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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Mar 22.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4 Mission clear!


  생장에서 발카를로스(Valcarlos)를 지나 롱스보(Roncevaux)까지 가는 26.5킬로미터가 첫날 주어진 여정이다. 물론 중간 발카를로스에서 일찍 숙소를 정하고 둘째 날까지 이틀에 걸쳐 완성하는 연륜 있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용기백배한 초보자들은 의욕이 앞서기 마련인가 보다. 하루에 다 마쳐야 할 미션을 수행하듯 멈춤이 없다. 결국, 대장정 중반 이후 숲 중간에서 퍼졌다. 아마 목적지까지 8킬로미터 정도 남았었나 보다.

  사실, 이른 아침 젊은 20대 캐나다 여성 엔리카를 따라나섰다. 나이 든 아줌마와 함께하는 순례길이 혹 불편할까봐 언제든 지나쳐 먼저 가라고 당부했다. 처음 시작부터 정오 전까지 체력과 발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았다. 젊은이를 동행하기로 결정한 뒤 오르락내리락 찻길과 숲길을 번갈아 여기까지 왔는데, 마침내 나는 그녀와 점점 멀어져 갔다. 한길을 가다가 눈앞에서 훌쩍 사라져 버리기가 반복되고 반복되다가, 결국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점심도 먹지 않은 채 강행군이긴 했다. 오전에 두 번 쉬었고 더위랑 햇볕이 점점 강렬해지는 오후에 털썩, 도로변에 주저앉고 말았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더니, 그 꼴이었다. 혼자 한참을 널브러져 있는 동안 차도로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 응원해 주었다. 자전거로 오르막을 힘겹게 페달을 밟아 가는 순례자들도 “부엔 카미노(순례 잘 하세요)”를 외치며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격려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혼자 남았다. 점심거리로 싸온 사과, 토마토, 너트를 몇 개 먹고 다시 힘을 내봤지만 커다란 나무 기둥을 등지고 퍼져버렸다. 새끼발가락 양쪽이 빠질 듯이 아파왔다. 신발을 벗으니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일단 쉬었다. 등을 받쳐준 나무에게 부탁했다. ‘네 기운을 좀 달라고.’
  그렇게 길을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서너 발자국을 가다 멈추었다. 더위와 배낭 무게에 짓눌려 더는 갈 수 없을 만큼 몸이, 가방이 땅으로 나를 자꾸만 끌어당겼다. 가방을 내버리고 싶었다. “왜, 내가 이 개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계속해서 오르막이고 끝도 없어 보이고 뒤따라오는 이도 없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도로로 나가 차라도 세워달라 하고 싶었다. 극한의 상태에 이른 내 몸뚱이가 느껴졌다. 태양은 여름만큼 이미 달궈질 대로 달궈졌고 배낭 때문에 흐르는 땀은 오줌을 누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 안내서를 자주 꺼내 보면서 다음 길 표시를 중얼거리며 갔다.
  육체적 한계를 이 정도로 생생하게 느낀 건 처음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난 속울음을 터트리며 간구했다. 단 한 가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힘을 달라’고. 절실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되돌아갈 순 없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왜? 이 개고생을 사서 하나? 누가 보상하거나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순례 첫날에 순례의 전체를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건 여전히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을까?
  좀 더 자주 쉬고 해지기 전까진 갈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격려하듯 말했다. 물도 거의 바닥을 보였고 힘도, 의지도 방전. 갈림길 앞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버린 곳에 멈췄다. 산티아고 순례길 노란 조개 표시도 보이지 않는 곳, 거기 땅바닥에 나무토막으로 퍼즐 맞추듯 만들어진 나무 화살표가 눈에 띄었다. 눈물이 울컥했다. 감사의 눈물. ‘나를 이끄는 분이시다. 내게 힘주는 분이시다.’ 거의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다리와 몸, 가방까지 끌고 가는 길이 점차 클라이맥스를 넘고 있는 것 같았다. 안내지에 나오는 초록집이 나오길 고대하며 오르고 올랐다. 드디어 마지막 8킬로미터 코스였다. 초록집 앞에서 도로로 나가니 순례길의 노란 조개 표시도 발견했다. 샘물까지 준비하다니...... 그 순간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물도 채웠다.
  여전히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든든한 동행자가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마지막 스퍼트를 냈다. 하지만 극한 상태에서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기어가듯이 올라갔다. 정상에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벗었던 점퍼를 다시 꺼내 입었다. 마지막 1.3킬로미터 내리막. 소똥인지 말똥인지 똥이 길바닥을 온통 뒤덮은 길을 내려갔다. 멀리 중세의 높은 성 같은 육중하면서도 무뚝뚝한 건물 한 귀퉁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오늘의 목적지 롱스보(Roncevaux) 수도원으로 보였다. 몇 백 년을 저리 서 있는 건물, 거기 있어줘서 감사한 마음,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기까지 인도한 그분께 참회와 기쁨의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목적지도 아닌데 다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쓰러질 듯 알베르게 사무실로 들어섰고 소파에 무너지듯 털썩 앉았다.

  오늘의 첫 대장정 완수!
나는 그 보상으로 수도원 옆 레스토랑에서 순례자를 위한 저녁식사를 나에게 선사했다. 프랑스 할아버지, 한국인 셋이 한 테이블에 앉아 짧은 불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순례 첫날의 감격을 나누었다. 생장의 첫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들과 나를 포함한 다섯 명 외에도 한국인 서너 명이 수도원 알베르게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나를 앞서간 20대 캐나다 여성 엔리카는 2시간쯤 전에 도착해서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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