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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Oct 31. 2020

행복을 설계하는 ADHD로 살기

비극에 유연 해지는 18가지 비법

사실 제목의 반은 뻥이다. ADHD는 콘서타 72mg을 매일 퍼먹어도 완전히 극복되지 않는다. 그래도 요령을 부려 보면 훨씬 나아질 순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긍정받는 타이트한 현실보단 완벽한 환상 속에서라도 혼자 행복한 게 좋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요령을 꼽아 보았다.



1. 배고프기 전에 먹는다


이것만으로도 인생을 망치는 충동적 결정들이 상당수 예방된다. 왜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배고플 때 먹을 게 없으면 물건이라도 산다. 조급함을 참지 못해 택시를 타고, 상대방에게 미친 듯이 칭얼거린다. 가끔 내 지인들은 29살이나 먹고 매번 들짐승처럼 배고파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싸운다. 허기는 인간관계에도 좋지 않은 것 같다.



2. 상대방이 한 말에 과몰입하지 않는다


남들의 모든 말을 흘려듣지만 가끔 이상하게 마음에 박히는 대사가 있다. 당사자는 이미 잊었을 거 같은 사소하고 주옥 같은 말...... 예전엔 파고들어 발화의 원인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지만 이제는 일부러 딴생각을 소환한다. “넌 어떻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냐?”라는 말에 빈정이 상해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몇 대일까?’라는 걸 일부러 궁금해하는 것으로 치워 버린다.



3. 잔소리는 잔대답으로 넘긴다


사람들은 진짜 잔소리를 끝짱 나게 한다. 내가 살면서 들은 잔소리를 이으면 지구 3바퀴 반을 돌다 못해 새로운 지구 하나를 뚝딱 창조할 수 있다. 근데 입씨름하는 건 진짜 씨름보다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 같다. 그 사람들의 1차적 목적은 내게 지랄하는 것이지 내가 뭔가를 실제로 고치느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또 그랬어?”, “미안해”, “네 말이 맞네. 내가 더 주의할게.” 등으로 넘기는 게 낫다. 하지만 너무 동태 눈깔로 하면 안 되고 적절히 총기를 담아 진심을 가장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4. 나쁜 말일수록 일단 한 번 써보고 말한다


나는 말이 신랄하고 심한 편이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을 일도 많지만 결국 받은 상처 이상으로 돌려준다. 하지만 이러면 화가 풀린 후 후회가 된다. 그래서 나쁜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초안을 휴대폰 메모장에 써 갈긴다. 내 욕망도 1차적으로는 욕설의 배설인 거지 그걸 당사자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라서 이만해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그러면 “아니 XX 그딴 XX 같은 짓을 하는 XXXX가 어디 있어?”라고 할 일도 “나 좀 화난 건 사실이야.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다.



5. 중요한 알람은 다중으로 설정한다


솔직히 ADHD라면 알람이 안 울리거나 잘못 울리거나 너무 작게 울리거나 하는 이유로 곤란함을 겪을 것이다. 걸어가서 꺼야 하는 알람이 좋은데 여의치 않다면 휴대폰 내에서도 알람 앱을 2개 이상 쓰는 게 좋다. 나는 휴대폰과 스마트 AI 스피커를 쓰는데, 너무 불안할 땐 TV 알람도 맞췄었다.



6. 남들과 하는 대화보다 나 자신과 하는 대화가 훨씬 중요하다


나는 말이 몹시 많고, 내 지인들은 가끔 두서없는 수다를 힘들어한다. 난 하소연에 고민 상담도 많으니 더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남들보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게 훨씬 즐거워졌다. 나의 경우는, 쓴다. 씀으로써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감추는지 혹은 드러내고 싶은지 알아간다. 외부에서 침투하여 내면의 자신을 알아간다는 건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다. 데면데면한 동거인 같았던 외면적 나와 내면적 내가 일종의 TF로 협력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이미 망해버린 지루한 일상에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결국 ‘나’였다. 나는 생각보다 찌질하고 별로인 데다 소심하다. 근데 멋지고 대범한 데다 웃기기도 하다. 이런 나를 매일 관람할 수 있어 기쁘다.



