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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n 19.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36  개와 늑대의 시간

  (폰프리아에서 상마메드도카미노까지 22.2km)


  새벽에 흉한 꿈을 꾸고 소리치며 깨서 꺼림칙하던 차에 다른 때보다 일찍 길을 나섰다. 산 위에서 아침 7시는 여전히 별이 밤처럼 빛나는 시간. 오늘은 샛별 대신에 보름달이 존재감을 과시하듯 휘영청 밝다. 반대편 하늘에선 붉은빛이 가늘게 비출 듯 말 듯. 그렇게 달의 배웅을 받으며 아직 캄캄한 길을 걸었다. 언제나 시작할 땐 수십 킬로미터 갈 수 있을 만큼 몸도 발도 가뿐하고 8 또는 9킬로그램 가방도 찰싹 등에 달라붙는 느낌이고 마음도 새롭다.


  ‘개와 늑대의 시간’


  하루에 두 번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새벽녘과 해질녘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길지 않은 그 시간 하늘에 펼쳐지는 빛의 스펙트럼은 최고의 퍼포먼스다. 하늘을 캔버스 삼아 밝음과 어둠이 물감처럼 시시각각 번져들고 퍼져간다. 검고 어두운 바탕에 해는 무지갯빛을 숨겨둔 듯 하나하나 꺼내 보여준다. 검은색은 단색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아침

  어둠의 커튼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해가 오늘의 무대 위로 등장하는

  하루가 깨어나는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이 좋다.


  사실 걷기를 시작하고 처음 두 시간 정도가 컨디션이 가장 좋다. 그래서 이 생각 저 생각 뒤적뒤적하면서 정리하고 나면 새로운 생각들도 문득 튀어나온다. 그 후부터는 발도 살살 아파오고 해도 점점 따가워져서 어느새 다음 마을이 얼마나 남았는지, 점심으로 뭘 먹을까에 생각이 가버린다. 명상도 사색도 배부르고 몸 편안한 상태에서나 할 수 있는 하수다. 진정한 고수들은 빈 속에 더 정신이 맑아지고 불편한 자세로도 높은 경지의 마음을 경험한다는데.


  요즘 다니는 동네는 목축업이 주업인지 길에 소똥들로 푸짐하게 빈대떡 부쳐놓은 곳이 많다. 발끝을 잘 들고 놓지 않으면 영락없이 밟을 판이다. 하지만 보기만 좀 그렇지 녀석들 똥은 풀이 전부다. 너른 들에서 풀만 먹는 초식동물의 똥은 우리 것보다 자연에 가깝다.


  올바르고, 건강한 지도자를 뽑고 싶다면 후보자들의 똥을 검사하면 된다고 김용옥 선생님이 말한 적 있다. 똥은 그 사람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보여주는 몸의 정직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을 돌아보면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할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을 텐데. 소똥, 염소똥, 새똥, 개똥, 말똥까지 흔한 길들을 다니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다.


  우리 국민의 힘으로 일궈낸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후보자들의 자질 공방이 똥 냄새보다 더한 것 같다. 후보자들의 똥을 검증할 방법은 없을까? 순례를 마치고 4월 25일부터 30일 사이에 우리나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 대사관으로 가서 해외 부재자 투표를 할 예정이다.


  파이팅!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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