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H Choi Jul 12.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44  향단이 아니고 복단 (Bogdan:a gift from God)

(네그레이라에서 올베이로아까지 33.4km)


  어제 선택한 알베르게는 시내 교차로 바로 앞이라서 밤새 차 소음이 엄청났다. 게다가 엄청난 코골이 자크까지 합세했으니 잠은 몇 시간 잔 듯 만 듯 해가 어서 뜨기만 기다렸다.
  

  걷기 시작점 앞에, 길을 사이에 두고 양편 건물이 끝나는 지점부터 중세식 성벽과 다리(?) 느낌의 건축물에 이르렀다. 그 앞에는 한 가족의 이별 장면을 표현한 동상이 있었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가운데 두고 떠나는 포즈고 문 뒤엔 아이가 그 남자를 따라가려는 모습, 문 뒤로는 엄마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슬픈 얼굴로 앉아 있는 형상인데 사연이나 그 지역 배경지식이 없어 생뚱맞아 보였지만 정서적으론 이해가 팍팍 갔다. 동상을 지나 동네 약수터 가듯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서 점차 산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옛 시골 마을들은 교회와 함께 동네 공동묘지가 나란히 붙어 있다.


  공동묘지를 터부시 하는 우리나라 분위기랑 달리 유럽인들은 생과 사를, 삶의 양면성이자 공존하는 생활의 한 일부로 보는 것 같아 부러웠다. 물론 우리도 시골마을 뒷산에 선산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도시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매장 문화, 죽음을 대하는 태도들이 자본의 논리와 성장제일주의에 저질이 되고 만 것 같다. 확 줄어든 순례자들 덕분에 오롯이 홀로 걷기다.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책 《에밀》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한 뜻을 이제 이해할 것 같다. 산, 숲, 벌판, 강가, 길들을 걸으면서 인간도 역시 광대한 우주라는 유기체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 풀, 새, 벌판, 하늘, 바람이 아무 말 없이 토닥토닥 토닥여주고 가만가만 진정시키며 마침내 안정시켜준다. 진정한 힐링, 치유가 생명을 생명답게 회복시켜주는 어머니의 어머니, 자·연·의 품에서.


  자본의 무차별적 성장 개발주의와 물질주의로 피폐해진 현대인들은 기술과 과학이 제공한 편의와 편리에 중독되어 ‘자연’스러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잊어 가고 있다. 잃어버리거나 전도당한 인간 생명의 자연치유력과 복원력을 끌어올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존과 상생을 위한 최대 전략일 것이다.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성경 구절은 절대적인 하나님을 종교적 ‘신화’로서 지구와 인간 기원에 대한 사람들의 오랜 신념과 상상을 극대화한 것이다. 자연으로서 땅과 물과 공기 없이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이 지구에 존재할 수 있을까? 자연의 극히 일부인 나는 카미노를 걷는 동안 점차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 마음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서서히 충전되고 강해짐을 실감한다.


  순례 시작 후 처음으로 오늘 34킬로미터 이상 걸었다. 40여 일 만에 하루 10 시간 걷기에 성공한 거다. 특별한 변수라면 대화가 잘 통하는 동행과 함께 했기 때문일까? 내 마음의 속말을 나누면서 동시에 함께 공감했기 때문에 땡볕도, 발의 통증과 피곤도 잊고(자각도 못 한 채) 하루 평균 거리를 훌쩍 넘어서는 기록을 세운 것 같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28세 루마니아 남자 사람 복단(Bogdan:a gift from God)과 어느 날 우연히 카미노 길에서 동행하게 된 인연으로 마음과 마음의 공감과 공명을 나누는 짜릿한 경험! 바다를 보고 환호하고 커다란 솔방울을 기념품으로 득템 했다고 가방에 걸고, 예쁜 꽃을 찍겠다고 휴대폰을 들이대고 마침내 강물에 발을 담그는 그의 여유를 덩달아 따라 하고 그제야 나는 내 마음을 알아챘다. 나 에게도 그와 같은 작은 소망들이 숨어 있었고 한 치 머뭇거림 없이 실행하는 그에게 기적 같은 교감을 느낀 것 같다. 3년 전부터 비건(채식주의자)이라는 그는 자연과 더불어 즐길 줄 아는 여유와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 카미노 순례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는 인연이다.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우연이자 예측 불가의 매력이다.



작가의 이전글 Sabbatical Year on the roa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