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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n 03.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27 & 28  발랄하니까 청춘이다.

   (만시야에서 레온까지 18.5km &

         레온에서 비르헨까지 10km)



  평소보다 짧은 거리다. 다시 대도시 레온으로 가는 길은 차들의 소음으로 정신이 흐려진다. 차들이 내뿜는 배기가스에 메스꺼워진다. 도심으로 가까이 갈수록 자연 복원력이 떨어지는지 수질이나 주변 환경오염이 심해 보인다. 인간이 모여들면 어김없이 자연은 훼손되고 파괴된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도 변형, 왜곡되고 서로에게 윈윈이 아닌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 자연의 역습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도심으로 들어와 복잡해진 길 위에선 편안함보다 긴장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더군다나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이국땅에선 더더욱.


  산티아고 순례 전엔 교회 종소리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교회가 많지만 도심에선 종도 없거니와 따라서 종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여기 스페인 몇몇 곳에선 매시 정각마다 교회 종이 울린다. 소리들이 전부 다르다. 저녁 지나 밤에 울리는 종소리가 때론 매우 편안함을 준다. 밤이나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만큼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 지나온 도시 부르고스보다 좀 작은 도시 레온은 성당의 규모도 작다. 그 화려함도 부르고스 성당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멋들어진 고딕 양식의 뾰족 성당은 웅장하고 고급지다. 카르푸에서 산 바게트를 뜯어먹으며 성당을 올려다본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른바 세력가들이 정치와 종교를 권력화해서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 할 때 주로 하는 과시 행위들이 왕국 건설, 기념관 짓기, 성전 건축 등 호화로운 건축물 짓기였다.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짓기 위해 더 높고 더 번쩍이며 화려한 상징물로써 성을 쌓아 올리고 기념비를 세우고, 겸손하고 신성해야 할 교회도 여기서 비껴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신성함은 성전에만 있다는 듯 거만한 우월의식으로 사람들을 기죽이는 교회 앞에서 어린 십 대 남녀가 대담하게 벌이는 애정 행각이 너무나 발랄했다!


발랄하니까 청춘이다!


  아침 8시에 어김없이 퇴실시키는 교회 관리 소속 알베르게에서 나와 레온 성당 주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커다란 배낭이 아니라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순례자에서 관광객으로 변신 놀이하는 날! 이른 아침 출근하고 학교 가는 인파들을 바라보며 난 일찌감치 문 연 카페 안으로 출근한다. 아침 식사로 하몽과 치즈를 패스트리에 넣은 빵과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출근하던 현지인들도 하나 둘 들어와 카페 콘 레체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는 것 같다. 관광 전 허기를 채우는 건 이젠 기본이다. 이제 성당 관광하러 고고씽~.


  아침 첫 햇빛을 한껏 품은 다양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자체의 색채와 영롱한 광채를 높고 깊은 실내로 투사하고 있었다. 성경 이야기가 유리 위에 그림으로 채색되어 돔 천장과 높은 벽 윗부분을 덮고 있다. 몇 백 년 전의 기술과 도구로 어떻게 이렇게 높고 거대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건축물을 지었을까? 신을 경외하고 신의 자비를 구하는 인간의 신실한 마음이 더 높고 더 섬세하고 화려한 성전을 바치고 싶게 했을까? 여전히 놀라울 뿐이다. 아니면 반대로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신의 은총과 천국을 염원하는 마음이었을까.


  하지만 20여 일 넘게 교회와 대성당들을 구경하고(순례자의 본분을 잊은 구경꾼?) 나니 처음만큼 감동이나 호기심이 격하진 않다. 오히려 박제가 되어 박물관에 걸린 동물처럼 구경거리가 된 교회보다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작은 교회가 더욱 신을 느끼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라 하셨는데...... 신을 모신 나의 성전은 어떤 모습인가. 박제? 기도하는 일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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