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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Nov 17. 2020

비혼이었더라면  한밤의 퇴근이 가벼웠을까

비혼주의자들의 뼈 때리는 말에 상념에 빠진 밤

야근을 하고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는 날이면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아침에 잠깐 엄마 얼굴 본 게 전부인 채로 하루를 보내고 잠든 아이들이 안쓰러운 마음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우와, 이제부터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아!' 하며 신나는 마음이었다. 이런 날에는 잠든 아이들 얼굴을 한번씩 쓰다듬어주고 얼른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나만의 술상을 차렸다.


마침 냉장고에 싱싱한 딸기와 맛있는 치즈, 게다가 화이트와인까지 있었다. 보통은 귀찮아서 꺼내지 않는 우드 플레이트를 꺼내 딸기와 치즈를 예쁘게 담고, 평소엔 그냥 유리컵에 따라 마시는 와인을 와인잔에 따랐다. 술상을 들고 어두운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

       

"산이 있다고 꼭 등산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컨베이터 벨트에서 거쳐야 하는 공정 중 하나. '너는 불량품이 아니다'라고 승인해주는 과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무의미하다’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라고 생각해요."


TV에 비혼주의자들이 한 명씩 등장해 ‘뼈 때리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비혼에 대해 다룬 SBS 스페셜 ‘결혼은 사양할게요’ 재방송이었다. 그들 얘기에 맞네, 맞는 말이네, 하며 와인을 홀짝거렸다. 예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이화여대였던가. 유명한 해외 여성인사가 방한 중에 이화여대에서 강연을 하는데, 한 여학생이 손들고 질문을 했다. “저는 결혼하지 않으려고요. 이 자리에 오려고 밤새면서 공부했고, 또 취직하려고 밤샘하며 공부하고 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제가 이룬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들 해요. 그래서 결혼하지 않으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나 대학생 때는 왜 이런 얘기를 아무도 안 해줬지?'




결혼의 유해함

  

‘결혼의 유해함’에 대한 담론이 본격 개시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대학을 다니던 IMF 직후 시절에는 결혼의 유해함이 그리 주요한 사회적 주제가 아니었다. 그 시절엔 취직 대신 결혼을 택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로 ‘취집’이란 단어가 즐겨 거론됐다. 또래 친구들처럼 나도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연애하고, 그리고 '때가 무르익어' 결혼했다. 그리고 1주년 결혼기념일이 되기 전에 임신했는데, 내 주변 기혼 친구들도 대부분 그 정도 속도로 임신하고 출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출산-육아가 앞으로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걱정도 고민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예전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근거 없이 자신했다. 친정엄마가 육아를 도맡아주셔서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복직했다. 남들보다 좋은 조건이었음에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버거웠다. 그제서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관뒀고, 대기업을 나와 프리랜서가 됐고, 아이 맡아줄 친정/시부모 댁 근처로 이사하거나 합가하는 친구들의 사정이 눈에 들어왔다. “돌이켜보니 수학 진도 나가듯 인생 진도를 죽죽 나가서 직장맘에 이르렀더라” 하며 친구들과 종종 자조하는 시기가 되자 비로소 비혼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됐다. 비혼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았었더라면! 괜히 억울했다.

        

“그때는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는 게 당연한 줄 알았죠. 지금은 그렇게 살면 아닌 거 같아요. 딸이 자기 이름 걸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비혼주의 딸을 둔 엄마가 이렇게 말할 때 술기운 때문인지 눈물이 났다. 나 자신이 21세기에 한복저고리 입고 쪽진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물론 (당시까지는)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내 이름’으로 살고 있었지만, 오로지 내 이름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었다. 내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엄마’ 혹은 ‘맘’으로 검색하면 스무 명 이상이 나온다. 그들의 핸드폰에도 나는 ‘누구엄마’라고 저장돼 있겠지.

   

다시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결혼을 택했을까? 결혼은 하더라도 커리어를 위해 아이는 안 낳았을까? 그러면 둘째는? 해봤자 답 없는 생각을 지금도 종종 한다. '답'을 찾고 싶어 애들 몰래 <엄마됨을 후회함>이라는 책도 읽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사회학자가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 엄마들을 연구해 쓴 책인데, 자신이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지 안 하는지는 타임머신을 타고 출산 전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을 것인지 결정해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예스(Yes)면 후회하지 않는 것이고 노(No)라면 엄마됨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로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양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혼 상태로 당차게 자기 커리어와 독립된 자산을 쌓아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종종 내가 이 아름다운 아이들의 엄마인 게 황송하다. 하지만 동시에 애들 낳고 키우느라 포기하거나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꼽자면 너무 많다.





진도 나가듯 사는 건 아니더라

    


그러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한다. 결혼과 출산을 내가 원하는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했더라면 '하고 나서' 번민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길게는 3년, 짧게는 2개월간 열심히 고민해서 퇴사하고 나자, '퇴사했다'는 과거형 동사를 후회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퇴사하고 나서 후회하면 어쩌나’를 가장 걱정했었는데. 그보다는 퇴사 이후의 인생과 생활을 어떻게 꾸며나갈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그에 대해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지만, 퇴사 자체를 후회하진 않는다.

    

결혼을, 그리고 출산을 선택 사항  하나로 여기고 각자가 그 선택에 관해 열심히 생각하는 요즘의 변화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장고(長考) 끝에 비혼을 택하든 결혼을 택하든, 출산을 택하든 딩크를 택하든, 혹은 비혼 출산을 택하든 선택 이후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게 될테니까.


"결혼하지 않은 게 무책임하지 않은 게 아니라,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게 무책임한 거죠."


비혼주의자의 말에 또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도, 출산도 내가 한 일인데 무엇을 탓하며 결정을 의심하면 뭐하랴.


재방송이 끝나자 이 모든 사태의 공범(?)인 남편이 나보다 더한 야근에 찌든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오늘 누굴 만났는데 이걸 주더라" 하며 남편이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그 안에는 휴대용 핸드크림이 들어 있었다. "오, 안 그래도 회사서 쓰는 게 똑 떨어졌는데 잘 됐네" 하며 나는 방긋 웃었다. 핸드크림이든 커피쿠폰이든 뭐든 생기면 와이프 갖다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남편. 같이 나이 들어 가면서 작은 것으로도 서로를 위하는 짝꿍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결혼이란 선택도 썩 괜찮은 거 아닐까 생각했다. 짝꿍이 되는 방법이 꼭 결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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