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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아 Jul 09. 2024

상실, 남아있는 고통에 대하여#07

 돌아올 수 없는 일상

07. 돌아올 수 없는 일상


#아침풍경# 아이들이 분주히 등교준비를 한다. 빨리 씻어라, 밥 먹어라, 옷 입어라,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비와 지하 주차장에 가서 차를 가지고 나온다.  준비가 늦는 시우는 나중에 나와서 아파트 1층 분리수거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이들을 태우고 서둘러 학교로 출발한다.


#저녁풍경#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한다. 한비가 먼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 간식을 챙겨주고 시우는 영어 학원에서 돌아와 배고프다고 난리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아이들 숙제에 공부하란 잔소리가 더해져 저녁시간 내내 시끌벅적하다. 늦게 퇴근하는 남편의 저녁상을 한번 더 차린다. 아이들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데 도무지 지치지 않는 아이들과의 끝나지 않는 저녁 전쟁. 몇 시간째 시끄러워 귀가 아프다.


아침에 한비를 태우고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와 분리수거장 앞에 서면 시우가 꼭 그 자리에 서 있을 것 같다. 나도 그 앞에 서게 된다.


요즘도 학부모회 일 때문에 가끔 학교에 간다.

교정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저마다 밝고 활기차고 신나 있다.

운동장에 체육 수업을 나온 시우가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을 것만 같다.
하교 후 스탠드 앞 어딘가에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중에 섞여 깔깔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축구 골대 앞에서 땀을 흘리며 신나게 공을 차고 있을 시우가 도처에서 아른거린다.
저 틈에 섞여서 웃고 떠들고 있어야 할 13살 6학년, 사춘기가 오고 있는 건강하고 싱그런 시우가.

시간이 하루하루 흐를수록 너무나 애달프게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
엊그제처럼 생생했다가도 그동안 보지 못한 시간을 가늠한다면 너무나 오래전 일인 듯 먹먹해진다.

사람의 '생과 사'란 것이 이렇게도 허무한 것인지 경험하지 않는 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예상하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그만큼의 괴리를 남긴다. 나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런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뉴스나 기사에서나 보는 누군가의 사건이, 사고가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있었나?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마음 아픈 일이라고 느껴 본 적은 있어도 그것이 내일이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근거 없는 자신감의 오류를 범했다.


순리를 어긴 한 생명의 느닷없는 부재란, 너무나 거짓 같은 현실을 감당해 내야 하는 매일의 일상과 마주할 때마다 매 순간 부정하게 만든다. 사실일 수가 없다고, 말이 안 된다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모든 게 꿈이라고 밖에는...


나는 분명히 하루가 아주 바쁜 사람이었다. 할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나만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원했다. 그런데 시우가 떠난 지금 나는 아무런 할 일을 찾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이 없어졌다.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고 낯선 침묵만 가득하다. 너의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 나의 존재의 이유도 사라졌다.


가슴 한편 거대한 바윗돌이 박혀 숨을 내쉴 때마다 명치끝을 울리는 고통과 마주한다..

지지고 볶고 지겹다고 투덜거리던 일상이 너무나 그립다.
학교 가는 준비가 굼뜨다고, 소수의 곱셈과 나눗셈을 자꾸 틀린다고, 엄마 말을 안 듣는다고, 게임을 한다고, 동생과 싸운다고, 시끄럽게 군다고...
그때 내가 걱정하고 상심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아니 진정 행복한 일상이었음을...

지루한 듯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삶은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보호하고 이끄는 힘이 없다면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일어나는 세상의 수많은 우연한 사건과 사고가 나의 삶을 완벽하게 비켜가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인지, 하루가 물 흐르듯 탈없이 흘러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란 걸 나는 잊고 살았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대단히 감동스럽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이런 시련이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 감당해 낼 수 없는 시련이다.


2016년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당시 2년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기일이 8주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써내려 갔던 피투성이였던 나는 시간이 처방하는 어느 정도의 망각을 통해 상흔을 남길지언정 흘리던 피는 서서히 멈추고 상처는 단단해진 채 상실의 아픔도 나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다고 지금도 이렇다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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