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음 Apr 09. 2021

반 계획적 퇴사의 전말

첫날

회사를 관뒀다. 모두가 울부짖지만 함께 가닿을 수는 없는 지점, '퇴사'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나는 불나방 인간, 하루살이 휴먼이 된 채 눈알이 확 돌만큼 자유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남들에게 퇴사를 권하진 않는다. 나에게는 모아둔 돈이 없고 프리랜서 작가라는 어두침침한 직업이 남았을 뿐이니까 부러울 것 없다고 알려 준다.


퇴사는 차라리 모아둔 돈이 있고 작가가 아닌 사람이 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퇴사한 이유도 작가로서 잘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나 하고 싶어서였다. 건강 문제와 돈 문제 등이 있지만 마음 문제보단 크지 않았다. "너 어쩌려고 그래?" 많이들 묻던데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금전도 비전도 없다. 다만 나 역시 회사에 다닐 때는 나처럼 막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버텼으므로 이 글을 적는다.


사실 일보다는 출퇴근에 지쳐 있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거주 도시에서 강남역 사무실까지는 도어 투 도어로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주 5일제니까 왕복 시 주 20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셈이었다. 재직 기간 내내, 귀중한 일주일 중 하루 가까이가 그런 식으로 무산되었다. 고속버스처럼 쌩쌩 달리는 2시간이라면 기분이라도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타는 경기버스는 늘 러시 아워에 갇혀 꼼짝을 못 했다. 내게 도심은 회색빛이 아니라 빨간빛으로 상징되었다.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이 꽉 막힌 도로에 빽빽하게 들어찬 차들의 뒤꽁무니뿐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과격한 기사님을 만나는 날엔 기분을 두 배로 망쳤다.


“저 C-2-8 새끼, 고새를 못 참고 대가리를 들이미네. 안 비켜줘 이 개새끼야!”


다채로운 욕설이 펼쳐진 후엔 반드시 클락션 소리가 뒤따랐다. 빠아앙-빵! 빠아아아아아앙! 기사님이 얌전하다면 높은 확률로 승객 중 하나가 코를 골았다. 크아악 칵칵칵칵! 크아아악! 칵칵칵! 그의 코를 뜯을 수 없으니 내 귀를 막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너무 잘 잔다는 이유로 나는 괴롭게 못 잤다.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 날이면 옆자리 승객이 터무니없는 쩍벌로 허벅지 간의 불쾌한 접촉을 만들곤 했다. 그의 다리를 뜯을 수 없으니 내가 반 접히듯 오므리는 수밖에 없었다. 남의 허벅지 근육이 형편없다는 이유로도 나는 괴롭게 못 잤다. 때론 백팩에 치이고도 사과를 못 받았고 발을 밟히거나 꼰 다리에 차였다. 역시 사과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차가 없어서 이토록 힘든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주받은 강변북로를 통하는 한 람보르기니를 가져도 별 수 없이 처막힐 것이었다. 내 차가 있다면 꼬리물기를 일삼는 비양심 운전자에게 “C-2-8 새끼”라고 분개하는 것도 내가 될 것인가? 남 신경 안 쓰고 다리를 쩍 벌리는 해방감은 내게도 있겠다. 코골이 대신 내 플레이리스트로 차 안을 꽉 채울 수도 있겠지....... 면허도 없는 주제에 운전자가 되는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불행한 자에게 주어진 발군의 상상력은 거의 저주니까, 나는 차 없이도 차 유지비만큼의 정신적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운 좋게 2층 버스 맨 앞좌석에 앉은 날엔 멀미가 덜 났다. 대신 충혈된 눈깔처럼 번쩍이는 빨간빛 수백 개가 앞유리로 밀려들었다. 하염없이, 아주 망연히 앞 차들의 후미등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버스를 방해하는 자동차들을 보며 이게 뭐하고 사는 건가 자주 생각했다. 나는 억지 낙관에 능숙하니까 쓰다 팽개친 글을 불러오듯 희망을 소환할 수는 있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나라고 못 살 것은 무엇인가?' 버스 안을 꽉 채우며 구겨져있는 승객 동지들을 보면 실제로 좀 나았다. '좀만 더 버티면 금세 연봉협상이 오고, 승진이 올 거야.' 돈 생각에는 더 빨리 기뻐졌다. 그런데 희망의 끝에서는 자꾸 빡이 쳤다. 출근을 지속하여 능히 벌 수 있는 돈들이 부루마블 머니 같았다.


왜일까? 그게 현실이고 현실적으로 내가 원해야 할 것들인데도 내 자신을 전혀 매료시킬 수 없었다. 지인들은 내게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가 진짜 번아웃일까 봐 사례를 검색해보진 않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뼈저리게 알 것 같았다. 그건 내가 가진 사회적 자산과 에너지가 홀랑 불타 재로 화했다는 뜻이었다. 억지로 출근을 지속하면 가루째 흩날린 나를 복원할 수 없게 되리란 뜻이기도 했다.


