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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l 08.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42  다시, 땅 끝 피스테라로

(산티아고)


  아주 느지막한 아침이다.


  길의 끝에서 한 템포 멈추는 느낌으로 수도원 숙소에서 배낭을 챙겨 나와 슬슬 대충 감으로 어제 그 감격의 대성당으로 걸어간다. 아침을 시작하는 도시의 거리 골목마다 출근길, 상품을 부리는 차들, 등굣길로 복작복작하다. 도시의 삶이다. 그래도 확인차 할머니 두 분께 길을 물었더니 아예 데려다주시려나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간다. 골목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갈 때마다 스페인이 한때 참 잘 나가는 세계 강국이었음이 느껴진다. 그들 삶의 구석구석에 과거의 부와 영광이 건물 기둥 받침에, 창문에, 벽에 고스란히 남아 거기에 오줌을 갈겨대는 개까지도 부러울 지경이다. 스페인 할머니는 나를 교회 앞까지 이끌어 주시고 본인 길을 빠르게 가신다. 난 얼른 카페를 찾아 들어왔다. 아침에 한 잔의 커피가 얼마나 완벽한가? 게다가 옌츠가 15분 내에 찾아오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아침이다!


  다시 3주 만에 옌츠를 산티아고에서 만나다! 산티아고 길이 맺어준 덴마크 남자 사람 친구. 여행만이 가능케 하는 자유로운 인간 교류다. 길에서 만난 동료로서 순간순간의 진솔한 마음을 나눈 친구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남녀라서 장애가 되지도 않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 날것 그대로 어떤 기대도 두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관계다. 길 위에서 과장 없이 날것 그대로 일어나는 가장 사적인 감정과 경험을 나누면서도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진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나누고 우린 다시 헤어졌다. 서로 각자의 스케줄대로. 다시 Buen Camino를 속삭여주며 땅끝 가는 길에서 만날 수도, 아닐 수도 인터넷 메신저가 이어 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다시 대성당 앞 광장으로 간다.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단체 관광객들, 개별 순례자들, 일반 여행자들, 상인들, 걸인들까지 인파는 광장으로 모이고 다시 그 끝 골목골목으로 흘러 나간다. 물이나 모래가 흩어지듯. 표정들도 다양하다. 기쁨에 들뜬 이들, 감격과 놀람으로 멍한 이들, 조금은 심드렁한 현지인들, 아무 표정 없이 일하는 사람들까지. 도시의 광장은 나무로 빽빽한 숲처럼 사람들을 모았다 흐트러뜨렸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렇게 나도 그들의 삶 속 어딘가에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시 늦은 오후부터 내일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내일 걸을 코스를 정하고 머물 숙소도 검색해 보고 가방도 다시 정리하면서 내일을 위해 휴식했다.


다시 길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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