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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l 16.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45  You are the winner! (내가 졌네요!)

(올베이로아에서 세까지 20km)


  코골이 자크 몇 명을 모아 놓은 듯했던 지난밤. 정말 도미토리 방은 복불복이다. 솔직히 그를 피하려다 완전 망한 거다.


  오늘은 어제 빙 돌아 넘었던 알토드페나(Alto de pena)의 바람개비 풍력발전 기들이 죽 늘어선 꼭대기를 바라보며 올라갔다. 역시 산과 산 사이에 강원도 동강 같은 계곡물이 흐른다. 어제 바다로 오해했던 호수 크기 강줄기의 시원이다. 대서양으로 모여드는 물줄기들.


  어제에 이어 오늘 걷기도 복단과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1시간쯤 지나 그는 피스테라(Fisterra)와 무히아(Muxia)로 나뉘는 길에서 나랑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헤어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가볍게 허그 인사를 하며 ‘Buen Camino’를 외쳐줬다. 그의 가방에 매달린 커다란 솔방울 때문에 솔방울을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날 것 같다.


  또 혼자다. 언제나처럼

바다를 향해 서쪽으로 난 기다란 작은 길은 길쭉하니 뱀이 지나간 모양새다. 길을 간다.


  얼마 가지 않아 길 한편에 벤치라도 되는 양 홈이 쑤욱 파인 커다란 바위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듯 앉아본다. 훗! 바위 의자 놀이로 딱이다. 의자놀이에 정신이 팔려 휴대폰을 두고 오는 사고를 알아채기 전까지는 완벽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되돌아와서 휴대폰을 되찾아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내 혼 빠진 얼굴에 놀란 순례자 몇 명에게 상황을 설명하다 69세 은퇴자 독일인 크리스티안을 만났다. 건설회사에서 CEO로 20 년 이상 일한 뒤 퇴임하고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고 이번이 네 번째라고 했던 것 같다. 설마 나보다 더 오래 걸었겠나 싶은 마음에 어디서부터 며칠째인지 물었다가 깨갱. 세빌리아에서 6주 전부터 걸어오셨다고. 

You are the winner!(당신이 이겼네요!)


  교장선생님 같기도 하고 점잖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차근차근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기도 하고 질문도 하신다. 순례 경험이 여러 번이라 지나는 길에 있는 교회에 얽힌 전설을 차근차근 들려주신다. 산길을 지나 만난 오래된 교회로 데려가시면서 이곳엔 아주 영험한 샘물이 있는데 어느 날 목동이 우유가 잘 안 나오는 소를 데리고 가서 그 샘물을 먹인 뒤부터 우유가 콸콸 잘 나왔고 이 소문을 들은 아기 엄마들도 그 물을 마신 뒤부터 모유가 잘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나. 또 어떤 곳엔 임신에 문제가 있던 여자가 아기를 갖게 되었다는 교회 전설도 있다고. 몇 백 년 전 사람들의 고민과 문제 해결 방식은 동서양이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종교든 기복신앙이 결부되는 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대서양을 향해 가는 길은 점차 높아졌다, 산마루를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가다, 푹 꺼지듯 내려가다,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이상 걸어가고 있었다. 햇볕은 점점 강해지고 쉴 만한 카페도 나타날 듯 나타나지 않았다. 고갯마루를 향해 가다가 갑자기 크리스티안 아저씨가 눈을 감으라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고 눈을 떴다.


OCEAN!!! The Atlantic Ocean!!!(바다다!!! 대서양!!!)


아저씨랑 나는 하이파이브를 격하게 했다. 

드디어 멀리 희미하게 바다가 보였다.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한 바다는 아니었지만 처음 만나는 이방인에게 이런 이벤트를 해준 아저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카미노 길에선 참 자연스러운 일들이다. 바다가 보인다는 건 땅끝이 멀지 않았다는 것. 우리는 축하하는 의미에서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다 가까이로 가는 길은 올라온 산만큼 내려가야 하는 험한 내리막이었다. 발가락들이 짓눌리면서 아우성이었다. 결국, 난 땅끝 도전을 내일로 미루고 항구도시 세(Cee)에서 머물기로 했다. 크리스티안 아저씨는 끝까지 가시기로 하고. 짧은 동행이었지만 깜짝 선물 같은 즐거운 순간을 주신 카미노 아저씨 친구. 감사합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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