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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l 18.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46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끝에서

(세에서 피스테라까지 20km)


  이틀 동안 코골이들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다행히 어젯밤엔 잘 잘 수 있었다. 밤늦게 도착한 또 다른 독일 아저씨가 코골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드디어 땅끝으로 출발! 오늘 아침은 달걀 프라이랑 눌은밥이다. 어제 일찌감치 걷기를 끝낸 덕에 밥도 해 먹고 남은 밥은 누룽지를 만들어 두었다.


  두 개의 곶 사이에 들어앉듯이 위치한 항구 세(Cee)의 산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녁엔 땅끝에서 지는 해를 볼 수 있겠지. 땅끝 피스테라(Fisterra)에 가면 0km 표지석이 있고 좀 더 뒤로 등대가 서 있는 바위에선 순례자들이 거기까지 입고 온 옷이나 물건들을 태운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의 나를 철저하게 버리고 새로운 나로 재탄생하겠다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의식행위다.


  0km를 향해 점점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더욱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에 곧장 닿을 듯 가까워졌다가 다시 산마루로 끌어올렸다가, 그렇게 밀당을 하는 사이에 셰퍼드종의 커다란 개가 나타났다. 누군가 산책시키러 데리고 나온 줄 알았는데 따라오는 사람은 없고 녀석은 혼자서 앞으로 먼저 갔다 다시 되돌아 오기를 반복하며 나타났다.


  벌써 두 달째 못 본 우리 강아지, 동그리가 보고 싶어서 개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쓰다듬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녀석도 사람을 잘 따랐다. 어느샌가 사라져서 가버린 줄 알았는데 다음 루트의 건너편 입구 표석 앞에서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사라지고. 순례길에서 사는 주인 없는 개 인지, 옌츠도 전에 길을 잃었을 때 어디선가 자신을 안내하듯 동행한 개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런 카미노 덕(dog)이 여기에도 나타난 건가? 순례 동행자에 개 한 마리 추가!

우리의 동행을 뒤따르던 순례자가 사진까지 찍었을 줄이야!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온 젊은 여성이 나와 개를 찍었다며 이메일로 사진을 전송해줬다. 가끔 길에서 오며 가며 눈인사 나누고 사진을 서로 찍어 주긴 했었다.


  드디어 대장정의 끝, 땅끝 피스테라(Fisterra town)! 물론 0km 표석까지는 다시 3킬로미터 남겨둔 지점. 정신없이 힘을 몰아 그 끝을 향해 가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웨일스 맨, 처음 보는 사우스 코리안에게 남북문제를 아이스 브레이킹 이슈로 꺼내더니 그 가방을 메고 끝까지 갈 거냐며 자기가 아는 좋은 숙소가 있는데 원하면 데려다주겠다고?? 삐끼? 카미노 동지애? 아무튼, 가방을 내려놓고 가는 건 생각도 못 하다가 ‘유레카’였다. 배낭을 숙소에 내려놓고 가벼워진 몸이 내 몸 같지 않았지만 곧 소풍 모드로 전환!


  바다를 왼쪽에 두고 땅끝으로 전진. 시원한 대서양 바람이 함께하니 더욱 가벼워졌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처럼 모르는 순례자들끼리 ‘Congrats!’를 연발해주었다.


그 힘으로 0km 표석까지! 좀 더 뒤 등대 바위까지! 카미노의 끝에 다다랐다!


그 옛날부터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끝,

바다 앞에서 Fis+terra(the end of earth:땅의 끝)라 명명하고 순례를 멈춘 곳.


그 끝 바위에 앉아 대서양을 한참 바라봤다.

바람이 춥다고 느껴지고 나서도 더 오랫동안.


  여전히 강력한 햇빛이 드넓은 대서양에 부서지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젊은 연인들이 와서 드라마틱한 포즈로 셔터를 누르고 나이 지긋한 부부도 와서 부둥켜안고, 아기를 데리고 온 젊은 아빠, 커다란 가방 메고 서 있는 순례자들까지


여기 땅 끝에선

매일매일

사람들의 바람과 소원이

하늘로 올라가고


순례자들은

서쪽 하늘 끝에서

황홀한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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