7. 나는 나 자신의 변호사임을 기억한다


솔직히 내 잘못이 맞을 때도 너무 심한 벌을 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의 편이 아닐 때, 100명의 남이 돌아선 것보다 더 외로워진다.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처량하고 쓸쓸하다. 내가 잘못했을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좀 꾸짖은 후엔 살그머니 내 편을 들어주기로 하자.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나도 나지만 저 새끼도 진상이다.’

‘쟤가 잘못했지만 그걸 세상에 비밀로 해주기로 했다.’

‘내가 저 자의 통수에 대고 가다 뒤지라고 생각한 건 잘못이지만 완전 큰 잘못까진 아니다.’



8. 3-4번 생각해봐도 이해되지 않는 건 포기한다


내 나쁜 점 중 하나는 물고 늘어지기인데, 무는 것보단 늘어지는 게 문제였다. 한없이 늘어지다 보면 초반의 패기와 논리는 사라지고 비약만이 남는다. 그러면 슬퍼지니 열심히 생각해봐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폐기해야 한다. 애초에 내가 만든 문제가 아니라 내가 풀 문제도 아닌 것이다. 해답은 내가 모르는 곳 어딘가에서 다른 이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9. 수치스러울 때는 수치에 솔직해지는 게 낫다


나는 수치심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수치스러울 때마다 괜찮은 척했다. 창피한데 창피하지 않은 척하고, 큰 일인데 크게 생각하지 않는 척하면 쿨한 인간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안색과 헛기침과 미세한 표정과 허우적거림을 보며 내가 쪽팔려하는 걸 간파했다. 완벽하지 않은 ‘척’은 짠하거나 얄밉기 때문에 좋지 않았다. 인정하고 넘어가면 모두가 그 순간을 잊지만, ‘~~ 한 척’이라는 책갈피를 남기면 누군가 그 순간을 자꾸 꺼내 든다. 나 없는 곳에선 더더욱.



10. 날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은 사실 나를 부러워하는 중일지 모른다


나는 ADHD가 정말 싫은데 가끔은 이 증상들을 샘내는 사람도 있다. 착한 이는 “너의 창의적인 면이 부러워”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나쁜 놈은 부럽다는 이유로 죽도록 괴롭힌다. 나 역시 어떤 갈등에 내 잘못이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시름시름 피해자가 된 적이 많다. 혹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자존감까지 결여된 주제에 음침하게 관종 요소를 갖춘 이들이 ADHD를 싫어한다면, 그건 놈들이 우릴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그런 미친놈들과는 상종을 말고 멀리하는 방법뿐이다.



11. 질린다고 바로 버리지 않는다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다. 두고 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판단력이란 ‘얼마나 두고 볼지’를 정하는 능력이지 버릴지 말 지를 곧바로 처단하는 능력이 아니다. 내가 애꿎은 이별을 하고 새 남친을 찾아다니는 거나, 어제 내다 버린 A+급 가구를 정가에 배송비 얹어 다시 사는 이유는 늘 버린다는 판단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12. 운명론자가 된다


운명이란 말은 너무 낭만적이어서 사소한 실수나 오판의 개입을 전부 흡수해 버린다. 운명이란 말 뒤에는 가타부타 변명이나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내게 일어난 일이 운명이라 여기는 순간 정서가 편안해진다. 오늘 출근하다 엘리베이터에 끼어 망신을 떤 것? 운명이다. 그러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니, 내가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마트에 갔더니 정기휴일인 것도 마트와 나의 운명이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모조리 운명이라 생각하면 따질 생각도 대상도 없어진다.



13. 궁리할 시간에 차라리 해 버린다


이건 사실 너무나 어렵지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화장실 청소를 왜 해야 하는가? 화장실이 더럽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타일 사이 물때와 어지러운 머리카락을 보며 거슬려하지 않았나. 하지만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인데, 이틀쯤 미룬다고 해서 큰 일도 없다. 대체 인간의 화장실은 왜 청소를 필요로 할까. 자율주행 자동차까지 개발된 마당에 자동 화장실 청소 시스템이 없는 건 현대 과학의 맹점이다. 내가 지금부터 화장실 청소를 한다면 몇 분이 소요될 것인가? 나는 30분 후 외출을 해야 하는데.......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에 골똘해지는 대신 솔을 잡는 것 말이다.



