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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Mar 25.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5 & 6 같은 길 다른 속도

(론세바스에서 수비리까지 21.7km)


  첫날 너무나 무리한 바람에 남은 여정에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나만 그런 지옥을 헤쳐 나온 건 아니었나 보다. 나와 같은 처지의 한국인 포기자가 있었다. 30대 젊은 청년과 죽이 맞아 수용소 같은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하루 더 묵을 수 있는지 알아봤더니 체크아웃 시간에 일단 나갔다가 다시 하루 더 체크인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각국에서 모인 수십 명의 순례자는 모두 일사불란하게 판초를 입고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더 일찍 서둘러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하루 더 묵겠다는 두 명의 한국인에게 바욘에서 만난 나이 든 아저씨는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부터 뒤처지면 다음 여정을 어찌 가겠냐며 죽어도 길을 나서야 한다고 걱정과 힐난이 섞인 한국인 특유의 훈수를 두었다. 나는 서두를 필요도 없고 무리할 필요도 없었기에 귓등으로 흘리고 나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느긋하게 짐을 챙겼다. 어쨌거나 숙소를 나와야 했다. 빗속으로 뚜벅뚜벅 길을 재촉하는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수도원 마당과 교회를 어슬렁거렸다. 

  

  순례 시작 첫날 동행자들을 떠나보내고 30대 총각과 나는 우연히 새로운 동행이 됐다. 어차피 산 아래 수도원이라 갈 만한 곳도 마땅히 없었고 시간을 죽이며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기보다 다음 지점으로 천천히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7킬로미터 정도 짧게 간 뒤 동화 속 마을 같은 에스피날에서 숙소를 정하고 오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수십 명의 남녀 순례자가 이층 침대에 다닥다닥 붙어 난민 수용소 같던 전날의 알베르게에 비하면 오늘 잡은 숙소는 럭셔리한 호텔급이었다. 천장 유리창으로 하늘이 보이고 싱글 침대가 띄엄띄엄 널찍하게 자리 잡은 방에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터졌다. 오후 들어 비바람이 거세져 숙소 주변 작은 식료품점에 다녀오는데도 다 젖었다. 아침 빗속에 길을 나선 다른 순례자들 생각도 잠시,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를 이국에서 오롯이 혼자 아무런 방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밤새 내리고도 여전히 그칠 줄 몰랐다. 부슬거리다, 후드득거리다, 바람에 휘날리다, 다양한 모습으로 내렸다. 아침으로 달걀 프라이 두 개, 오렌지 주스를 감사히 먹은 뒤라 출정 충전 완료~ 지난밤 사이 유리천장으로 음악보다 감미롭게 떨어지던 그 빗속으로 전진!


  가방은 커버로 덮고 판초로 몸 전체를 한 번 더 감쌌다. 몸 위로 타닥타닥 빗방울들이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부딪치고 얼굴에도 살짝살짝 장난치듯 스쳐 지나갔다. 건물 안에서 구경하는 비와 5시간 이상을 걸으며 맞는 비는 달랐다. 아직은 아침이라 어깨에 멘 가방 무게도 짊어질 만했다. 양들도 비를 맞으며 초지에 있고 나무들도 새들도 꽃들도 집들도 빗속에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판초를 두르고 비 내리는 길을 걸었다.


  양옆으로 동화 속 님프들과 공주, 왕자 주인공들이 살 것만 같은 숲이 울창했다. 전나무 숲에 몸통이 흰 껍질로 덮인 나무들이, 아직 초록 잎이 되기도 전 작은 싹이 조롱조롱 달린 키 작은 덤불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꿀꺽꿀꺽 어서어서 흠뻑 마시고 봄으로 피어나렴.” 속삭여주었다. 아직 오르막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아마 곧 오르막이 나타나고 힘의 한계, 인내심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상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 첫날 생장에서 롱스보까지 26.5킬로미터 대장정을 마쳤다. 아침 7시 15분에 출발해서 오후 5시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여정이었다. 여름 같은 햇볕과 더위에 지치고 내 페이스를 몰라 쉬는 타임을 놓치고 길을 몰라 헤매고 길이 험하고 높아 체력의 한계치 바닥까지 갔었다. 몸과 가방을 끌다시피, 기어가다시피 다섯 걸음 가고 쉬고 세 걸음 가고 멈추고. 그렇게 첫날 해발 1400미터 정상까지 올랐다. 내 힘으로 도저히 갈 수 없는 여정이었다. 감사의 기도가 절로 순전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산티아고의 순례길이라는 것을 새겨두라는 메시지 같았다. 


  오늘은 셋째 날!

빗속 여정이었다. 비바람은 아니지만 이틀째 내린 비로 길은 진창이고 돌길은 미끄럽기도 해서 새끼발가락이 두드려 맞은 듯 점점 더 아파왔다. 함께 시작한 동행도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지고 길을 갈수록 내 앞으로 치고 지나는 순례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오늘은 한국인들을 가장 많이 만난 날인 것 같다. 심지어 인덕원에 산다는 호리호리한 청년은 판초 자락을 휘날리며 산사나이같이 휘휘 날듯이 걸어 지나쳤다.

15.3킬로미터 거리의 세 번째 목적지 도시 수비리(Zubiri)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Zubiri!!!  후레이(만세)!!!  수비리!!!


  아침 8시 30분쯤 출발해서 오후 2시가 가까워져 오늘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도시로 들어서는 다리가 범상치 않다 했더니 전설이 있는 다리였다. 아르가강에 놓인 라비아 다리인데 예부터 공수병(광견병을 달리 이르는 말 또는 물을 무서워하는 병)에 걸린 동물을 데리고 가운데 아치 주위를 세 번 돌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했다.


  지친 발가락을 끌며 숙소에 도착해서 인증 스탬프를 찍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늦은 점심은 근처 바에서 11유로짜리 순례자용 메뉴를 시켰는데 리소토가 먼저 푸짐하게 나와서 싹싹 비웠더니 두 번째 코스라며 감자튀김과 미트볼을 또 한 접시 가득 주었다. 이미 배는 가득 찼지만 저녁까지 먹는다 생각하고 시도해봤지만,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싸 달라 했더니 흔쾌히 포장해주었다. 숙소 근처 자그마한 구멍가게에서 달걀 6개를 샀다. 숙소에서 삶아 다음 날 점심으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헉, 여긴 가스레인지가 없고 전자레인지만 있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와인을 나누던 다른 순례자들이 한 마디씩 팁을 주었다. 그들의 충고를 따라 두 개는 달걀찜처럼 해 먹고 4개는 숙소 매니저가 퇴근한 뒤 전기 물주전자에 바글바글 끓이기를 서너 차례 반복해 삶았다. 잘 익은 반숙이면 딱인데, 실은, 가열 조리기가 없는 숙소에서 전기 물주전자에 달걀 삶기는 내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주방에서 와인과 차를 마시던 외국인 순례자들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입단속했지만 은근 걱정이 됐다. ‘어글리 코리안’에 한 줄 올릴까 봐. 내일은 순례 4일 차 19.3킬로미터에 도전한다. 내 체력엔 아직 하루에 15킬로미터 정도가 맞지만 내일 여정은 좀 평탄한 길들이라니 욕심을 내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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