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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n 01. 2018

숲 속의 작은방-자체 고립 르포르타주 4


 녀석이 왔다!

입에 벌레를 물었는지 가느다란 것이 달랑거린다. 역시나 인증샷은 놓쳤지만 기다림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놓아 둔 쌀 알은 한 두 개 없어지고 여전하다.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밥그릇 커피 마시며 보초 임무 중!


만나기로 한듯 널 기다린다

서로 눈빛 나눈 적도 없이


네가 내게 오고 싶을 때

내가 네게 향해 있을 때


그 두 차원이 교차하는 절묘한 타이밍을 기도하며


바람이 와서 놀아 주고

하늘이 지그시 지켜봐 주는

초록의 고요 속에


아주 작은 부스럭거림에도 몸이 들썩 일어선다


네가 왔나?


 사실 녀석은 몇 번 다녀간 것 같다. 내가 1층 마당을 거닐 때 내 방 2층 발코니 난간을 빙그르 돌아 날아 오르는 걸 봤다.엄청 사려상비형인지도. 심지어 내가 방에서 왔다갔가 할 때도 슬쩍 들여다보기만 하고 사라져버린다. 짧고 가느다란 두 발이 난간 턱에 닿을듯, 착지하는 순간 이륙해버리는 신기방기한 파일럿이다. 짧고 경쾌한 지저귐만 명료하게 남기는 새침떼기. 녀석을 확실히 보려고 방충망까지 열었더니 어느 새 하얀 나방이 날아들었다. 널 기다린 게 아닌데......

기다리는 님은 오지 않고

불청객이 먼저 찾아왔다.


건너편 숲 멀리서 따딱 따딱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다. 딱다구리 같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 읽을 생각으로 숙소를 나와 어제 등산로 입구까지 가게 되고, 찰찰거리는 계곡 물 건너로 또 다른 봉우리(두류봉)로 가는 코스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또 올라가고 있었다. 마시지도 못 할, 걸리적거릴 책을 들고.



내 마음의 시계는

제 멋대로 주기율에 따라


'맘 먹기' 시

'이때'다 분

지금 '바로' 초로

행동개시를 명령한다


때때로 멈추기도 한다


그렇다고 버려 두면

영영 멈추니 주의!!



대숲이다.

일정 간격 마다 마디를 맺고 경계를 지으며 자라는 곧은 나무. 대나무숲에 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참고 참았던 비밀을 속 시원히 발설했다는 전래동화가 갑자기 떠오른다. 내친김에 내 속 사연도 하나 대나무숲에 털어 놓았다.

여의도 국회 보좌관들 사이에도 여의도 대나무숲이라는 익명의 대토로 사이트가 있다. 어쩌다 대나무는 그런 사연들을 봉인하는, 듣고 침묵해야 하는 운명을 얻었을까......억울하고 억울한 사연들이 매듭을 견디지 못하고 사선으로 날세워 죽창이 되었던 운명까지.


 올라갈 거리가 어제 오른 정상 보다 짧다했더니 가팔랐다. 책 때문에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다. 바위 틈에 숨겨두고 내려올 때 다시 가져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조바심날까봐 들고가기로. 산 아래서 "멋지다!" 감탄하던 그 바위 정상이 목을 직각으로 세워야 보이는 턱밑에 도착했다. 다행히 철제 계단이 딱 붙어있다. 역시나 같은 정상이라도 앵글이 달라지니 다도해와 산의 느낌이 다르다. 철제 계단 레일을 나도 모르게 꽉 쥐었으면서도 아래를 보면 다리가 후달거렸다. 나이가 들수록 고소공포증도 따라오는건가.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이 정도 공포감에 살겠다는 본능이 반사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순간순간에 잡념은 끼어들 수가 없다.


극과 극의 대치 순간에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좋음과 싫음도 사랑과 사랑 아닌 것도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선택하기 어려울 때 혼동스러울 때 망설여질 때 우린 정반대를 상상해본다. 극과 극의 대비가 의외로 선택과 행동을 쉽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오늘 따라 팔영산 북동쪽 아래 능가사에서 여덟 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정복하고 올라오는 여성 등산객들이 많다. 1봉,2봉......8봉을 다 오르고 초과달성이라며 쩌렁쩌렁하게 거칠것 없이 웃는다. 그녀들의 순도 100퍼센트 웃음에 나도 함께 하하하으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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