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H Choi Apr 26.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14 나의 GPS

                (나바레테에서 아소프라까지-22.8km)


  비 소식이 있어 오늘 예정한 아소프라(Azofra)까지 내쳐 걷기로 작정하고 가장 빨리 새벽길을 나섰던 것 같다. 하늘엔 회색 먹구름이 잔뜩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비가 내리긴 내릴 모양이었다. 며칠째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들이 많았다. 구릉과 초지, 계곡, 강을 끼고 걷던 길과 사뭇 달랐다. 도시의 복잡한 소음이나 묵직한 공장 건물이 나타나면 흐르던 생각이 멈추고 길을 잃고 만다. 그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노란 조개별이나 노란 화살표를 찾아야 한다. 산티아고로 안내하는 나의 지상 GPS! 조개는 원래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시체에 붙어 몸을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있는가? 최종 목적지를 가리키는 믿을 만한 가이드가 있다면 중간중간 길을 잃어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시작하면 된다.


  내 인생길, 나의 GPS는 무엇인가? 나를 지켜주는 노란 조개는 무엇인가?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 나는 과연 어떤 상태일까? 내가 800킬로미터를 걸으며 얻고자 했던 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해답이 나올 수 있는 베이스는 만들어질 것 같다. 연이틀 이어지는 들판의 대부분은 포도밭이었다. 용틀임하듯 꾸불텅꾸불텅 솟아오른 어린 포도나무들이 줄지어 기지개 켜듯 만개다. 겨울 굳은 땅을 뚫고 나와 새잎을 피울 봄을 지나 한여름 뙤약볕 아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생명의 꿈을 한바탕 꾸고 있을 게다. 나도 그 타임라인 위 어딘가 중간을 지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 어디에서든 난 포기하지 않고 생존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생명의 가치는 그게 전부다. 자신의 생존 본능을 다하는 것.


  저 어린 포도나무처럼, 올리브나무처럼, 길가에 핀 들꽃처럼.

  노란 조개별이 가리키는 그 방향으로 전진! 전진!










매거진의 이전글 길 위의 안식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