14. 연장자에게 공손하고 겸손하게 굴면 웬만하지 않은 문제도 웬만해진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상당히 많은 어른과 태도 논란을 빚어 왔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내가 당연해마지않는 규칙을 이해 못하고 띨띨하게 구는 것 자체가 어른을 놀리는 느낌인 것이다. 이럴 때 난 억울하다. 두 번째는 별로 억울하진 않은데 내가 실제로 어른을 놀릴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하면 작은 일이 삽시간에 커져서 매우 고단해진다. 경험적으로도, 맞는 논리를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보단 틀린 말을 공손하게 하는 게 타율이 높았다. 직급만 높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싫어요”는 문제가 되지만 “조언 감사합니다. 말씀 참고해 생각 더 해보겠습니다”는 늘 괜찮았다.



15. 결정이 망설여질 땐 ‘되돌림 비용’을 헤아려 본다


나는 남들보다 신중함의 양과 깊이가 부족해서 고생을 사서 한다. 사서 하는 고생을 3글자로 줄이면 개고생이라는 뜻이다. 그걸 방지하려면 선택을 해서 얻는 효용보다, 선택을 물릴 때의 비용을 헤아리는 게 낫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이혼에 따르는 감정적&물리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변덕이 죽을 끓는 내게 변덕을 부릴 수 없는 결정은 맹독과 같다. 심지어 이혼은 결혼을 되돌리는 일조차 아니라서 그냥 포기했고 마음이 시원하다.



16. 타자와 상황을 인식할 땐 ‘나’라는 주어를 뺀다


너무 괴로웠던 것 중 하나는, 내 자기 인식과 자기애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다는 거였다. 나는 나를 떠나서 현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뭔가를 설명할 때도 항상 나만의 표현과 느낌 위주라 미친놈 같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별을 우리 둘의 헤어짐이 아니라 ‘나를 떠나간’ 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선이 옹졸하고 편협해진다.

싫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달라는 자료를 늦게 준 사람, 내가 회의하자고 했는데 재낀 사람’이라는 관점보단 ‘일할 때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이라는 거리감 있는 인식이 낫다.

좋은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준 사람’, ‘내가 지갑을 안 가져왔을 때 흔쾌히 밥을 사준 사람’이라는 인식은 쓰잘 데 없는 호감으로 진실을 가리기 쉬우므로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 정도가 적절한 것 같다.



17. 너무 결백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ADHD라는 걸 알고 나서 한동안 감정적 결벽증에 시달렸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 손해를 보는 것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원인에 내 잘못과 부족이 하나도 없었으면 했다. 내가 ‘알고도’ 실수한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하지만 ADHD가 아니어도 인간이란 어차피 실수투성이다. 누구도 무결한 삶을 살 수 없다. 아무것도 실수하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말아야 하는데, 죽을 때가 되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사실 조차 큰 실수로 여겨지지 않겠는가? 방금 세탁한 흰 이불도 현미경으로 보면 미생물 투성이인 것처럼 내 인격도 너무 자세히 보면 불결함 투성이로 느껴진다. 그러니 적절히 거리를 두고 적절히 못 본 척하며 사는 게 오히려 깨끗해지는 길일지 모른다.



18. 웃음을 베푼다


이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해당된다. 내가 볼 때 웃음이란 뷔페 음식과 같다. 화려하면서도 흔하고, 은근 비용이 많이 든다. 모든 사람의 모든 욕구를 해결할 것 같아도 실은 그렇게 마법적이지 않다. 웃음이 없어도 삶은 가능하고 웃는 것 자체가 해결은 아니다. 그래도 웃음엔 종류가 많다. 쌓아 놓으면 보기에 예쁘고 팍팍한 삶을 저절로 환기하는 효용이 있다. 뷔페를 먹으며 배고프긴 힘든 것처럼 자꾸 웃으며 엿 같기도 힘든 것 같다.

타인에게 웃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뷔페에서 나가며 이미 배불러도 “와, 남는 거 나 좀 싸 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사람들도 남는 웃음을 자기에게 나눠주길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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