팬인 한 신사와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한다. 첫 번째 매장에선 '인생을 바꾼 책 한 권'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놨지만, 두 번째 매장에선 라이먼의 조언을 받아들여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한 슈퍼 히어로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카드를 골랐던 게 유효했을까?





홈카페를 즐기세요? 줌에 접속하세요.


[birchcoffee.com]

코로나 시대, ‘대화하는 카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카페 안에 머물지조차 못하니 대화는 언감생심이다. 뉴욕시는 9월 30일부터 실내 영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용 가능 인원의 25%까지만 입장 가능한 데다 낯선 이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기에 버치 커피가 꿈꾼 대화하는 카페의 '재림'은 더는 가능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러한 급작스런 상황 변화를 버치 커피는 또 다른 창의성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 같다. 버치 커피는 최근 ‘Zoom Home Brewing’이라는 언택트, 즉 비대면 상품을 내놨다.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Zoom)을 통해 집에서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매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아직 자세한 안내나 별다른 후기가 없는 걸로 봐선 이 새로운 실험이 호응을 얻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지만,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버치 커피는 응원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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