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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May 29. 2018

숲 속의 작은 방-자체 고립 르포르따주 2


 새벽 6시 30분에 울리는 알람을 듣고 깬다. 보통 남편 출근에 맞춰 식사를 준비해주는 것부터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좀 더 바쁘게 손을 놀려 떠날 채비까지 마치고 9시 반 고흥행 고속버스를 타기위해 1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부쩍 더 막히는 남태령사당 구간이 못미더워서 전철로 낙점. 터미날에서 티켓을 구매할 때가 출발 11분 전이었다. 버스시간에 맞추느라 화장실 가기, 편의점에서 물과 휴지 사기, 깜박하고 두고 온 신문도 한 부 사는 것까지 빛의 속도로 완수하고 승차했다. 쫄깃쫄깃하니 가성비 짱짱한 아침 시간!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바쁘다.


 순천을 지나 고흥에 가까워지면서 산세가 달라진다. 멀리 첩첩 산들은 늙은 어미 젖무덤처럼 낮지 않으면서도 완만하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눈이 편안하니 마음도 편안했다.

 

 고속버스 탄 지 4시간 반 만에 고흥 버스터미날에 내려서 군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숨이 턱에 차 숙소에 도착했을 때가 6시 쯤이었으니......자동차로 올 경우 총거리 371킬로미터를 대중교통(고속버스로 375킬로미터+ 농촌버스 두 번 갈아타기 약 20킬로미터 이상)과 도보(4킬로미터)로 오니 10시간 정도 걸렸다. 마지막으로 휴양림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4킬로미터를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와야 했다.


 작년 산티아고순례 후 일년 만에 다시 길에 섰다.

완만한 입구 진입로부터 점차 오르막이 급해지자 헉헉대며 다다른 곳이 팔영산의 반은 올라온 것 같다.

어김없이 혹독한 첫날이다.

 

 급 허기가 져서 남은 밥과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고 창 밖을 보니 초록숲이 눈 앞에 가득하다. 해가 지는 중 산속에 있기는 첨인것 같다. 가늘게 들리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 이름도 모양도 모르는 새소리까지......입으로 먹고 오감으로 풍성해지는 저녁 만찬이다.

 

 오늘 밤엔 별도 총총하지 않을까 고대하며 마당도 거닐어 본다. 산 속이라 추웠다.평일 휴양림 숙소엔 이용자가 나와 다른 한 가족 뿐인 것 같다. 바람에 나무 스치는 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숲 속의 첫날밤이다. 주변에 어떤 사람도 없는 완벽한 고립은 아니지만 집으로부터 4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낯선 곳에서 무엇을 할까 궁리하는 밤이다.

 

 큰올케가 크로아티아 여행선물로 준 카모마일 차를 마시려고 컵을 찾아보니 컵은 없고 밥그릇 국그릇 뿐이다. 결국 밥그릇에 티백을 넣고 숭늉처럼 벌컥벌컥 마시게 되다니.

내가 좋아하는 이승철 노래도 유투브로 감상하고 세계테마여행 프로그램 오만편도 시청했다. 그래도 시간이 넉넉해서 공책을 꺼내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펜을 따라 쓰다보니 한 페이지가 훌쩍 넘었다. 가져 온 책을 엎드려서 읽는데 오래 된 냉장고 모터 소리가 고요한 방에서 제일 시끄러웠다. 결국 이 녀석의 숨통을 뽑아버리고 완벽한 음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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