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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l 10.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43  인식의 전환, 행동의 변화

(산티아고에서 네그레이라까지 21km)


  푸르스름한 하늘 위로 뾰족이 솟은 산티아고 대성당 세 개의 첨탑이 보인다. 이제 땅끝 피스테라(Fisterra)로 가는 첫날 아침. 산티아고는 순례를 마치고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거나 관광지, 휴식처로 마무리 짓는 종착지라 이곳 숙소 에는 정적뿐 모두 곤히 잠들어 있다.


  산티아고에서 네그레이라(Negeira)까지 21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63세 도쿄 아주머니와 잠깐 동행하게 되었다. 일본에선 기독교인이 마이너인데 그중에서도 그녀는 천주교인이고 벌써 네 번째 카미노라 했다. 역시나 한류 드라마 장금이, 겨울 소나타, 지드래곤 얘기부터 꺼내신다. 또 다른 분은 같은 숙소에서 만난 룸메이트 자크! 살아온 이력이 참 흥미롭다. 나이가 꽤 있어 보였지만 묻지 못했다. 네덜란드, 스웨덴 이번엔 스페인에서 살고있는 자칭 ‘호기심 천국’ 아저씨는 또는 할아버지는 나랑 몇 마디 얘기를 나눠보더니 내 직업을 단박에 맞힌다. 내 얼굴에 어디 선생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하나. 다양한 경력만큼이나 질문도 많았다. 건설업도 해봤고 순례 오기 전엔 20년 동안 스웨덴에서 농장을 했단다. 어릴 적 꿈들을 실현하는 중이라고. 하지만 이번 카미노 걷기는 꿈은 아니었다고 한다. 농장을 그만둔 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일단 걷기 시작했다고. 카미노를 걷는 동안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웹사이트라며 구글로 찾아 보여준 사진들은 아마추어 작품이라 하기엔 너무나 감성 충만한 아티스트의 결과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는 말과 동물들의 근접 사진들, 컴퓨터 그래픽 같은 풍경 사진들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한 장소에서 기다리기도 했단다. 말이나 소에게 밟힐 뻔한 위험한 순간 들을 얘기해 줄 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역시나 호기심 천국 아저씨 질문이 엄청나게 많으시다. 처음 보는 아시안 여자가 신기하기라도 한지 마치 인터뷰하듯 질문하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또 이어지는 질문을 해댄다. 그중 덩치에 맞지 않게 인상적인 질문은 “너희 나라 사람들은 남편이나 애들이 직장이나 학교로 가거나 돌아왔을 때 인사를 어떻게 하냐? 신체적 터치가 있냐?”였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는 존댓말이 있어서 아이가 어른에게 하는 인사말, 친구처럼 친한 사이에 쓰는 인사말이 다르고 꼭 눈을 마주쳐야 하진 않고 비즈니스 관계나 공식적인 소개에서는 악수를 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의 포인트는 엄마와 아이 사이에 또는 남편과 아내 관계에서 허그나 키스 같은 스킨십이 있는지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선 일반적으로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말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 때문에 아이 콘택트(눈 맞춤)나 신체 접촉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게다가 서양인들처럼 볼을 비비거나 가벼운 허그를 하면서 접촉할 수 있는 예법도 아니다. 물론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음, 아이들 궁둥이를 두드리는 경우는 아이가 어릴 때나 있는 일이고.


  그는 의아해하며 가까운 부부 관계나 부모 자식 간에 아무런 신체 접촉 없이 말 인사만 나누면 마음이 느껴지냐며 갸우뚱거렸다.


  흠...... 그런가? 서양인들이 왠지 더 합리적이고 냉정할 것 같은 느낌은 그냥 느낌적 느낌일까?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서구인들이 더욱 살갑게 배려하고 살펴주는 인간적 감성이 살아있는 것 같다. 길을 가다 스쳐가는 낯선 이들에게도 가볍게 웃으 면서 ‘올라! hola(hello: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낯선 이들에게 미소나 인사 한마디,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닌데 습관이 안된 우리에겐 여전히 미션이다. 거기에 더 보태 볼 비비기나 허그, 키스까지?


어떤 인식의 전환이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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