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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Apr 10.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8 헐렁이 크리스천

                                     (팜플로나에서 시수르 메놀까지-5km)


  나바르 왕국의 수도 팜플로나는 순례 초반에 처음 만나는 대도시이다 보니 보통 순례자들은 도시 관광도 하고 순례 장비를 재정비하면서 장기전을 위해 쉬어 가는 지점이다. 나도 한국인 청년 동행자와 오전 반나절 관광 후 오후에 짧게 다음 지점으로 가기로 했다. 우연히 둘째 날부터 동행하게 된 미스터 최는 모로코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2년여간 선교를 했고, 부산 고향집으로 귀국 전에 산티아고 순례를 하러 왔다고 했다. 원래 지병이 있어서 힘 좋고 빠른 또래 30대들과 동행하기는 좀 무리라서 50대인 나와 페이스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크리스천이라는 공통점으로 또 다른 주제의 대화와 소통을 나눌 수 있었다. 내가 ‘헐렁한’ 크리스천이다 보니 처음 보는 내게 그가 편히 속을 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로코 한국 교회에서 현지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신의 뜻과 의지를 실행해 온 선교자로서 그도 쉼이 필요하고 때론 영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 의심으로 도전을 받는다고 했다. ‘연약한 크리스천이지만, 예수를 따르고 싶은 사람으로서 산티아고 길 위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품고 길 위에 섰다고 했다.


  정신없이 바쁜 도시와 사람들을 떠나 자연에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낮은 자세로 신과 대화하기 위해 걷는 순례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 듣고 싶은 답을 들을 수 있을지......
  

  오늘따라 둘이 마음이 맞아 팜플로나 구도심을 둘러본 후 점심도 먹고 오후엔 버스를 타고 다음 지점으로 가기로 작당을 했다. 이건 순례자로서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스페인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5킬로미터를 전진하기로 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시내버스 1번을 타고 시수르 메놀(Cizur Menor)에 12분 만에 도착했다. 걸었더라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12분 만에 다음 알베르게 앞에 이른 것이었다.


  이른 체크인이라 첫 번째로 침대를 고르는 호사까지 누렸다. 주인 할머니의 바지런한 손길이 느껴지는 정원 한쪽엔 빨래를 할 수 있는 야외 싱크대가 있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손빨래를 했다. 우리 뒤로도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레게 머리를 한 젊은 이스라엘 여성 순례자가 씩씩하게 들어와 마당 테이블에 앉아 식사 후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간식으로 요구르트를 먹다가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그녀는 군 복무 후 1년 동안 세계 여행 중이며 첫 번째 여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여성으로서 군 복무는 어땠는지 늘 전쟁의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위기는 어떤지 무척 궁금했지만 서로 아픈 다리며 발가락, 몸의 부적응 증상들만 늘어놓다가 끝나고 말았다. 아마 길 위에서 또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그 후 길에서 절뚝거리며 가는 그녀를 지나쳐 가기도 했고 몇 번은 같은 숙소에서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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