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batical Year on the road
(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순례를 마친 후 처음 비가 왔다. 민박 주인은 올해 비가 너무 안 와서 올해 농사 망한다고 걱정들 했는데 다행이라 했다. 보슬보슬 비가 새벽부터 시작됐나 보다.
오늘은 국립 소피아 왕비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아침인데도 관람 객들은 개장 시간 전부터 벌써 길게 줄 서 있었다. 티센 보르네미사, 프라도, 소피아 미술관은 마드리드의 빅 3으로 불린다. 그중 소피아 미술관은 19, 20세기 작품들과 현대작품까지 소장하고 있으며 원래 종합병원이었는데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당연히 피카소의 <게르니카>. 관람 시간, 인원까지 제한하며 관리할 정도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를 거쳐 현대로 오면서 예술가들은 더욱더 진보적이고 개성적이며 파격적인 초현실주의로 넘어간다.
<게르니카> 앞엔 언제나 감상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난 그림보다 관람하는 사람들 뒤로, 사이로,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구경했다. 깊이 생각을 집중하며 공감하려는 듯한 사람, 이미 그림과 얘기 중인 사람, 이 그림이 ‘왜 인 기야?’ 하며 의아해하는 듯한 얼굴, 엄마는 언제 갈 건가에만 관심 있는 어린애까지. 그림 감상만큼이나 재밌는 관전 포인트다.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식과 같다고들 한다. 그만큼 창작의 열정과 노고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카소의 자식 같은 작품 <게르니카>가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과 다른 스타일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캔버스에 도입해서 일까? 그의 강력한 현실참여, 행동하는 예술가에 대한 호응인가?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성, 불합리성, 부조리를 통렬히 비판하는 지식인이자 예술가에게 기존의 스타일로는 폭력에 항거하고 새 시대의 지향과 철학을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게르니카는 예술 속에 숨지 않고 붓을 들어 시대와 함께 공감하고 행동한 아티스트의 실천이다.
초현실주의자 달리는 파격의 파격이다. 현대로 가까이 올수록 그림은 전형성을 벗어나 선과 색만으로도 표현되고 물감을 매개로 그린 오랜 회화의 역사마저 거스르고 재료의 제한마저도 없어진 듯하다. 그의 실험정신은 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 하나만 있는 그림, 형태를 알 수 없는 추상적 도형들, 지지직거리는 티브이를 얼기설기 쌓아 놓은 설치물들은 어떤 기존 형식이나 고정관념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강한 개성들의 외침 같았다.
우리 부모님께서 이런 그림을 보셨다면 분명히 ‘그림도 뭣도 아니다! 요렇게 그려도 되면 개나 소나 다 화가 되겠다’라고 하셨을 거다. 부모님께는 애완용 개를 반려견으로 대하는 것 또한 이해 못 할 세태다. 19대 대선 후보들 사이에 이슈인 성소수자들의 권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개념이다. 예술의 경계,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권위가 희미해져 가고,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높아가는 시대에 인간의 정신과 가치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시대의 최전방에서 리드하는 예술가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오픈 마인드의 자세나마 잃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시된 방에선 사진 찍기가 불허였다.
*미술관 건너편 아토차(Atocha)역
(영화 <닥터 지바고>의 촬영 현장이었고 2003년 스페인 열차 테러가 있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