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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n 22.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37  충전율 88.8%

 (생마메데도카미노에서 포르토마린까지 24.9km)


  스페인 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오전 11시쯤 간단히 빵과 카페 콘 레체, 점심은 오후 2시 30분에 푸짐하게, 저녁은 무려 밤 9시에 먹는 게 일반적이란다. 한 달 살아보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면서부터 해는 오전 8시나 돼야 완전히 뜨고 오후 3시부터 4시가 가장 뜨겁고 밤 9시가 넘어도 밝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생활 패턴도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낮이 길다 보니 골목이나 광장 앞 카페나 바에 저녁 8시가 넘으면 사람들이 슬슬 모여든다. 카페 앞 왁자한 테라스 테이블에 삼삼오오 앉아 타파스를 안주 삼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신다. 스페인 경제 사정이 유럽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할 텐데. 사람들은 나름 여유로워 보이니, 속사정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오늘 이른 아침 걷기 시작해서 습관처럼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다 꽤 큰 도시 사리아(Sarria)를 훅 빠져나오고 말았다. 사리아에 들어서자 순례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져서 길 위에 줄을 서서 갈 정도였다. 이번 토요일, 일요일이 부활절 휴일과 겹쳐서 더욱 많은 사람이 참가하기도 했고, 또한 113킬로미터 기점인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가면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구간이라 평소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100킬로미터 아래로 떨어져서 오늘 머무는 곳에서 불과 89킬로미터 남았다. 프랑스 생장을 기점으로 800킬로미터부터 시작해서 700킬로미터 이상 걸었나 보다. 부쩍 많아진 단기 순례자들을 보니 우쭐한 기분이 들었을까?


  “니들이 700킬로미터 맛을 알아?”


  잰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을 보니 갑자기 베테랑 순례자라도 된 듯 마음에 여유가 생겼나 보다. 눈앞의 풍경들이 한층 더 깊이 느껴지고 발걸음은 가벼워진 느낌이라니.


  내겐 700킬로미터의 거리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믿어주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충전하는데. 그 지나온 길과 길에서 또 하루하루 30일을 넘겨 누가 뭐래도 포용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산티아고를 89킬로미터 앞두고

  아직 충전율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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