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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Jan 03. 2016

마라도의 법

이장 선거

마라도에는 마라도의 법이 존재한다. 성문법은 아니고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결정해 놓은 여러 가지 불문법이다. 이 법에는 여러 특권에 대한 분배 방식이 미리 정해져 있고 섣불리 그걸 거스르는 사람은 없다.


어느 해 인가 마라도 이장 선거가 치러졌다. 이장 선거는 마라리 주민들이 뽑으면 간단하겠지만, 마을 터줏대감들은 단순히 주민등록지가 마라리라는 것만으로 투표권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래서 오 년이상 마라리에 ‘실제’ 거주한 주민들만 투표할 수 있게 했다. 


그해 이장 선거는 두 패로 나뉘었는데 구 이장파와 형님 파였다. 구 이장 파는 전 이장이 추천한 인물이 후보였고, 형님 파는 전 이장의 형이 나섰는데 유권자들은 팽팽히 대립했다. 오 년 이상 마라도에 거주한 주민, 즉 총 투표권자는 얄궂게도 마흔 명이었고, 마을 회관에서 투표가 진행되었다. 


별장 민박 형님은 투표권을 가진지 한참은 지난, 거의 평생을 이 섬에서 살아왔지만, 한 번도 투표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모든 유권자가 투표한다면 당연히 당선자가 나오는 투표였다. 


주민들이 모여 나누어 준 하얀 종이에 1이나 2를 적어 투표함에 넣으면 모두 보는 앞에서 투표함을 열어 당선자를 발표하는 거였다. 개표절차가 끝나고 두 파의 팽팽한 선거전처럼 단 한 표차로 구 이장파의 선거로 끝났다. 


하지만, 투표에 진 형님 파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검표를 하게 됐는데 마지막 한 표가 문제였다. ‘1’ 자에다 머리를 씌우고 가로로 발도 달아주어서 그게 어떻게 보면 1인 것도 같고 2인 것도 같았다. 


옥신각신하는 통에 몇몇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 버린 후이기도 하고 밤도 늦어 투표함을 봉인하고 다음 날 다시 결정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회의에서도 서로는 팽팽했고 결국 문제의 투표용지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마라도에 사신지 아주 오래된 할머니 두 분이 계시는데 각자 홀로 사시고 물질을 하는 해녀 할머니들이다. 그 투표용지의 주인은 바로 그중 한 할머니였다. 주민들이 일일이 필체를 감정하여 알아낸 사실이다. 언뜻 보면 ‘1’인데 또 다르게 보면 ‘2’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숫자. 주민들은 그 할머니에게 묻기로 했다. 


할머니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이 종잇장 하나를 꺼내놓고 이걸 뭐라고 썼냐고 다그치자 눈을 치켜뜨고 당최 이걸 내가 쓰기라도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럼 이 투표용지는 젖혀두고라도 몇 번을 찍었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그게 1번을 쓴 거 같기도 하고 2번을 찍었나?”라고 했다.


문제의 투표함은 다시 봉인되었고 누군가 훼손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을회관에 보관하고 며칠간 양측에서 한 명씩 나와 곁에서 지키고 있었다. 특별히 그 할머니의 투표용지는 지퍼락에 따로 보관됐다.


그러다 작은 섬에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장 선거 이야기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상대편 파에서 부른 용병이 나타난 것이다. 방금 중위로 제대했다는 키가 훤칠한 사내였는데 형님파가 모인 자리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와 같이 온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구 이장파 사람들이었다. 싸움이 났다.


가로등도 없는 작은 섬에 달빛은 더없이 밝았다. 중앙 무대로 결투를 옮긴 사람들은 몇 번 험한 말다툼이 있더니 패싸움이 벌어졌다. 패싸움이긴 하지만 주요 인물은 용병과 짜장면집 형님이었다. 몇 번 투닥거리더니 용병의 앞발 차기를 피하며 키 차이로 인해 45도 각도로 뻗은 형님의 스트레이트가 용병의 턱에 제대로 꽂히는 걸 봤다. 나도 뜯어말린답시고 두 대나 맞으면서 본 그 장면은 마치 액션 영화의 슬로 모션을 보는 듯했다. 용병은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듯이 수직으로 꼿꼿이 서더니 천천히 떨어졌다. 그 한 방으로 싸움은 완전히 끝났다. 


패전한 용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쌍방은 서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각자의 진영으로 사라져 갔다. 쓰러졌던 용병은 어느새인가 일어나 씩씩대며 섬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지만, 다시  싸움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용병을 쓰고도 싸움에 패한 구 이장 파는 다음 날 서귀포에 가서 변호사를 샀다. 형님파 회의가 긴급 소집되었고 500만 원짜리 변호사를 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십시일반 돈을 걷어 똑같은 금액의 수임료를 주기로 하고 다른 곳에 변호를 맡겼다. 


지루한 법정 공방과 달리 이 건은 꽤 재미있는 뉴스거리였다. 지방 일간지 사회면에 나오나 싶더니 전국 일간지에도 간간이 소개되었다. 역시나 그 문제의 투표용지는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마라리 이장의 권한은 쓰레기 소각장 관리권, 관급 공사 인부 식사 제공권, 도항선 뱃머리 각종 간식(마른오징어등) 판매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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