나는 ADHD 치고 불안 심리가 없는 편이지만, 계속되는 피곤으로 인내의 과부하를 겪을 내 모습에는 조바심이 났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는 '못 참겠다'는 지경에 도달해버린 나이다. 30년 가까이 스스로를 제련하려 애썼는데 '정말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 때를 이겨본 적은 없었다. 너무 높은 강도의 싫음을 무시하다간 반드시 병이 났다. 마음이거나 몸이거나 랜덤이었다.


실제로 그즈음에는 지독한 불면증이 덮쳐 왔다. 하루에 3시간도 자지 못했고 주말에 몰아 자도 수면의 질이 구렸다. 눈을 떴음에도 회사에 가지 못하는 날이 생겨났다. 너무 피곤하고 눈알이 따가워 일과 시간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일 연차를 지르는 껄끄러움이 지금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현실적이었다. 아직 건강했지만 무언가 천천히 붕괴되고 있었다.


내가 못 자는 이유는 내일이 오는 게 싫기 때문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9시가 넘는데, 겨우 집에 닿자마자 새 하루가 밝아 버리는 현상이 끔찍했다. 바쁘기에 엉망진창 방치되는 집구석에도 자주 서러워졌다. 모든 징조가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나를 퇴사로 떠미는 듯했다.


물론 내 안에는 퇴사 욕구를 거스르려는 착실한 나도 있었다. "안 그만둘 거야. 요즘 세상에 글 쓴다고 회사를 관둔다니 미친놈이지." 하지만 의무감은 미약했고 나의 장래희망은 곧 원대한 미친놈이 되었다. 팀 리더와 팀원들과 대표님에게 차례로 퇴사를 알리면서 훌륭하고 빠르게 이뤄냈다. 아빠가 해줬던 말들에 자주 코끝이 찡해졌다. 그는 내가 한 회사를 일 년 넘게 다니고 있음에 감복하면서도, 걱정 많은 부모 특유의 조바심을 놓지 못했다. "둘째뚱아. 어디서 뭘 하든 행복하렴. 네가 개똥을 모으고 다녀도 행복하기만 하다면 됐다." 나는 퇴사를 함으로써 아빠 말을 조금 잘 듣는 딸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재미있게 살고 싶나 보군 박수를 쳐 주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냥 살고 싶었던 것 같다. 회사원으로 사는 내내 우울하기 싫다는 맹목적 의지의 조종을 받았다. 하지만 숨겨놓은 우울은 덮어놓은 빚 같은 것이었다. 고지서를 외면한다고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종류가 아니라는 거였다. 나는 우울이 채권추심을 시작하기 전에 회사를 관두었다. 아니, 출퇴근 노동자로 살기를 포기했다. 여태 서술한 여러 가지 불행에 약간의 행운이 더해져 기동력이 제곱된 시점이었다.


약간의 행운이란 첫 번째 책이 나오기도 전에 두 번째 책 출간 제의를 받은 것을 말한다. 메일링 연재 제안을 받기도 했다. 청탁 메일을 여는 순간 밑도 끝도 없이, ‘아 이 정도면 되었지 않은가?’ 싶었다. 투잡을 병행하며 여기까지 왔으면 둘 중 하나는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안도감이었다. 내가 글을 잘 써봤자 얼마나 잘 쓰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일을 잘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냐는 생각이 더 컸다. 회사에서의 내 자리는 얼마든지 대체되겠지만 내 글들은 나 아니면 쓸 사람이 없었다. 비루한 희망이어도 이제는 붙잡기로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두 번째 책은 아직 시작도 안 했으므로,  잘 될지 안 될지 전혀 몰랐다. 첫 번째 책도 출간 전이라 사실은 잘 모르는 일이었다. 잘 되거라 바라는 마음으로 실제 잘 되는 것은 아니니까, 판매량에 올인하지 말고, 언젠가 회사로 돌아갈 시점을 설계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인세 수익을 내게 유리하게만 계산해봐도 연봉을 커버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막 굴러간다. 남들 인생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나는 광역적 '아무렇게나'에 몸을 맡기고 정말 아무렇게나 좀 쉬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퇴사 직후의 첫 평일, 알람 없이 눈을 떠본 후에 나는 ‘모른다’고 태평히 나불댈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글을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했다. 작가로 잘 되어서(?) 출퇴근을 놓을 수 있다면 기계처럼 써댈 자신이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냥 몇 시간 더 잤을 뿐인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부자리에서 비비적거리는 게 오늘 할 일의 다라니 눈물 나도록 멋졌다. 양치하러 가는 길에 내 인생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바뀌고 있음을 알았다. 퇴사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몹시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